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노래, 첫 시간.

소소
2014-01-15 01:24
1239

지난 주 세미나 후기를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네요.

잊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세미나 준비하면서 떠올리고 열심히 썼는데, 컴에 익숙치 않아서 날려먹고 두번째 다시 씁니다.

에고 늙으니 사는게 힘드구나, 중얼거리며 또 새롭게 씁니다. 아까보다 더 좋은 후기가 나올꺼야, 위로하면서요.

 

몸의 노래라는 이 책은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학자가 쓴 책입니다. 중국과 그리스로 대표하는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저자의 박식함에 우선 놀랍니다. 때로는 그 박식함이 이 책을 재미없고 지루하고 졸리다고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그 종횡무진 박식함이 길을 잃지않고 주제로 돌아와서 내용을 풍요하게 합니다. 동양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진맥이 사실은 역사이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내과의사의 중요한 진단수단이었다는겁니다. 역사이전에는 진맥이 없었죠. 해부학과 같이 발전한 진맥은 이후 동서양이 서로 다르게 발전합니다. 각각의 맥은 자신의 독특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고 여러 영역으로 구획되어 있는 몸을 각기 다른 맥이 제어한다고 동양은 생각하지만 서양은 심장과 동맥과 박동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단선 고리로 생각합니다. 동양은 맥진으로 심장과 오장도 진단할 수 있고 손목에도 몇개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진맥을 중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진맥이라는 전통을 서양에서는 그래프와 숫자로 대체하게 하고 동양에서는 건재할 수 있게 하였는가 하는것입니다. 확실성을 추구하는 서양은 맥진의 상징적 비유적 표현을 모호하고 불확실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중국은 마음이 이해하는 것을 입은 전할 수 없다며 모호함을 인정합니다. 언어적 표현과 그를 대하는 태도와 입장의 차이가 맥진의 운명을 갈랐던 것이죠. 맥진과 한의학의 진맥은 귀로 듣는 말뿐만 아니라 촉각으로도 표현되어지는 무엇에 대한 열린 태도에서 시작되고 번성합니다. 객관적으로도 지각되지만 주관적으로도 느껴지는 것에 대해, 그리고 매일 매일 경험하는 감각적 친밀함과 그에 대한 확신이, 그를 표현하는 언어적 한계를 인정하며, 오히려 한의학이 확실성속에서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특히 모호함과 확실함에 대해 많이 토론했지요.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가졌을 포용성, 확실성에 대한 서양의 편향성이 과학의 발전을 가져 왔을 거라는 점, 그러나 모호함이 사라진 확실성은 확실히 좁은 세계라는 것.

그리고 다른 곳에서라면 공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자신의 병들과 난무하는 처방들. 병과 몸이 깃든 일상성속에서 조우하는 타인들과의 만남. 저는 이 시간이 젤로 좋습니다. 병과 몸속에 자신들의 인생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죠. 공부와 삶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동의보감에 있는 황당무계한 처방들을 읽을 때도 저는 좋습니다. 동의보감에는 훌륳한 처방들도 많을 겁니다. 저는 이제 조금밖에 안읽어서 그런지 황당한 처방만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웃음도 같이 떠오릅니다. 동의보감은 의학서가 아니라 아직은 저에게 몸과 병을 주제로 한 생활사같이 느껴집니다. 듣도 보도 못한 약초들과 처방, 그리고 각가지 증상의 병들. 벌레도 무지 많더군요. 저의 몸은 제 것이 아니라 오장 육부의 것, 기혈의 것, 우주의 것, 벌레들의 것이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런 깨달음이 좋습니다. 저는 공유되는 것이라는 점이, 삶을 열어놓게 합니다. 죽음도 열어놓게 합니다. 저를 잘 돌보는 것이 우주를 잘 돌보게 하는 것이라고 믿으면 과장일까요 ? 동의보감의 세계는 환타지와 모험이 있는 미시적이지만 우주적인 세계입니다.

댓글 2
  • 2014-01-16 13:05

    기다리던 후기가 드뎌...

    샘의 마음이 바로 저의 마음이네요. ^^

     

  • 2014-01-22 11:50

    <몸의 노래>를 지금 읽고 있는데 뭘 말인지 몰라 헤매고 있어요ㅠㅠ

    "병이 자신의 인생"이고 "내 몸이 우주의 것"이라는 소소님의 통찰에 공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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