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잡식가족의 딜레마> - 페스코비건 선언

경덕
2022-11-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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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이번 공생자행성 주제이지만, 2016년에 내가 처음으로 본 동물권 다큐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당시에 나는 하숙집에 살고 있었는데 수요일 저녁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특식으로 삼겹살을 구워주셨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채식을 시도했지만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고기냄새가 주방에만 머물지 않고 문틈으로 솔솔 들어와서 나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나는 채식지향인이라는 애매한 정체성으로 웬만하면 채식을 하려고 했지만 종종 냄새와 허기에, 여러 딜레마 앞에서 쉽게 타협했다. 
 
올해는 몇 가지 이유로 조금 더 특별한 해를 보내고 있다.
 
1. 나는 새벽이와 만나고 있다. 새벽이는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이다. 나는 새벽이가 살고 있는 새벽이생추어리를 오가며 보듬이(자원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2. 나는 작년부터 부모님이 살고 있는 주택 옥탑방에 거주하고 있다. 분리되어 있고 생활 패턴이 달라서 부모님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한 건물에 살고 있다 보니 종종 부모님 집 냉장고를 탐하게 된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내 식사 메뉴에 영향을 준다. 
 
3. 얼마 전 청년들과 밀양으로 농활을 가서 감을 엄청 땄다. 저녁으로 같이 카레를 만들어 먹었는데 고기를 넣은 카레와 넣지 않은 비건 카레로 준비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비건 카레 존(zone) 앞에 앉았다. 근데 옆에 앉은 현민님이 "저는 페스코 비건이에요." 라고 하길래, "오, 저도 페스코 비건이요! 11월 부터!!" 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공생자 행성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참에 나는 11월을 페스코비건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유연한 채식지향인이라는 이유로 잡식가족, 혹은 잡식사회 안에서 마주하는 딜레마를 비교적 쉽게 피해왔다. 고작 한 달이지만 페스코비건을 선언한 나는 앞으로 어떤 딜레마와 만나게 될까? 나는 냄새와 허기 앞에서, 잡식 가족과 잡식 사회의 딜레마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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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코 비건 : 유제품, 동물의 알, 해산물 까지는 허용하는 채식주의자. 
 
댓글 18
  • 2022-11-09 14:41

    경덕님! 응원합니다!
    얼떨결 아닌 준비된 페스코비건 이신듯.
    저두 17개월째네요.

    • 2022-11-09 22:06

      오! 참샘 페스코비건이셨군요. 세미나에서 궁금한거 물어봐야지ㅎㅎ

  • 2022-11-09 15:05

    와 생추어리활동 고맙고 응원합니다~
    표를 보니 잡식인인 저도 조금씩 줄어볼 수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 2022-11-09 22:08

      저도 이번에서야 제대로 들여다보았네요. 단계별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2022-11-09 17:47

    11월 경덕님의 딜레마 기대됩니다~~
    페스코 비건인의 슬기로운 식생활에 어떤 사건들이 끼어들는지 흥미진진^^

    • 2022-11-09 22:11

      저도 궁금하고, 걱정되고, 기대도 되고 그러네요ㅎㅎ (두근두근)

  • 2022-11-09 20:17

    발이 네 개인 생명동물만이라도 그만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경덕씨 글을 보니 드네요
    잡식 사회와 잡식 가족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편안한 선택을 해온 나도
    꿈을 가지고 한 달 만이라도 시험해봐야겠다.

    • 2022-11-09 22:14

      오, 한 달 이후에 시험해본 소감을 샘과 나누고 싶네요!!
      조금 불편하겠지만 (아마도) 뜻깊은 11월이 되지 않을까요?:)

  • 2022-11-09 22:38

    모든 일에 뜻밖에 '우연'은 없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밀양에서의 선언이 그저 분위기에 편승한 무엇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럼, 그럼. .
    때문에 그 선언에 대한 부담 가질 이유가 없지요~
    어떠한 가치에 자신의 행동을 가두는 것이야말로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문제는 믿음으로 귀결되는 건 아닌가, 우리집 개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무언지 깨닫게 해 줍니다. 고마운 존재죠. 아, 사람을 그리 대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께 없는데 말이죠.
    경덕님의 선언에, 한 달에, 식사에, 일상에 응원을 보냅니다. 믿음. . 그것이 전부 입니다.

    • 2022-11-10 23:01

      무언가를 선언하는 것이 저한테는 낯선 방식이라 저 스스로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하더라고요.
      부담은 내려놓고 말씀해주신 '믿음'에 대해서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ㅎㅎ 응원 감사해요!

  • 2022-11-10 17:58

    새벽이생추어리를 후원하고 있지만...전 아직 채식주의도...비건도 아무것도 시도하지못하고 있네요..
    경덕님의 11월을 응원하면서....21일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서 배워볼께요^^

    • 2022-11-10 23:39

      오! 단풍샘 매생이셨군요!! 덕분에 생추어리에서 무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발자취 남겨보겠습니다..ㅎㅎ

  • 2022-11-11 08:14

    경덕님 반가와요
    다들 경덕님 글 재밌다고 하셔서 ㅋ
    저도 기대하며 들어오게 되네요.

    새로운 단어도 많이 나오고 ㅋㅋ
    매생? ㅡ 대충 느낌은 알겠어요

    • 2022-11-12 00:44

      '매달 새벽이생추어리를 후원하는 이', '매일 새벽이생추어리를 응원하는 이' 를 줄여서 매생이라고 해요!
      단풍샘 새벽이생추어리 후원자님ㅎㅎ
      노라샘 덕분에 새로운 시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 2022-11-11 08:26

    한달에 한 번 주역강의 들을때 줌에서 만나는 경덕님!
    공생자행성에서 보니 더욱 반갑네요^^

    • 2022-11-12 00:50

      앗 띠우샘 안녕하세요! 조만간 11월 강의때 또 뵙겠네요ㅎㅎ 저도 반갑습니다!!

  • 2022-11-15 22:22

    저도 매생이입니다!! 너~~무나 반가워요~ , 동물해방물결 회원이구요. 코로나 터지고 나서부터 비건지향입니다.
    종종 못해도 너무 자책하지 마셔요. 주변환경이 채식, 비건 지향인들에게 너무 열악해서 분명 다양한 혼란이 있을거에요.
    오히려 하고있는 부분, 오늘 한 부분들 인정하면서 스스로 감사하면서 버티다보면 점점 익숙해집니다!! 이렇게 이야기나눌 곳도 있구요!

    • 2022-12-07 01:22

      헉 댓글을 이제서야 봤네요!!! 매생이 아낫샘 너~~~~~~무 반갑습니다ㅎㅎ
      말씀하신 다양한 혼란을 겪는 중이라 샘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또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