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노래로 盈科而後進 1화

기린
2020-03-17 00:56
274
  1. 축제가 끝나고 난 뒤

 

  작년 축제 마지막 날 대놓고 노래자랑이 있었다. 팀으로 출전하라는 축준위의 제안이 있었고 나는 인문약방팀으로 참가했다. 다들 시간 맞추기도 어려웠던 터라 축제 막바지에 몇 번 입을 맞추고 출전했다. 상은 고사하고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다 하기에도 그 날의 노래는 최악이었다. 노래를 부르러 나가면서 가사도 다 못 외우고 나갔다. 무대 소품으로 착용한 선그라스 때문에 프린트해간 노래가사도 안 보였고 음은 이탈하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어찌 어찌 끝내고 무대를 벗어나는데 진짜 창피했다.

 

 

 물론 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있었고 무대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경직된 몸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마음이 더 컸다. 다 아는 처지에 못하겠다고 거절하기도 그렇고 되는대로 하고 말지뭐. 그러다보니 우선해야 할 일에서 늘 밀려나다 코앞에 닥쳐서 대충 흉내만 내자 싶었다. 재미없는 숙제를 겨우 겨우 해내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건 아니지 않은가 불편하기도 했다.

 

 올해 인문약방 양생프로젝트로 각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뭘 할까 생각하던 중에 작년 축제에서 느꼈던 그 불편함이 떠올라서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제대로 한 번 불러보고 싶다고 했다. 노래자랑 때 너무 어려워서 포기한 노래이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대충 때우려고 했던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육 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2.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아서

 

 내가 가수 신해철의 팬이 된 것은 20대였다. 어쩌다 그의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노래가사가 귀에 쏙쏙 꽂히는 때였던 것 같다. 더구나 그가 나와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동년배를 향한 조건 없는 호감까지 생겼다. 그렇다고 일일이 노래를 찾아 듣는 열성팬까지는 아니었고 그의 신곡이 인기가요 반열에 올라 노출이 많이 되면 따라 불렀던 정도.

 

 그러다 가수이면서 소신 있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행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것도 기억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자를 지지하는 티비 연설을 보면서 참 달변이구나 라고 느꼈던 것도. 딱 그 정도의 관심아래 그도 나도 점점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2014년 그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좀 놀랐다. 하지만 곧 잊혀졌다. 그러다 작년에 우연히 그의 노래 ‘민물장어의 꿈’을 듣게 되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노래 가사가 귀에 꽂힘과 동시에 절절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삶에 대한 의지가 뚝뚝 묻어나게 부르던 사람은 가고 없는데 노래는 여전히 남아 삶을 부추기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마음의 안식을 바라는 간절함이 나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부끄럽게 했기 때문일까. 신해철이 서른을 넘기며 발표했으며 생전에 자신의 장례식에서 들리기를 원했다는 노래. 유튜브에서 그의 말들과 노래를 들을수록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노래가 위로가 되었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서라도 잘 살고 싶어지게 하는 노래였다. 그리고 이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3. 盈科而後進 -채워진 이후에야 나아간다

 

 축제에서 창피했던 경험에다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노래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니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마침 『맹자』에서 암송하고 있는 문장까지 거들었다. 영과(盈科)는 구덩이를 채우다를 의미하는데, 이 때 구덩이는 삶의 어떤 국면에서 파여진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내게는 축제가 끝난 후 느낀 불편함으로 생긴 흔적이겠다. 그것을 채운다 함은 시간을 들여서 구덩이를 메워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구덩이가 채워지면 나아가게 된다. 마치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가득 채워져야 다시 흐르게 되는 것처럼.

 

 

나에게는 그 구덩이에 이제껏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노래 부르는 시간으로 채움으로써 어떻게 흘러넘칠지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만큼 떨리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렵지 않아서 좋다. 결과를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시작, 어쩌면 이것도 양생일 수 있지 않을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댓글 5
  • 2020-03-17 08:24

    화이팅!

  • 2020-03-17 08:35

    여러번 읽었어도 마지막에 봉옥이쌤 사진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여여쌤을 닮고 싶다는 건가?
    암튼. 민물 장어의 꿈. 노래가사를 보니... 아이고! 장어가 아주 달리 보이네요. ;; (그런데 녀석은 민물에 있을 때 몸값이 뛰는데...ㅋ)

    쌤의 미션 응원합니다~^^

  • 2020-03-17 08:38

    급 봉옥샘 사진..ㅋㅋㅋ
    함께 하시는거죠?
    암튼 두 분 다 화이링~~!

    • 2020-03-17 11:22

      아하! 그런 거였군요.^^

  • 2020-03-18 08:28

    네 저는 그린그린그래스 오브 홈을 탐존스 버전도 아니고 조영남 버전도 아닌 존바에즈버전으로 연습 합니다.
    이 노래를 듣는데 왜 스피노자가 생각났을까요? 노래의 주인공은 어떤 좋지 않은 마주침이 있었길래...
    그도 고향의 푸른잔디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금발과 예쁜 입술을 가진 다정한 메리와 데이트를 하는 꿈을 꾸었는데 말이죠.
    원래는 탐존스가 불러서 유명해진 컨트리송이긴 하지만 저는 존바에즈의 노래에 마음이 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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