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동 대신시장"사랑방"

단풍
2024-04-0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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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시즌1/나는왜쓰는가/2024.04.07/단풍

 

신길동 대신시장 “사랑방”

  코로나로 노인복지관이나 문화센터의 운영이 축소되어 갈 곳 없어진 어르신들이, 노인쉼터로 모인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겉모습은 치매예방쉼터, 시니어쉼터라고 표시되었다. 내부에 들어가는 카메라에 잡힌 둥근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고, 그 위에 녹색천이 깔려 있다. 테이블 마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화투놀이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들의 여가시간을 지역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는 부족하여 화투방이 성행하고 있는 원인으로 꼽으며 곱지 않은 시선과 우려의 기사였다.

 

  나의 유년 시절 우리집은 식당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위치는 신길동 대신시장 입구 앞이다. 식당의 구조는 입구에 들어와 홀을 지나면 주방이고, 주방에 이어진 작은 계단을 올라가면 방이 있어, 위에서 아래로 긴 세로 형태였다. 그 방은 이른 저녁이 되면 아빠의 화투방으로 변신했다. 선수들이 입장을 하는 시간이다. 선수들은 주로 대신시장의 상가를 운영하시는 아저씨들이다. 옷가게, 이불가게, 지물포, 야채가게, 한복가게, 쌀가게 아저씨들은 저녁쯤 되면 자연스럽게 모인다. 식당은 대신시장 입구 앞이라는 위치와 술과 음식의 기동성만 두고 보더라도, 화투방으로 적당한 장소는 맞는 것 같다. 단지 불편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방을 다른 목적으로 알고 있는 국민학생 두 아이이다. 자신들의 책상이 있고, '후뢰시맨'을 실컷 볼 수 있는 텔레비전도 있는 방에, 자욱한 담배연기는 기본, 담배꽁초며, 뱉어낸 침들은 사용했던 술컵에 고스란히 있었고, 더해서 화장실은 식당을 나가야 하다 보니 새벽에 쓸려는 목적으로 우리집은 요강이 있었는데, 그것까지 쓰는, 이건 너무 싫었던 순간이다. 화투방은 자신의 몫을 똑똑히 다하고 다른방으로 변신하려면 번거로운 일들이 많다. 나는 이런 번거로움 보다 더 격한 분노를 느꼈던 것은 ‘후뢰시맨’을 보지 못하는 억울함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대신시장 근처에서 보내는 나와 동생은 지금 생각해보면 좀 엉뚱하고 나쁜짓을 했다. 대신시장의 상가들은 대부분 벽이 없는 형태라 손쉽게, 그리고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진열되어 있는 상품에 손을 될 수 있었다. 내 손을 탄 상품은 뒤죽박죽 이가게 저가게 다시 진열되었고, 이가게 열쇠 뭉텅이를 가져와서 저 가게에 두고 오는 방식으로, 어른들을 골탕먹이는 행동였다. 나 뿐 아니라 동생도 동참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장에서 동생이 어른들 한테 혼난 모습도 목격했다. 나는 무서워 도망갔지만 말이다. 사실 대상은 정해져 있다. 우리 집에 와서 방을 엉망으로 만들고는 유유히 퇴장하는 옷가게, 이불가게, 지물포, 야채가게, 한복가게, 쌀가게 아저씨들이다. 어른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재미는 길게 하지는 못했다. 엄마한테 식당 주방에서 방망이로 정신없이 맞고, 그만 두었다.

 

  어찌되었든 식당은 엄마의 억척스러운 부지런함과 아빠의 화투방이 존재하기에 돈을 벌었던 것 같다. 반 지하이지만 방이 2개 있고, 화장실이 집안에 같이 있어, 요강이 필요 없는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고, 화투방은 공사를 해서 넓은 홀로 만들었다. 아빠의 화투방이 어디까지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화투방 인연으로 백반메뉴가 주 메뉴 이던 식당이 수원숯불갈비로 재탄생하게 해준 주방장을 만났다. 화투방은 어떤 방향으로 든 우리집의 큰 영향을 주었다.

 

  2년전 72세 아빠는 돌아가셨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한달동안 중환자실, 한차례의 수술을 받고,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커피믹스와 사이다를 입에 한방울도 되지 못하고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늘 말하던 “늙으면 한방에 간다” 라는 말을 실천하신 것 같다. 아빠의 장례식에는 대신시장의 화투방 아저씨들은 오시지 않았다. 엄마가 연락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 하셨다. 아빠가 서운하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를 인천가족공원에 모시고 나는 아빠의 위패를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고, 함께 신길동 대신시장으로 향했다.

 

  쌀가게는 여전히 있었다. 아주머니만 계셨다. 아저씨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준비해간 음료수를 건네며 인사를 드렸다. “수원식당 강영수딸이예요” 그러니 알아보신다. 아빠가 몇일전에 돌아가셨어요 했더니 ”갔구나 갔어”하셨다.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보이시면서 착하단다. ‘일성사’ 아저씨도 계셨다. “안녕하세요 강영수씨 딸이예요” 아빠가 나의 결혼식에 예물시계랑 반지를 맞췄던 곳이기도 했다. 아빠의 소식을 전달했다. “형님도 갔구나” 하신다. 아빠가 여기 많이 오고 싶어 하셨는데 못 왔어요 하면서 대신 인사들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패기 넘치던 아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빠의 생사를 알았으면 했고, 대신시장에 아빠를 좀 머물게 하고 싶었다.

 

  화투방이 사랑방의 이미지는 될 수 없다. 특히 나에게 남은 부끄럽고, 혐오스러운 어린시절의 이미지는 나이가 들면서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아직 까지도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화투방 자체를 사회에서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것은 나의 경험상으로도 단면만 보는 것 같다. 물론, 타짜라는 영화와 같이 화투를 이용해 도박판에서 거액이 오고 가는 면도 분명 존재하지만 말이다. 어르신들의 화투놀이가 분명 도박판과는 다른 성질일 것이다. 아빠의 화투방도 어떤 면에서는 미니 도박판으로 굴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시장상인들의 고단한 저녁시간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화투방을 만들어 아빠는 영업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건 화투의 대한 나의 이미지는 어렸을적처럼 날이 서있거나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가시간에 핸드폰이 없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아이들과 고스톱을 치면서 대동단결하는 경험을 몇차례 하면서, 비대면의 세상에서는 대면으로 가는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니 말이다.

댓글 2
  • 2024-04-06 19:27

    동천동 벚꽃이 만개하여... 도저히 집에서만 있기엔 억울해서 더는 못 앉아있겠어요~^^

  • 2024-04-07 21:56

    벗꽃은 보고 오셨나요? ㅎ
    아까 헤어져 돌아가시는 길에도 꽃들을 보셨겠군요.

    저는 최근에 친정 아버지와 육백을 칩니다. 고스돕보다도 룰이 복잡해서 칠 때마다 다시 배워요.
    아버지는 치매 초기인데 육백을 치면 우리 것도 다 계산을 하실 만큼 총명해지세요.ㅎ
    사주 명리학을 배우며, MBTI보다 더 좋은 성격검사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화투도 어느 보드게임보다 더 재밌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여러가지 생각나게 하는 피부에 와 닿는 글이예요.
    이제 글을 못쓴다는 말은 빼셔도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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