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후기> 종과 종이 만날 때 8장~12장

스프링
2023-09-04 16:04
269

‘세속적인’ 함께 되기

 

오늘은 해러웨이를 문자로, 말로, 영상으로 만났네요.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니 제법 친숙해진 것 같아요. 영상(도나 해러웨이 : 지구 생존 가이드)에서 해러웨이가 웃으니 저도 따라 웃게 되었어요. 약간 뜬금없고 천진하게 보이는 그 웃음이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고 해야 하나? 사람은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데 책은 왜 이케 내 두 눈을 부릅뜨게 하는 걸까요? 그의 시적 은유와 아이러니, 유머를 모르는 채로, 등을 곧추세우고 이마에 내천자(川)를 그리며 너무 진지하게 책을 읽은 거죠. 발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책을 여러 번 읽었더니, ‘아 이게 유머였구나’ 하는 ‘탁’의 순간이 올 때도 있더라고요. 다음 발제자에게 ‘탁’을 토스합니다. 아, 탁은 토스할 수 없는 거네요. 토스하고 싶은 제 마음을 토스합니다.

 

상호유도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 등 다양한 생명체와 비생명체들이 존재하며, 이 존재들이 맺는 관계들에 의해 세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인간 역시 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지만,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거대한 착각을 합니다.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는 ‘유능하고 똑똑한’ 인간이 세상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진단한 ‘지구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생각해보면 세상은 인간의 의도와 계획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입니다. ‘공서식’이자 그것의 축적의 결과인 ‘공진화’입니다. “내가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한, 나도 테크놀로지에 의해서 사용된다.”(326, Don Ihde) 현재 엄마랑 한 집에 사는 저는 저보다 나이가 많아 신체적으로 더 약하다고 생각되는 엄마의 건강을 살핍니다. 제가 엄마를 보살피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엄마에 의해 가스 라이팅 당하는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엄마의 몸이, 마음이 요구하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면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언어로 명령하지 않을 때에도 온몸으로 자신의 요구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언어라고 본다면 이는 꼭 문자 언어에 국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언어는 소통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언어가 과연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근거로 적합한 것일까? 의구심이 듭니다. 인간의 언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존재들의 표현 방법을 알아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관계는 권력관계이며 힘들의 크기와 강도가 다릅니다. 해러웨이는 이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을 ‘세속’이라 말하며, 여기에서 출발하자고 합니다. 누구도 수단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목적이 되는 세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적과 수단, 지배와 복종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인간 역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다른 존재들과 함께 잘 살 수 있습니다. 해러웨이는 주의를 기울이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반려종 카옌과 함께 하는 어질리티 훈련에서 둘은 서로가 서로의 훈련사입니다. 장애물 경기인 어질리티 게임의 구성 요소인 장애물은 정해져 있지만, 그 배치는 게임 당일 시합 전에 참여자인 인간에게만 먼저 공개됩니다. 개가 아무리 장애물 뛰어넘기를 잘 한다고 해도 잠시의 멈칫거림은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인간은 동선을 파악하고 개가 이 게임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개의 움직임을 유도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야 하는 거지요. 개와 인간의 상호 유도에 따른 완벽한 의사소통이 시간을 다투는 이 게임의 관건입니다. 실패와 성공의 순간들을 지나, 장애물을 보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몸의 반응들은 함께 훈련한 수많은 시간들의 결과입니다. 이 배움의 과정 없이 순간의 주의집중만으로는 게임에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훈련으로 쌓인 신뢰의 결과가 ‘타이밍’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감응은 단지 한 순간의 느낌만이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영양가 있는 소화불량

 

21세기의 기술과학 문명이라는 장 속에서 사는 우리들은 그것들을 외면하거나 제거한 채로 살 수 없습니다. 이미 스마트폰은 우리의 눈이자 손의 연장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물질이 발명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사용하는 물질들에 의해 내 삶이 제한되고 확장되며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호유도입니다. 자본주의의 자장 안에서는 기술문명을 사용하며 점점 편리해지는 만큼 나는 그 기술문명의 데이터베이스로 제공되고 활용됩니다. 이 현실 속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들을 발명하고 삶의 실험들을 해볼 수 있을까요?

 

하나의 단일한 실천이나, 단일한 윤리를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전에 해러웨이처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실천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자기 확신을 의심하고, 다르게 먹는 자들을 나보다 못하다고 여기지 않고, 어떻게 더 잘 함께 먹을까에 대해 더 알거나 느끼려고 하는 것이 해러웨이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분법을 넘어 존재의 다양한 측면, 얽힘들을 더듬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선택을 안 하는 것도 선택입니다. 선택을 안 하는 것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 해러웨이가 말한 소화불량일 것입니다. 제 버전으로 말하자면, 과식했으면 과식한대로 소화불량을 안고 감당하기. ㅎㅎ

 

저는 이번에 마지막 장에서 해러웨이가 제안하는 ‘이별의 식사’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우리는 모두 먹는 자, 먹히는 자가 될 수 있는 식사 동료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해놓고 갑자기 이별의 식사 운운하는데, 그가 제안하는 식사의 내용이 이해가 안 되니 이별도, 식사도 이해가 안 되고. 이별이라는 게 이 책을 끝낸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그 단순한 말도 대다니 진지하게 받아들인 거죠. 이런 된장. 그러나, 알려고 노력했다고 해서 꼭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죠. 애쓰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기쁨. 그것만이 전부입니다. 결과에 연연해하면 다시 목적 중심의 방식으로 돌아가게 되는 삶의 되풀이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걸려온 전화 속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 점심식사한 식당에 물통과 젓가락을 두고 왔으니 낼 찾으러 간다고 전화하고 그 결과를 알려달라는 심플한 내용입니다. 그 간단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저는 일단 식당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름을 알아내야 합니다. 엄마만의 문법 속에 자리한 식당을 알아내기 위해 ‘거시기’와 ‘쩌~기’와 ‘이쪽’과 ‘저쪽’을 해독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과일이 없다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고 땀 뻘뻘 흘리며 두 손 가득 장을 봐서 가는 길에 받은 전화에 한숨이 나지만,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최종적인 평화라는 목적인 없이 차이 속에서 함께 번영하는 법을 더 배우자’는 해러웨이의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보며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371) 근데, 기쁨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엄마의 불안을 못 견디는 저의 불안을 못 참고 식당으로 향하고야 마는 저의 발걸음 속에 있을까요? 이만 총총.

 

댓글 8
  • 2023-09-06 11:09

    후기 쓰시느라 고생하셨어요. ㅅㅇㅅ 정서적보상!
    약간 뜬금없고 천진하게 보이는 그 웃음, 저도 무장해제 당했네요.
    저는 그 웃음이 문탁쌤의 웃음과 닮은것 같기도 해요.
    감이당 니체수업에서 첨 뵌 문탁쌤이 좀 뜬금없이 웃는다는 첫인상이 있어서..ㅎㅎㅎㅎㅎ
    어머니를 다 돌보고 있는 3조 카풀멤버들.
    제가 돌본다고 하지만 저도 엄마에게 돌봄을 받는거라고 여겨져요. 정부미(요새는 나랏미)가 나오는 엄마집에서 쌀도 가져오고 김치며 부식등을 챙겨오기도 하고.. 수고한다고 용돈도 받아 쓰고 있으니..ㅅㅇㅅ 쩝..
    이번주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읽기가 더 나은것 같아요.
    근디 무슨 후주가 본문과 맞먹는 양인지..ㅎㅎ
    이번주 또 즐겁게 뵈어요.
    발제와 질문이 없는 아주 드문 주..
    그러나 청소와 간식이넹..ㅎㅎㅎㅎㅎ

    • 2023-09-06 11:32

      앗, 내가 뜬금없이 웃는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3-09-06 11:31

    샘, 후기가 좋아요.
    해러웨이라면, 이런 후기 - 일종의 실뜨기 후기?!!! - 를 좋아했을 것 같아요^^

  • 2023-09-07 13:33

    그러게 후기가 꼭 에세이 읽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
    기쁨을 항상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만 찾으려고 하면 안될 것 같은디요? ㅋ
    기쁨은 다른 곳 다른 관계에서!!

    • 2023-09-07 14:07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찾고싶은. ㅎㅎ

  • 2023-09-07 15:44

    스프링 샘,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

  • 2023-09-08 10:51

    저도 영화보면서 헤러웨이랑 좀 가까워졌는데.. 책읽으면서 다시 멀어졌.. ㅋㅋㅋㅋ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게 제. 장래희망인데! ㅋㅋ)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3-09-08 11:38

    영화! 두 번 보니 웃으며 보게 됐어요^^ 처음 봤을 땐 해러웨이 혼자 해맑고 유머러스한데 그게 나와 어떻게 연결될까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엔 해러웨이를 읽어가며 영화를 보니, 더 알게 된 점들이 있어 해러웨이의 웃음을 따라 웃게 됐어요. 스프링님 후기를 읽으면서는 ‘세속적’ 이라는 키워드와 ‘소화불량’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쏙 들어오네요. 이걸 어떻게 세속적으로 소화불량상태가 될 것인가? 에세이 주제로 잡아봐도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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