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규정하는가?

수영
2024-04-06 21:56
52

누가 나를 규정하는가?

 

여덟 살, 아니면 더 일찍부터, 죄의식은 내 주변을 멀리 떠나 있은 법이 없었다. 내가 애써 냉담하거나 반항적인 듯 보이려 했다면, 그건 단지 응어리진 수치와 낙담을 가리기 위한 얇은 덮개일 뿐이었다. 나는 소년시절 내내 내가 변변찮은 존재이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고, 재능을 망가뜨리고 있으며, 너무도 어리석고 못되고 배은망덕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아주 깊이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중력의 법칙처럼 절대적인 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으나. 그 법을 지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지 오웰, 정말, 정말 좋았지」 『나는 왜 쓰는가, 394)

 

조지 오웰은 어린 시절 내내 죄의식의 주변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 생각들은 세인트 시프리언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자신도 모르게 몸에 스며든 생각과 감정들이었다. 오웰은 학교를 떠난 뒤로도 자신이 못생겼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했고, 실패할 거라 확신했으며, 2, 30년간 그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학교에서 이 같은 느낌을 받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작위도 없고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위의 글에서 소년을 소녀로 바꾸면 내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감정과 대체로 비슷하다. 나 또한 아주 오랫동안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아직 그 감정의 자장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웰의 자전적 에세이 「정말, 정말 좋았지」를 읽으며 어린 오웰이 가졌던 처연하고 슬픈 감정들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그의 글솜씨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오웰이 그 학교에서 받았던 처우가 초, 중, 고 내내 내가 접하는 사회, 내가 처한 환경에서 주던 피드백과 유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원도 원주군 신림면 송계리(지금은 원주시에 통폐합되었다)에서 자랐다. 원주에서 버스로 한 시간 넘게 걸렸고, 면 소재지에서도 30리는 떨어져 있는 그야말로 강원도 산골이었다. 우리집은 마을에서도 외따로 떨어진 골짜기에 있었다. 나는 7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는데 아파도 보채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다고 한다. 부모님은 많은 농사일에 늘 지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얼굴에 화색이 돌거나 농담을 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드믄 일이었다. 늘 적막했던 우리집에 어쩌다 품앗이 때문에 이웃들이 일하러 오면 새참 시간에 당시에는 젊었던 아버지가 농담이라도 하시면 그게 그렇게 낯설었던 기억이 있다.

오웰은 자신을 “나는 돈이 없고, 약하고, 못생기고, 인기 없고, 기침을 달고 다니고, 겁 많고, 냄새 나는 아이”(421)였다고 표현하는데 거기에 더해 나는 주근깨 투성이 말라깽이에 누런 코를 달고 다니는 아이였다. 나는 늘 1등을 독차지 하던 바로 위 언니에 비해 공부를 못했고, 유독 체력이 약했고, 운동신경이 없었다. 한 번은 시험 성적이 떨어져서 엉덩이를 맞는데 선생님이 언니와 비교하며 “까불기만 하고 말이야”하면서 매를 때렸다. 하지만 나는 까부는 아이는 아니었고, ‘집 없는 아이’ 같은 계몽사 시리즈 책을 읽으며 내가 원래는 부잣집 아이였는데, 이 집에 버려진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공상을 하는 좀 예민한 아이었을 뿐이다.

고등학교 때는 원주에서 자취를 했다. 당시는 교복 자율화 시대였고 반에서 몇몇은 나이키 신발과 아디다스 비닐 가방을 가지고 다니던 때였다. 나는 늘 언니들이 물려준 옷을 입고 학교에 다녔는데, 고등학교 내내 딱 한 번 엄마가 사준 청바지를 빨래 줄에 널었다가 누군가가 걷어가는 바람에 잃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도회지에 나와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가난한 농부의 딸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고등학교 때 주말이면 집에 들어가 방세나 학비, 생활비 등을 받아서 나오곤 했는데, 나는 시골집에서 돈을 받아 나올 때마다 뭔가 더 분발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우리가 요구하면 돈을 주시긴 했지만 나는 유난히 부모님이 안스러워서 필요한 것을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늘 부족한 돈이었기에 다음번 집에 들어갈 때는 들어가는 버스비를 주변의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꾸어야 했고, 때문에 친구들이랑 떡복이집을 들리는 일은 고등학교 내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다. 대학을 보내줄 수 없다는 부모의 말도 원망 없이 받아들였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보내주셨는데 탁월한 성취를 보여드리지 못하니 죄송할 따름이었다. 조지 오웰은 교장 부부를 증오했다지만 나는 모든 것이 언제나 게으르고 못난 나 자신의 잘못이므로 누구도 탓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웰이 살던 시대도 그랬듯이 “미덕이란 남들보다 더 크고, 강하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좋고, 세련되고, 거리낌 없는 데 있었”(419)는데 나는 그 어느 것도 가지지 못했다. 그 때의 선생님들도 오웰이 다닌 시프리언스 학교의 교장 부부처럼 부유하고, 공부 잘하고, 활기찬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지배적인 기준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내 기준에서도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늘 패배감에 괴로워하며 지내지는 않았다. 오웰처럼 자괴감 속에서도 “생존 본능”과 “나름대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나는 기존의 가치 체계를 뒤집거나 성공하는 존재로 변모할 수는 없었지만, 내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수는 있었다.”(142)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므로 각자의 자리에서 소소한 행복을 일구고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서 싫다’같은 일종의 도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늘 지배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늘 분발과 열심을 다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오웰은 자신을 괴롭히던 헤일이라는 소년을 불시에 공격하고는 스스로 비겁한 짓이었다고 자책하지만 “당시의 나는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자가 처하게 되는 도덕적 딜레마를 뛰어 넘는 시야를 갖추지 못했다. 그때 내가 못 본 건 규칙을 깨라, 아니면 죽는다 라는 교훈”이었다며 자신은 “소년들의 세계에 살았고, 소년들이란 어울리기 좋아하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강자의 법을 받아들이며, 자기보다 작은 아이에게 굴욕을 물려줌으로써 자신이 당한 굴욕을 갚는 존재”(424)였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저 몽매한 소년들의 세계에 사는 기분이고, 오웰은 어떻게 이런 규칙들을 통찰하고 벗어날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내가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 있다. 시간에 맞게 도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늦어 버리는, 시간에 맞춰 밥상을 차리려고 했으나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늘 늦어 버리는 꿈이다. 나는 나에게 주입된 룰에, 지배적인 시각에 맞추기 위해 지나치게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발버둥쳤지 새로운 규칙을 만들 권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갑자기 너무나 성실하기만 했기에 괴물이 되었버렸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섬뜩하게 떠오른다. 그 꿈이 다시 나에게 찾아오면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늦어보겠다. 멜빌의 소설에 나오는 필경사 바틀비처럼 과감하게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겠다.

댓글 5
  • 2024-04-07 21:59

    꿈틀이샘의 아득한 감정을 공감하시던 어린 수영샘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었군요~~
    오웰에서 느꼈던 수영샘과의 접점을 또 다른 시선을 느껴지는 글이였어요~ "지배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늘 분발과 열심을 다하는 이중적인 태도" 라는 글이 저에게 큰 공감 가는 문장였어요
    진짜 깜짝 놀란건, 저도 수영샘 처럼 안간힘을 쓰지만, 도착하지 않는 길...이런꿈을 반복적으로 꾸고 있거든요..수영샘도 스스로 가둬두고 있는 자아가 있는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수영샘의 과감하게 하지 않는 선택을 응원합니다!

  • 2024-04-08 08:13

    저도 오랫동안 그 감정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샘 말처럼 지금도 그 자장안에 있는지도 모르겠구요..어쩌면 나를 규정하는 그 벽들에 하나씩 균열을
    내는일이 저에게는 문탁공부였을 수도 있을것 같구요
    지금도 그 과정에 있을 수도 있고.,
    공감가는 글이었습니다~~

  • 2024-04-09 00:41

    오웰의 소년 시절을 따라 자신의 소녀 시절을 회고하며, 지배 논리가 어떻게 자신을 통과해 갔는지를 차분히 관찰하고 분석한 사실적인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 꿈 얘기가 인상적이네요. 늦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고 천천히 한없이 느적느적거리는 그런 시원한 꿈을 꼭 꾸실 수 있음 좋겠네요.

  • 2024-04-12 05:59

    저는 늘 이 길이 아닌가? 저 길인가? 가도 가도 도착하지 않는 꿈을 자주 꿔요. 혹은 가는 도중 길이 망가지고, 다리가 망가져서, 재난영화처럼 피해가는 꿈. 이런 꿈을 꿀 때마다, 요즘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조급함에 시달리고 있구나.....생각해요. 일부러 늦어버리는 꿈!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일! 수영님의 글에서 그 단서들을 기대해보겠습니다~

  • 2024-04-20 20:07

    저는 주차장에서 주차된 차를 찾아다니는 꿈을 꾸고 있어요. 매일 주차하는 주차장인데 왜 차는 찾아도 없는지...그런 꿈을 꾸는 날은 주차할때 주차장번호를 의식적으로 외우려 노력하고 내가 흘려버리는건 없는지 생각을 하게 되요. 살면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일이 실제로는 중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수영샘의 글은 수영샘을 투명하게 비춰주어서 항상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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