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행성 #19] 엄마의 처방

사이
2024-01-2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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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60일쯤 지날 무렵에 남편이 바다의 얼굴이 기울었다며 찾아보니 우측 사경이라는 셀프 진단을 내렸다. 나도 여기저기 유튜브, 블로그, 맘카페에서 다양한 케이스들을 보았다. 8개월 돼서 목을 가누니 자연스럽게 완치된 아이, 20개월 넘어서까지 대학병원 물리치료를 받는 아이, 5살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목뼈가 휘어있는 아이 등등… 나는 바다가 아직 목을 못 가눠서 한쪽으로 기우뚱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혹시 모르니 대학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재활의학과 의사 선생님은 아기의 머리를 비틀어서 각도가 얼마나 나오는지 체크하셨다. “10도 우측 사경이네요.” 남편의 말이 맞았다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거 같아 창피했다. 초음파와 엑스레이를 찍으니 다행히 뼈나 근육에는 이상이 없는 자세성 사경이니 스트레칭 교육을 받아 집에서 매일 하라고 했다. 스트레칭이라고 하면 가볍게 들리지만, 아기들은 ‘악!!!’ 하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운다… 물리치료사분께서 너무 무리하면 안 되지만, 확실하게 안 해주면 오히려 효과가 없다면서 10초씩은 꼭 유지하라고 말하셨다. 처음에는 매일매일 스트레칭을 하다가 바다의 울음소리에 힘들어 며칠은 건너뛰다가 안 하게 된다. 어느 날 보면 바다의 고개가 기운 듯한 기분이 들면 다시 스트레칭해주었다.

한 달 뒤인 4개월에 검진을 가니 균형이 맞았으니 다음 달에 체크만 해보자고 했다. 드디어 완치되었다는 후련한 마음에 집으로 왔다. 약간 기운 거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목을가누면 괜찮아지겠지!’’ 5개월에 검진을 받으니 다시 10도가 기울어졌다고 했다. “목을 가누니 자기가 편한 쪽으로 더 기우는 거 같네요. 다시 집에서 스트레칭을 해주세요.” 갑자기 띵 머리를 맞은 거 같았다.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야는 나의 희망일 뿐이었고, 현실은 바다가 목을 가눌수록 편한 쪽으로 기울였던 것이다. 다시 스트레칭하는데 바다가 저항하는 힘이 더 세지고 울음은 더 커졌다.

 

시어머님께서는 ‘사경? 우리 때는 그런 거 하나도 몰랐는데. 진짜 요즘은 애 키우는 게 너무 달라졌다’라고 말하신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수많은 신체적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질병이 되기 전에 관리할 수 있다. 맘카페에 ‘제가 아이한테 관리를 못 해줘서 너무 미안해요.’라는 말이 많이 쓰여 있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 부모가 아이를 ‘관리’할 수 있을까? 의학의 발전은 아이러니하게 부모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기분이 든다.

 

저번 주에 한 달 만에 병원 검진을 갔다니 여전히 1~5도는 고개가 기울어져 있었다. “스트레칭 더 열심히 해주시고, 왼쪽 눈이 사시도 의심이 되거든요. 그것 때문에 사경도 나타날 수 있어서 안과 예약해 드릴게요.” 사경뿐만 아니라 바다의 피부도 아토피처럼 울긋불긋해서 알레르기 검사도 했다. 엑스레이, 초음파와 피검사 등등 8개월 동안 병원에 들락날락했다. 나중에 큰 병이 될 것 같은 걱정,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 증상이 심한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안도감. 병원에 가면 복잡 미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바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옹알옹알하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바다의 얼굴을 보며 증상이 더 심해졌나 유심히 보았는데 바다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아차 싶어 내가 미소를 지으니 바다도 환하게 웃었다. 내가 바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은 괜찮다는 안도의 미소이지 않을까?

 

PS = 사실 이 글을 이 주 전에 쓰고, 새해부터 아픈 이야기를 하나?? 라는 생각에 다른 내용을 올리려다 시간이 흘렀네요. 그리고 글쓰기 선생님이신 겸목샘의 <문학처방전>이 도착해서 읽는데 ‘이야기가 약이다’라는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네요. 앞으로 아기 키우면 얼마나 많은 아픔과 대면해야 할까? 겁이 날 때가 있는데 아픔은 더 큰 용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변에 아픈 친구들에게도 ‘문학처방전'을 선물하려고 합니다 ㅎㅎ

 

바다는 235일이 되었습니다.

밑에 치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바다는 앉을 수 있어요!

잘때 옆에 토끼친구들이 함께해줘요.

이유식도 잘 먹고 있고 저번주부터 3끼를 먹고 있어요!

3끼 이유식이라니! 만들고,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일이 너무 많아졌지만 얌얌 맛있게 먹고 있어요 ㅎㅎ

오랜만에 카페에 함께 놀러갔어요~

 

마지막으로 바다의 귤 먹는 영상으로 마무리합니다.

이제 맘마마마마 이런 옹알이도 한답니다! ㅎㅎ

https://youtube.com/shorts/segoisYNaRg

댓글 11
  • 2024-01-25 08:39

    아이고, 내가 그 시어머랑 같은 맘이네유...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한테 도수치료라니....

    이러다가 '라떼' 되는 거죠? ㅠㅠㅠ

    피에쑤: 근데 바다 넘 이뿌닷!

  • 2024-01-25 10:04

    다른 이야기지만 읽다보니, 첫애 어려서 중이염이 떨어지지 않아서 온동네 병원을 다녔던 기억이 나요
    다 나은듯 싶다가도 마지막 약 받고 오면 다시 심해져서 밤이면 맘카페에서 정보를 얻고 아침이 되면 병원을 가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열심히 살피다보니 어느 순간 병원을 끊어냈던..

    낳아놓으면 자란다고 하는 말, 다 뻥이죠ㅎ
    그래도 엄마의 처방이 점점 더 많아질 거에요
    사이님 화이팅입니다~~

  • 2024-01-25 14:02

    에고 병원 다니느라 고생이 많았군요
    웃는 바다 넘 예쁜데 울리기 진짜 싫겠어요
    스트레칭 안할 수도 없고ㅠㅠ
    내년쯤엔 언제 그랬었나싶게 다른 고민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사이님의 2024년 응원합니다^^

  • 2024-01-25 15:09

    ‘괜찮다는 안도의 미소’
    아~~~그 미소가 아이에게나 저에게나
    꿀약이였다는 , 그리고 여전히 그래요^^

  • 2024-01-25 15:31

    바다야 귤 안 시니? 잘 먹는 바다를 보니 이쁘네요. 좀 있으면 '엄마'하겠는데요~
    아이들 키울 때 병원 델고 다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요..
    엄빠가 바다랑 잘 교감하고 있으니 바다는 씩씩하게 잘 클 거 같아요^^

  • 2024-01-25 17:07

    둔감한 엄마였지만, 저맘때 걱정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이님 글 읽으니 그 걱정하던 마음이 생각나네요! 에휴!!

  • 2024-01-26 22:05

    울집 아들은 돌이 되도록 앉지도 못하고, 기지도 못했어요. 돌이 되어도 배밀이를 ㅠㅠ
    또래 아이들은 아장아장 걸어다니는데 말이죠.

    신경에 문제가 있나? 혹시 발달장애인가? 아니, 아니, 그냥 늦된건가? 아니, 분명 아빠를 닮았나봐...흑!(엄마인 저는 10개월 지나 걷기 시작했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빠인 남편을 의심했슴다.ㅎㅎㅎ)

    배밀이을 하는 아기를 보면서 온 가족이 마음을 졸였드랬죠. 그런데...큰 병원 가서 검사를 받기엔...... 경기도 광주군, 양벌리. 경기도 외진 마을에 살았드랬죠.
    읍내엔 곧 망할것 같은 소아과 하나. 갈만한 병원도 없고, 대학병원 가기엔 괜힌 야단떠는거 아닌가, 딱히 아픈건 아닌데 싶어 병원은 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어영부영 흘러 무려 14개월까지 배밀이만 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 아기는 앉는 과정 패스, 기어 다니기 과정 패스 하고 바로 아장아장 걸었어요.
    온 가족이 감격에 겨워 기립박수 짝!짝!짝!
    헤헤헤.

    병원을 가지 않았던 건 제가 배짱이 좋아서, 혹은 소신이 있어서도 아니었지만 결국 그냥 기다린 것이 잘한 것이었어요.

    사이님 글을 읽다가
    걸음마 시작한 또래들 사이에서 배밀이 하고 다녔던 우리 아기 생각이 문득 떠올랐어요
    그때 저도 괜찮다는 안도의 미소를 지어주면 좋았을텐데...걱정하느라 그러지는 못했네요.

    사이님 육아일기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기억을 자꾸 소환하는군요. ㅎㅎㅎㅎ

    (병원 가지 말란 얘기는 아니예요. 괜찮은 건 괜찮은 거고, 병원갈 건 가야죠....ㅎ)

  • 2024-01-30 13:08

    최근에 바다를 보고 와서 그런지 바다가 더 눈에 밟히네요.
    벌써 보고싶군요 바다! 섬세한 아빠와 따뜻한 엄마의 사랑으로 바다는 잘 자랄거에요^^

  • 2024-01-30 20:31

    사이님 글을 읽으며 제가 모르는 세상을 배웁니다, 사이님^^ 다 잘될거예요, 바다는 늘 예쁘네요~~

  • 2024-02-23 17:33

    제가 유튜브화면에 목을 빼고 보네요^^

  • 2024-02-28 11:30

    괜찮다는 안도의 미소는 13살 제 딸애게도 필요한데...
    자꾸 까먹게 되네요.
    사이님의 글과 바다 모습 볼 수 있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