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차공지] 애나 칭 - 세계끝 버섯(#1)- 패치자본주의 혹은 패치인류세

문탁
2023-09-20 13:05
351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버섯을 통해 내 감각은 되살아난다. 꽃처럼 소란스러운 색깔이나 향기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버섯은 불현듯 나타나, 다행히도 내가 그곳에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면 불확정성의 공포 속에서도 아직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 된다.”(22)

 

 

 

 

 

1. 드디어 애나칭의 그 유명한 <세계끝의 버섯>을 읽습니다.

 

 

내용은 일단 차치하고라도 버틀러의 단락나누기 불가 난문難文과 해러웨이의 요약불가 난삽문難澁文을 읽으면서 헤매다가, 단정하고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문체의 글을 읽으니 저절로 헤벌쭉하게 됩니다. 다들 좋으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점점 이들 사이의 공통된 문제의식에 주목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와 기후위기라는 전례없는 폭력의 시대에, 다시 말해 ‘세계의 끝(폐허)’ 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질문이 그렇고, 존재론을 재구축하는 이론적 기획 (그야말로 ‘존재론적 전회’!!! 입니다)이 그러합니다. 다만 그것을 버틀러는 ‘비폭력’이라는 개념으로, 해러웨이는 ‘반려종’이라는 개념으로, 애나 칭은 ‘다종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때문일까요? 저는 르귄의 <세상 끝에서 춤추다>(1997) 와 김초엽의 SF 소설, <지구 끝의 온실>(2021)이 떠오릅니다. 전자는 잘 모르겠으나 김초엽의 온실은 분명히 애나 칭의 ‘레퓨지아fefusia’ 입니다. (소설 재밌어요. 읽어보셔도 좋을 듯^^)

 

 

 

 

 

2. 이것은 자본주의 비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붕괴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진보에 관한 이야기도, 붕괴에 관한 이야기도 어떻게 하면 협력적 생존을 생각할 수 있을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쯤에서 버섯 채집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버섯 채집이 우리를 구원해주진 않겠지만, 우리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줄지 모른다”(49쪽)

 

저는 애나칭에게 강력하게 맑스의 냄새를 맡습니다^^  다만 그는 다른 많은 정치사상가들처럼 맑스를 변형시키고 확대시키고 다른 것들과 연결시킵니다. 그렇게 나온 개념이 패치자본주의(Patchy Capitalism)입니다.

 

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들뢰즈의 '배치' 개념을 가져옵니다. 나아가 이 책의 20개의 이야기가 “비온 뒤 쑥쑥 올라오는 버섯”(8)처럼 펼쳐진다고 말할 때, 우리는 명백히 들뢰즈의 다양체로서의 책, 천의 '고원'을 떠올릴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혹시 애나 칭도 들뢰지언? ㅋㅋㅋ

 

나아가 들뢰즈 처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불안정성', '불확정성'이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버틀러의  ‘프리카리티’를  생각하고, '번역'이라는 용어를 통해 라투르를 떠올립니다.  그도 해러웨이처럼 실뜨기를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두텁게’ 만들고 있나 봅니다.^^

 

 

3. 패럴 아틀라스 Feral Atlas

 

애나칭도 다른 많은 학자/예술가들과 여러 협업을 하는 모양입니다. 유투브에는 인터뷰, 강의 등이 많네요. 그러다 찾은  가장 유명한 웹사이트가 Feral Atlas !! 링크 걸어둘테니 들어가보세요. 인상적이네요.

 

https://feralatlas.supdigital.org/

 

 

 

 

 

 

 

 

4. 마지막으로 나희덕의 시를 덧붙입니다

 

<세상 끝의 버섯>

 

포자 터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어?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희미한 폭죽처럼

버섯의 포자들이 화분 위로 터지고 있었지

 

밤의 정원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더군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숲에서도 버섯들이 왕성하게 돋아날 거야

 

바위와 이끼와 뿌리와 균사가 그물처럼 얽혀 있는 숲

 

버섯은 그늘을 좋아해

버섯은 죽은 나무들을 먹고 자라

 

나무를 씹을 수는 있지만 소화하지 못하는 흰개미,

소화를 도와주는 균류, 그들의

정원에는 꽃 대신 버섯들이 치마를 활짝 펼치고 있겠지

 

나는 땅 속의 세계를 상상하면서

축축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어

더 깊은 숲으로, 더 멀고 먼 숲으로

 

모로코나 한국이나 부탄, 그 먼 곳에서

송이버섯이 나는 부르고 있어

 

포자 터지는 소리가 폭죽처럼 들리는 숲으로

세상 끝의 버섯을 향해

 

 

 

제가 가지고 있는 <마이코스피어> 에서 한장 찍었습니다.

 

 

 

5. 발제는 순서대로 메모는 B조입니다. 제가 없더라도 세미나 재밌게 하시고 기후행진도 즐겁게 다녀오세요^^

댓글 6
  • 2023-09-22 11:04

    오늘, 삶이 엉망까지는 아니어도 맘이 엉망이라 의욕이 제로네요.
    기운이 하나도 없고 다 그만두고 싶은 맘도 굴뚝이지만 그래도 하던대로 해야죠.
    밥상을 차려야 하니 미리 올립니다.
    또 그래도 출석해야니까 내일 뵈요.

  • 2023-09-22 20:18

    1. 재고품 관리 기술의 발전으로 오늘날 글로벌 공급사슬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재고품 식별이 쉽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월마트가 상품이 생산되는 노동 및 환경 조건을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월마트가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왜냐면 가치는 회계를 통해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고품을 통제할수록, 노동과 원료를 통제할 필요는 줄어든다. (....)월마트는 재고품의 식별이 쉽기 때문에 생산 자체에서 확장성을 갖추지 않고도 확장성 있는 소매를 확대할 수 있다.(124)
    :자본주의의 재고품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월마트가 바코드를 통해 재고품 관리를 하는 기술을 획득 실행함으로써 소매를 확대해서 이윤을 축적한다는 이 논리구조에서 재고품이 하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133쪽의 웨이의 사례에서 “이미 현장의 구매 텐트에서 재고품을 만들고 있다.”는 부분으로 보자면, 재고품 자체가 자본의 투자로 비롯되는 “충성심과 규율”을 통해 생산되는 물품을 월마트는 완성품으로 받아 판매실적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하는 재고관리만 하면 되는 구조의 결과물? 이렇게 되면 “생태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살아있는 존재들을 끌어 들이는” 구제축적이 발생한다는 의미?

    2.채집인-구매인-현장중개인 의 각각의 역할을 정확하게 모르겠다. 오픈티켓의 의미로 보아 이들 간에는 “채집인과 구매인 모두의 자유 만들기와 자유 확인하기의 실천”(143)이 행해진다는 데 책의 내용만으로 송이버섯을 둘러싼 이들의 자유 실천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아서 읽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세 역할을 한 사람이 중첩적으로 맡을 수도 있을까? 구매인이 채집해 온 버섯을 등급을 매기는 부분의 내용(154)을 보자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 2023-09-22 21:59

    4, 5, 6장 발제문 올립니다.

  • 2023-09-22 22:00

    문탁쌤 말대로.. 사랑이 있는 로맨틱한 글이네요. 읽기도 좋고, 뭉클한 부분도 많은 거 같습니다.

    - 다 같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꺼내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구태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우울한 나날(?) 속에서도 버섯을 발견하는 애나칭의 생명력(?)에 조금 감동받았다. 나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 여러가지 장면들 중에서 '냄새'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한 번도 진짜배기 송이버섯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그 냄새가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누군가는 역겹고, 흙의, 퇴비 냄새같다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고향을 기억해내는, 천상의 향기라고 하는데 그 간극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랑에 빠지고 말고의 차이일까? 버섯이 주는 그 설레는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사람들이 송이버섯과의 마주침에서 이렇게 다른 감성을 가진다면, 과연 그들이 맡은 냄새가 '같은' 냄새라고 할 수 있을까? p105)

    - 오리건 주의 오픈티켓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매일 밤 교환되는 것은 버섯과 돈 만이 아니라 '자유'도 포함된다고 한다. 송이버섯을 찾는 것은 노동이나 일이 아니라 '찾는 행위'다. 독립적인 사업가이며 자유를 상징한다는 말이 좋았다. 그리고 그것을 판매할 때도 공연적인 요소가 작용한다. 어떤 나무, 지역, 크기,모양들이 다양한 송이버섯을 분류하면서 그것을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대중 공연'에 빗대는데, 정말 구경가보고 싶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무조건 버섯을 따러 가고 싶어질 것이다.) 이것은 강력한 이해관계와 불평등에 오염되지 않고 이루어지는 진정하고도 기본적인 자본주의의 형식이라고 말하는데, 진짜 자본주의란 무엇일까?

  • 2023-09-22 23:42

    4장 5장이 특히 흥미로웠다. 비자본주의적 형식은 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니라고 칭은 말한다. 즉 자본주의로부터 결코 완전하게 보호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자본주의가 의존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송이버섯이 거쳐 가는 오리건주에서 일본까지의 상품사슬에 존재하는 균열과 가교를 살펴보면 경제적 다양성을 통해 성취된 자본주의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물론 주변자본주의적 행위를 통해 채집되고 팔리는 송이버섯은 채집된 다음날 일본으로 보내져 자본주의의 재고품이 된다. 칭이 초점을 맞추는 곳은 바로 이 사슬의 첫 번재 부분이다. 송이버섯의 채집인, 구매인, 현장 중개인들은 자본주의적 공급 사슬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생산 여건이 ‘자유’의 문화적 실천에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오염에 깃든 다양성이 비자본주의적인 특징을 만들고 유지시킨다. 여기엔 여러 자유가 얽혀 있다(1) 백인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은 공황 발작을 야기하는 군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2) 몽인과 미엔인은 그들이 기억하는 동남아시아에서의 자유를 찾기 위에 산에 있다. 3) 채집은 노동도 일도 아니다. 4) 채집인은 마치 숲이 대규모 공유지인 것처럼 행동한다. 5) 채집인, 구매인, 현장 중개인들이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 갑자기 떼돈을 벌거나 모든 것을 잃을 자유). 특히 많은 돈이 오가지만 투자가 되는 자본은 없다. 게다가 채집인, 구매인, 현장 중개인들은 모두 프리랜서이고 이들에게 사회복지나 경제적 안정성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송이버섯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렇게 ‘구제’가 이루어지는 형태가 또 있을까 싶은 회의도 든다. 그래도 칭이 자본주의냐 아니야 식의 논의를 펼치지 않는 점이 좋았다. 일리치약국이 자본주의와 연결되지만 비자본주의적 요소가 이처럼 펼쳐지는 곳일까? 이런 생각도 들었고 앞으로 할 약차 사업이 그런 형식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 2023-09-23 01:39

    둥글레님 질문과 연결됩니다.

    모든 것이 단일한 자본주의 논리로 지배받기 때문에 단일한 연대를 구성해 자본주의를 극복하자거나, 경제적 다양성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대신, 애나 칭은 자본주의가 의존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들에 주목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경계에서 틈을 만들자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다른 상상력,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면에서는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좀 우화 같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끼워맞추기 아냐 싶기도 하다.
    - 송이버섯과 관련된 패치 속 인간들의 '자유'가 특히 그렇게 느껴진다. 그들의 자유가 적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내몰린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 또, 채집은 노동도 일도 아니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일이 강제와 자유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지 않나?
    - 애나 칭은 '작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여전히 내게는 그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책을 더 읽어보면 달라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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