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 갈무리데이-오후반(후기)

새털
2020-06-07 18:30
440

지난 주 한 주 동안 다들 <성의 역사>1~4권 완독을 기점으로 뭔가를 긁적이려 머리를 긁적거렸을 것 같다. 나는 한 주에서 목금, 이틀 동안 뭐를 써야 하나 막연해하며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자아에의 배려>를 읽어보았다. 애초에 올해 <양생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캐치프레이즈는 '메모와 에세이' 쓰기 없음이었다. 그런 압박감 없이 후기 푸코의 사유를 통해 자기배려술을 고민해보고, 실제 각자의 일상에서 자기배려술은 어떤 게 있는지 실험/실천해보자는 것이 <양생프로젝트>의 취지였다. 그러나 이 취지는 지켜지지 못했다. <성의 역사>는 메모를 쓰기 위해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독해가 어려운 텍스트였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우리는 에세이에 준하는 갈무리메모도 썼다.

 

튜터이신 문탁샘의 명령에 따라 갈무리메모를 썼지만, 거기에 우리의 욕망은 없었을까? 올봄 내내 <성의 역사>를 붙들고, 도대체 뭔소리일까? 푸코는 왜 이리 자세한 경로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걸까? 그래서 이게 지금 내 현실과 어떻게 마주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수한 원한의 감정을 토로하며 <성의 역사>를 읽었고, 놀랍게도 1,342쪽에 달하는 <성의 역사>를 다 읽어버렸다. 그래서 시원섭섭하기보다 뭔가 아쉬운.....뭘 읽은 것은가 하는 회의감 때문에 모두 뭔가를 쓰려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나를 포함해 모두 비슷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길든 짧은 좋든 미흡하든 암튼 다들 뭔가를 써왔고, 오전반/오후반 두 팀으로 나눠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오후반 발표에서 나는 무사님, 루틴님, 코투님, 먼불빛님의 글을 읽고, 이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공부를 하고 글을 쓴다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는 네 분의 글에는 그 어색함과 풋풋함과 질문들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문탁샘의 강의안을 다시 읽으니 내용이 조금은 정리된다는 코투님, 아우구스티누스의 체계와 우리 나라 형법체계가 비슷하다고 알려주신 무사님(무사님은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기독교법과 형법의 유사성이 눈에 들어오셨단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했는데 비혼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의 미학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양생프로젝트>로 찾고 싶다는 루틴님, 정년과 나이듦에 대한 생각과 함께 공부를 돌파해가는 역량의 부족을 괴로워하는 먼불빛님. 네 분의 글에는 각자가 하고 싶은 말들이 푸코와 함께 꺼내졌다. 특히 읽어도 읽어도 늘지 않는 공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신 먼불빛님께 문탁샘은 '유용한 독서/공부'가 아니라 '무용한 독서/공부'를 언급하셨다. 많은 것들이 유용성을 기준으로 평가되는데, 공부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 공부가 우리를 즐겁게 하지 못한 게 아닌가? 유용성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난 무용한 공부가 하나의 대안 품행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였다. 이 부분에서 나는 내가 한 동안 잊고 있던 문탁 공부의 즐거움을 다시 떠올렸다. 무용한 공부라는 방식이 나에게 매혹으로 다가왔던 시간이 있는데, 불쑥불쑥 발기하는(콩땅을 위해 써봤다^^) 욕망이 공부에 대한 전전긍긍과 노심초사를 가져온다. 문탁 공부를 시작하는 네 분과 함께 나도 다시 그 마음을 다잡아보려 한다.

 

스르륵, 콩땅, 기린, 새털은 모두 3페이지 이상을 써와서 눈총을 받았다. 다 읽으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스르륵은 푸코의 방법론에서 붓다의 '중도'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는 명민함을 빛냈다. 이런 발견이 있기까지 스르륵은 얼마나 꼼꼼이 <성의 역사>를 읽고 정리했는지 짐작이 간다. 정말이지 그녀는 정리의 여왕이다!! 콩땅은 드라마와 영화를 아우르며 문화비평과 같은 글을 써왔다. 중학교 시절 '시바스 리갈'을 마시며 반항을 좀 했다는 그녀는 이제 '전교1등'을 노리는 모범생의 삶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글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열심히 공부해서 쓴 글이라는 느낌이 팍팍 났다. 성적표는 없지만 '1등급'을 주고 싶다. 기린은 스토아의 자기 전향과 맹자의 반구저기를 가지고 서양과 동양의 '자기'에 대한 이해의 차이, 스스로 즐기는 삶과 우한의 세상을 사는 차이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으나, 3페이지에 이것을 담기에는 지면이 부족했다. 새털은 오늘날의 주체화 방식으로 '방역의 주체'와 '비대면의 주체'를 푸코의 주체화 방식과 연결지어 썼다. 그래서 새털의 주체화 방식이 무엇이냐 질문한다면.....'사려 깊고 신중한 자유의 실천'이라는 푸코의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말은 참 멋진데 '사려 깊고 신중한 자유의 실천'은 어떤 것일까 싶다....

 

 

 

6월 6일 현충일 휴일을 휴일인지도 모르고 지냈다. 발표를 마치고 몇몇이 모여 앉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며 각자의 사주와 사정과 그간의 심정들을 토킹어바웃했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배려술'을 익혀가는 것이 아닐까? <주체의 해석학>을 공부할 때는 아마 우리는 서로에 대한 더 많은 공감과 이해로 서로 조언하고 관심갖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이 날 사람들의 글 속에 드러나는 푸코를 통해 나는 '인간' 푸코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그 동안의 책 속에서 뭐라뭐라 떠드는 저자였는데,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푸코가 얼굴을 내밀고 말을 거는 느낌이라는 '닭살 돋는' 이야기를 했다고 내가 후기를 쓰게 됐다. 참 자기배려술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을 하며 후기를 마친다. 모두 감사합니다.

 

 

 

 

댓글 11
  • 2020-06-07 19:00

    '발기하는 콩땅'이라는 인디언식 이름을 지어주고 싶네요 ㅋㅋㅋㅋㅋ
    아직도 못읽은 오후팀의 갈무리들이 엄청 궁금합니다.
    읽어보면 저도 오후팀 친구들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요.
    부득이하게 나눠서 진행했지만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의 글을 읽어봐요~

  • 2020-06-07 23:39

    닭살 돋는 이야기 하시는 새털샘 쫌 멋있었어요 ~~

  • 2020-06-08 00:12

    그러고보니, 메모와 에세이 없다고 해서 즐겁게 푸코신청했었는데, 고새 까먹고 익숙한듯, 고분고분하게 숙제를 했네요. 아담의 성기처럼 '발기'하여 더~~ 반항을 했었어야 했나요? 전 진짜 아우구스티누스의 그 해석이 너무 신박하여 팬이 되어 버렸네요.

    오후팀에서 작은 그룹으로 처음 만난 무사님, 루틴님, 코투님과 갈무리데이를 통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알고보니, 저 빼고 모두 직업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 일과 공부를 한꺼번에 하시는 스앵님들~~ 금요일밤 죽을똥 살똥 글을 써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새털샘의 저에 대한 과잉평가는 이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갓 귀농한 젊은 농부가 여름날 오전 7시에 김을 멘다.
    동네분들이 부지런하다고 칭찬을하신다.
    버뜨, 알고보니, 동네분들은 여름날 새벽5시에 김을 멘다.

    글고, '발기하는 콩땅'이라뇨!
    꼬추도 가지고 있는거 같자나요!

    • 2020-06-08 01:35

      신박하다!!

    • 2020-06-08 19:47

      여름날 아침7시는 오전 일 끝내고 쉴시간이쥐~ 암~
      그렇고 말고~~~

      • 2020-06-08 21:44

        길경님이군요^^

  • 2020-06-08 13:34

    우한의 세상을 사는 차이 - 憂患의 세상 곧 우한이 아니라 우환 ㅋㅋㅋ

    • 2020-06-08 14:41

      아! 한자 까막눈이라....오자가 있었군요!!

  • 2020-06-08 14:44

    꾸역꾸역 써간 에세이였는데~
    문탁샘의 무용의 공부라는 말도 참 마음속에 남고~
    콩땅님ㅋㅋㅋ도 너무 재미있었고~
    갈무리데이 뒷풀이겸 인문약방 인터뷰도 즐거웠습니다^^

    • 2020-06-08 17:29

      인터뷰 너무 짧아서...다시 만나야 해요~

      • 2020-06-09 10:38

        ㅋㅋㅋㅋ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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