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행성 #21] 엄마의 샘물

사이
2024-02-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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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에 친정집에서 책장에 꽂혀있는 법정 스님의 책들을 가지고 왔다. 10년에서 20년 가까이 된 책들이라 제본이 뜯겨 있고, 누렇게 색이 바랬다. 가장 최근 책이 무엇인지 뒤적이다 보니 발행날짜가 2010년 3월인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아마도 엄마가 마지막으로 본 책이라고 추측해 본다. 벌써 엄마가 떠난 지 12년이 지났다. 엄마의 빈자리가 더욱 커질까 엄마가 되기를 거부했었는데…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엄마는 얽힌 실타래 같은 사람이었다. 낮에는 홈쇼핑을 보고, 밤에는 도올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아침에는 거울을 보며 피부를 관리했고, 자기 전에 가부좌를 틀고 기도했다. 역사, 국제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옆집 아줌마의 이혼 이야기도 해주었다. 보증으로 날린 땅을 후회하며 무소유를 읽었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태어난 나는 엄마의 딸이기 이전에 말벗이었다. 예민한 성격, 후회의 넋두리, 욕망의 사슬로 얽혀있는 엄마의 세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세상도 복잡해졌고, 엄마도 나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엄마는 위암 판정을 받고, 3년 만에 돌아가셨다. 23살의 나는 상실의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아빠와 남동생과도. 천국에 갔을 거라고 말해주는 친척들과도. 나의 눈물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들도. 이제 엄마처럼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빈자리는 연애, 쇼핑, 일로 채웠고, 최선을 다해 슬픔으로부터 도망쳤다. 시간이 지나니 눈물도 나지 않았고, 엄마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엄마와 멀어졌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

 

어느 날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그때 드린 기도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퇴사를 결심하고, 여기저기 공부공동체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공부를 통해 엄마는 그리움의 존재가 아니라 고마움의 존재로 재탄생되었다. 임신과 출산은 먼 길을 돌아 엄마에게 돌아온 것 같았다. 엄마의 빈자리는 더 이상 베이글 구멍이 아니었다. 세미나와 책들의 인연, 선생님들과의 만남, 바다의 눈빛, 가족의 손길로 채워진다. 무엇보다 엄마가 나를 딸 이전에 한 존재로 대했던 존중과 믿음이 더욱 선명해진다.

 

책을 뒤적여본다. 엄마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법정 <아름다운 마무리> 23쪽) 

 

엄마의 삶, 나의 탄생, 엄마의 죽음, 나의 삶, 바다의 탄생.

바다의 삶과 언젠가 나의 죽음까지.

이 순환의 고리속에서 엄마는 여전히 나를 믿어주고 있었다.

 

 

 

바다는 270일이 되었습니다!

파스타도 처음으로 먹었어요~

어디든 붙잡고 잡고 서고 꽈당 넘어져요 

바다가 새로운 표정을 지어요~

바다가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서 영상으로 남겨요!

자다 깼는데 이제 침대 가드 잡고 서있더라고요. ㅎㅎ 엄마 보고 좋다고 웃는 바다가 너무 귀여워요~

 

점프점프도 이제 점점 더 높이 한답니다!

딸기도 아주 야무지게 먹어요 ㅎㅎㅎ

 

 

 

댓글 6
  • 2024-02-29 04:55

    와, 바다 콩콩이 한다. 😍😁👍

    음, 우리는 어느 순간, 늘 '안토니오 라인'같은 여성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나봐요.
    저 역시 딸을 키우면서 엄마의 삶을 생각했었고, 지금은 엄마를 돌보면서 딸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바다 할머니 이야기 귀하게 읽었습니다.

  • 2024-02-29 16:29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주룩 눈물이 났어요. 그러다가 바다가 점프, 점프 하는 영상을 보고 깔깔 웃었어요.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난다는데...
    허허. 진짜 그렇게 되면 책임지셔요.^^
    잘 읽었습니다!

  • 2024-02-29 17:38

    걸음마하는 바다의 표정에 '긴장'이 있네! 저렇게 떨리면서 걸음마를 배웠구나!!

  • 2024-02-29 20:24

    점프점프점프~~
    소리랑 영상이랑 같이 들어야 제맛이군요
    구여워요!!!‘

  • 2024-03-01 14:29

    그렇게 사이님이 단단해지고 엄마가 되고 있네요.. 멋져요
    업그레이드 바다.. 말이 너무 웃겨요~ 밖이라 영상 못보고 있어요. 업그레이드 바다 궁금궁금

  • 2024-03-02 08:46

    공부하면서 그리운 엄마가 고마운 엄마가 되었다는 말이 가슴에 콕 박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