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에게 - 부치지 않을 편지

먼불빛
2024-04-06 21:40
59

봄이 왔습니다.
산수유 다음 목련, 그리고 개나리가 노란 꽃잎을 줄줄이 엮어낼 무렵이면 목련은 벌써 잎을 떨구고, 달빛 아래 하얗게 핀 벚꽃은 눈이 부십니다. 1946년 런던의 지저분한 거리에 찾아왔던 그 봄이 2024년 이곳 도시에서도 제각각의 신호로 찾아왔습니다. 희뿌연 황사바람으로, 아파트 숲 사이를 빠르게 비행하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후미진 골목 찬 시멘트 바닥에 내리쬐는 햇빛, 그 모두가 봄의 신호입니다.
봄은 먼 아지랑처럼 여린 기운으로 슬며서 당도하여 겨우내 꽁꽁 언 마음을 해체시키고, 죽은 듯 비쩍 마른 앙상한 나무가지에도 옅고 푸른 싹을 틔우게 만드는가 하면,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누런 잔디풀에도 풋풋한 연두색을 되찾게 만듭니다. 이제는 TS 엘리엇의 잔인한 4월 보다도, 비발디의 사계 보다도, 오웰 당신이 예찬한 봄을 더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시대에 심어졌을 지도 모를 나무들이 있는 먼 산을 바라보며, 지금 당신이 내 처지였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떻게 행동했을까? 어떻게 하루를 살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웰 당신이 살았던 시대와 나의 시대는 반세기에서 한세기쯤 차이가 나나봅니다. 이제는 등잔불을 밝힐 필요도 없고, 언제나 어디서나 전기를 마음대로 쓰고, 문명이라고는 별로 없던 쥬라섬에서도 방금 다 쓴 원고를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 세계 어디로든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만약 드라마처럼 당신이 살아 지금의 시대로 타임슬립을 했더라면 놀라 자빠지면서, 짧게는 좋아했다가, 아주 길게 오래도록 탄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늘 그랬던 것처럼 또 글을 쓰겠지요. 당신은 언제나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명료했으니까요. 기후 위기에 반하는 정치와 행동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생활 속속들이 파고든 자본주의 프로파간다를 낱낱이 파헤치는 에세이를 쓰는가 하면, 지금 시대 인간이 갖고 있는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는 어떤 소설을 발표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  글쓰기는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 결코 계량화 될 수 없는 사적이며, 우회적인 순간들을 옹호하기 위함이겠지요. 정원을 가꾸는 일, 미래를 위한 장미를 심거나, 크로커스 구근, 혹은 유실수들을 심으며, 낚시할 생각에 빠지거나, 혹은 어느 연못에 두꺼비를 멍하니 관찰하며, 봄이 어디쯤 왔는지 계산할 그런 시간들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것이 선명해지지 않습니다. 엊그제 했던 어떤 사람들과의 논쟁도, 지금 모든 것을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도, 무엇을 위해 이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지, 충만한 삶을 위해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하는 것이 좋은지를 말입니다.
겨우 두 주 전에 이중생활을 하며, 조금 더 충만한 일상을 찾겠노라 다짐했던 날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이럴 때 당신은 아마도 틀림없이 정원으로 나갔을 것입니다. 이 시대가 너무 구역질 난다고 저주를 퍼부으며 곡괭이로 겨우내 마른 땅을 몸이 부서져라 파헤치다보면 모든 것이 선명해졌을까요? 아니면 그리고 나서도 가사일기를 쓰고 또 따로 짬을 내어 에세이를 쓰면서 더욱 선명해졌을까요?

 

벌써 저녁 9시를 훌쩍 넘겨버렸네요.
당신처럼 몸이 부서져라 가꿀 정원은 없지만, 한동안 소홀했던 화분에 물이라도 주어야겠어요. 마구 자란 잎도 치고, 가지도 쳐주며 실외 베란다로 화분들을 옮기고 봄맞이를 해봐야겠어요. 스파트필름 하얀 꽃대가 새로 올라왔네요. 죽은 줄 알았던 쟈스민 잎도 다시 파랗게 살아나왔습니다. 저는 오웰 당신이 했던 말을 다시 상기하며,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려 합니다.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는 신의를 위해 ‘흔쾌히’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정다운 육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금욕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이는 특정한 타인에게 사랑을 쏟자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다).“ (<나는 왜 쓰는가> 455쪽/ 간디에 대한 소견)

 

흔들리더라도 뿌리는 내려야겠습니다.

당신이 미래를 위해 했던 반세기 전에 그 모든 것들이 오늘 제게 닿았습니다.  당신이 바라던 아름다운 예술로 말입니다.

 

댓글 5
  • 2024-04-07 21:36

    뒤숭숭하더라도 뿌리는 내려야 겠지요.
    봄이 왔으니.. 辰월이라 땅은 푹신하니 괜찮을 듯 한데요.
    어찌 편지글을 생각해내셨어요?
    '오웰과 나'라는 주제에 누구보다 가까이 가신 것만 같아요.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라니 ㅎ

  • 2024-04-07 22:11

    시월애, 동감 혹은 시그널 같은 시간을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된 듯 한 장면 같은 묘사는 저마져 그편지가 꼭 조지오웰의 시대로 휙 날아갔음 하는 바람이 들어요
    먼불빛샘을 가만 두지 않는 여러장치들을 잠시 미뤄두고 조지오웰과 함께 정원을 가꾸어 나가는 모습도 상상해 보네요~
    먼불빛샘의 베란다 화분 , 꽃들을 가꿀 수 있는 여유를 꼭 만드셨음 좋겠어요~ 스며드는 그 무언가를 느껴보시길 바래봐요~

  • 2024-04-08 13:29

    조지오웰이 어떤 답장을 보낼지
    이미 알고 계신것 같아요
    베란다에 다시 찾아온 봄을 만지고
    가꾸어다보면 삶은 또 그런대로
    전개되겠죠..
    편지형식의 글쓰기 정겹고 다정했습니다~~

  • 2024-04-12 06:05

    지금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오웰은 글을 썼을까? 썼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것도 같고, 명확한 건 하나도 없네요. 옮겨주신 부분 책을 읽으면서도 좋았는데, 다시 한 번 읽어보며 또 좋다고 생각해봅니다.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는 신의를 위해 ‘흔쾌히’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정다운 육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금욕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이는 특정한 타인에게 사랑을 쏟자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다).“ (<나는 왜 쓰는가> 455쪽/ 간디에 대한 소견)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 하물며 나도. 이런 안전핀을 갖고 현실의 폭탄들에 대체해나가야겠지요.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더라도 뿌리를 내리겠"다는 마음으로.

  • 2024-04-20 20:00

    편지글 형식의 글쓰기라니... 먼불빛님 너무 멋지세요.
    흔들리더라도 뿌리는 내리겠다는 마무리 글에 저도 그러겠다는 다짐을 하게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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