도라지 21일차

도라지
2021-04-25 23:28
213

21.

습관은 나입니까?

 

 

 

계속 걷던 습관이 무섭다. 

양양에 와서 내 입으로 산책 가자고 한 적이 한 번도 정말 단 한번도! 없는데,

그 어려운 말을 오늘 내가 했다. 

 

텀블러에 커피 담고 카스테라 챙겨 반려인과 나섰다. 

그분은 그새 커다란 배낭을 하나 메고 나선다.

아마도 어디서 날아와 저절로 자란 상품성(?) 있는 나물을 저 아랫동네에서 

캐올 심산인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명이? 같은... 그런건 눈 밝은 달팽이쌤이나 가능한 건데 말이다. ㅎㅎ

 

집근처를 한바퀴 돌고 여기저기 굴러댕기는 쓰레기 줍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양양집의 주인은 나도 남편도 아닌 것 같다.

집 안팎으로 나있는 흔적을 살펴보면 집주인은 숱한 벌레들과 얼굴 모를 고양이, 쥐, 뱀, 고라니, 멧돼지... 이시다. 

그분들이 여기 저기 똥도 싸고 집도 짓고 새끼도 낳고 그러다가 가끔 시끄러운 인간들이 들고 나니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으실지... (어이없게) 죄송해진다.  그분들 드시라고 상추도 심고, 먹다 남은 음식물도 묻어두고 고양이 사료도 채워놓고 돌아온다. 

 

골짜기 안에 들어가 하루를 온전히 보내면서 존재적으로 한없이 작아지는 이 느낌은 매우 유치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주 특별한 공부다. 

 

(머위 한다발~)

 

 

 

에코챌린지를 21일간 했다. 

그동안 뭔가 계획적으로 챌린지를 하진 못했다. 그저 뇌주름이 시키는 대로 했다.

최선도 대충도 아닌 그 사이에서 꾸준히 내 일상의 습관에 질문을 하고 의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습관은 너니?" 

나는 숱한 나들과 계속 최선의 답을 찾을 예정이다. 

 

 

챌린지를 마치며. 아끼는 시 한편.

 

 

 

          <걸식이 어때서? >             

                                     김선우

 

세상에 걸식 아닌 밥이 어디 있니?

본래 자기 것이 없는데

서로 걸식하는 거지

 

형편 되는 대로 빌어먹고 빌어 먹이고

오늘 내 무릎에 네가 기대고

언젠가 올 오늘엔 네 무릎에 내가 기대고

 

내 것을 준다는 의식 없이

그저 우린 서로를 빌려주며

먹고 먹이는 거지

 

걸식하고 남긴 시간에 무얼 하냐고?

열렬히 노동해야지

  영혼을 다듬는 거야. 

                               

 

 

 

 

 

 

 

 

 

 

 

 

 

 

 

 

 

 

댓글 6
  • 2021-04-26 08:31

    아, 넘 조타

  • 2021-04-26 12:16

    열렬히 노동 !!

     

    머위꽃 예쁘다

    도라지도 예쁘다

  • 2021-04-26 15:29

    마지막 일지....

    최선과 대충 사이에서,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 2021-04-26 22:41

    쌉싸름한 머위잎쌈 정말 좋아하는데.. 

    꽃도 예쁘네요.^^

  • 2021-04-27 08:41

    무심한듯 가열찬 완주를 축하하며~~^^

    도라지 쫌 멋진듯....
    저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 2021-05-02 10:33

    그동안 좋았어요~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