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행성 #18] 엄마 됨의 용기

사이
2023-12-27 21:44
202

초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용기는 공부하면서 생겼다. 여기저기 공부공동체에서 불교, 과학, 에코,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시공간을 계속 넓혀갔다. 특히 작년에 에코 세미나를 통해서 읽은 <향모를 땋아서>는 나에게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한 엄마라는 정체성과 여성의 길을 보여주었다. 하늘 여인이라는 인디언 창조 신화를 읽으며 어떤 이야기를 기억하느냐가 결국 존재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적 논리에 한 발짝 물러나보고 싶었다. 잃은 것 보다는 내 앞의 온전한 생명 그 자체와 온전히 교감해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온라인 세미나로 공부의 끈을 연결해 놓았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기록해 본다.

 

 

축의 시대 - 희생이 아닌 순환

으깨진 ‘식물’에서는 꽃, 농작물 나무가 싹텄다. ‘황소’의 주검에서는 동물들이 튀어나왔다. 첫 ‘인간’의 주검은 인류를 낳았다. 아리아인은 희생을 늘 창조적인 것으로 보게 된다. 아리아인은 이 제의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삶이 다른 생물의 죽음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물의 세 원형은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도록 자기 생명을 내놓았다. 자기 희생 없이는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어떤 진보도 있을 수 없었다. 이것 또한 축의 시대 원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카렌 암스트롱 27-28쪽 <축의 시대>

감이당 온라인 대중지성에서 축의시대를 1년 동안 읽는 것이 하나의 과제였다. 세계 4대 문명에서 어떻게 영성과 철학이 형성되었는지 따라가 보았다. 그중에 인도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기억에 남았다. 요즘 육아에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달라붙어 있다. 육아용품 마케팅으로 ‘희생하지 말고, 이 제품을 사서 육아에 자유로워져라. 그럼 엄마도 행복해진다.' '육아는 템빨' 이런 메시지를 많이 전한다. 고미숙 선생님은 세미나에서 희생이라는 말이 너무 요즘 오염되어 있는 것 같다며 ‘순환’으로 생각해 보면 어떠냐는 말을 해주셨다. 단어 하나만 바꿔도 보는 시점이 달라자고 마음 가짐이 달라진다.

 

 

사나운 애착 - 얽힌 실타래 그대로

이상적인 여자의 삶이라는 개념은 우리를 절대 놓아주지 않고 매년 다달이, 날마다 우리를 더 깊은 갈등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었다. 삶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약할수록 자기 방식이 옳다고 독단을 부리게 된다. 우리 각자는 자기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더 숭고한 목적에 헌신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서로를 분리시키면서도 연민도 함께 거둔다. 남몰래 다른 사람들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특성을 수집하기 시작하고 그들과 자신을 더욱 열심히 분리하면서 마치 나와 너의 이 차이가 구원이라도 되는 줄로 착각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안 저러니 다행이야.’ 타인을 보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혼잣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렇게 판단을 한댔자 삶이 개선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환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분노에서도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단단한 껍질 아래서 노여움에 차 조용히 부글부글 끓고 있을 뿐이다. 이 억제되지 못한 노여움이 우리를 고갈시키고 죽이기도 한다. 비비언 고닉 176-177쪽 <사나운 애착>

출산 직전까지 함께한 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모임! 새 생명을 만나기 전에 글쓰기를 통해 얽혀있는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비비언 고닉의 책을 읽으며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를 그냥 두면서 여기저기 면밀하게 뜯어보는 법을 배웠다. 딸이 아닌 엄마로서 모녀 관계를 시작하는 시점에 비비언 고닉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긴 여행의 도중 -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부모는 내 아이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 몸의 통증과 마음의 아픔은 다르다는 그런 뜻일까?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우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는 혼자서 살아가겠구나’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부모라고 해도 아이 마음의 아픔까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내내 지켜봐주는 것뿐이다. 그 한계를 느낄 때 어쩐지 참을 수 없이 아이가 사랑스러워진다. 호시노 미치오 13쪽 <긴 여행의 도중>

12월에 동화인류학 세미나를 들으면서 올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헌책방에서 본 사진집 한 권에 알래스카에 간 일본인 청년은 알래스카에서 18번째 겨울을 맞을 때 자신의 아이는 첫 번째 겨울을 맞는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이 흐르는 이원성을 보여준다. 이원성 속에서 부모와 아이의 삶이 공존하기 위해서 함께 아파하지만, 동시에 공감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시노 마치오는 그 한계를 걱정이 아닌 사랑스러움으로 본다.

 

 

바다는 207일이 되었습니다.

11월까지 일과 큰 세미나가 마무리되었고, 12월은 겨울방학처럼 지내고 있어요!

방학을 맞아 바다의 침대와 놀이매트를 깔면서 집을 바다의 세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분리수면을 시작했어요~ 확실히 저의 수면의 질 상승하였습니다! 곧 분리수면 후기도 써볼게요! ㅎㅎ

자기 전에는 꼭 ‘달님 안녕’ 책을 읽어주고 있어요!

요즘 문화센터도 가서 촉감놀이를 하고 있어요. 베토벤으로 변신한 바다입니다!

바다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고모부가 목사님이셔서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축복 기도도 받았어요. 친척들에게 선물도 받았습니다~

이제 기기 시작해서 제가 부엌에 있으면 거실에서 부엌까지 기어온답니다.

점점 바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처음 사진과 비교해 보니 정말 많이 컸죠?!

200일 동안 바다를 함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공생자행성을 통해 또 샘들 댓글에 그 시절의 육아 모습을 남겨주시면 너무 재밌어요 ㅎㅎ 덕분에 겨울에도 따뜻한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 또 만나요!

 

 

 

댓글 6
  • 2023-12-27 22:29

    <달님 안녕>을 선물한 입장에서 반갑기 그지없군요. 기분 좋습니다.(곰곰샘이랑 같이 선물했어용 ㅎㅎㅎㅎㅎ)

    저희집 머스마들도 애기 시절에 달님 안녕을 얼마나 끼고 살았던지!
    "구름아저씨 안돼요. 나오면 안돼요, 달님이 우니까요..." ㅋㅋㅋㅋ
    지금도 자동으로 제 입에서 튀어나오는 군요.

    애 키우면서 세미나 책도 읽어낸 사이샘께 박수!!!! 보냅니다.

  • 2023-12-28 08:09

    바다 사진 보며 덕분에 행복했어요~ 바다와 바다엄마에게 감사를^^

  • 2023-12-28 10:35

    와, 바다 표정이 엄청 다채롭군요^^

  • 2023-12-30 09:00

    2023년은 사이님께 정말 특별한 한 해
    새해 맞이하는 느낌이 다른 해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새해 걷고 말하는 바다 모습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빙그레 웃음이 나오네요
    바다 커가는 과정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바다와 사이님
    고맙습니다^^

  • 2023-12-30 17:57

    와~ 바다가 이제 기는군요! 기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쁠까요?ㅎ
    갓난아이를 키우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은 사이샘, 박수쳐드리고 싶어요.👏

  • 2023-12-31 01:39

    달님 안녀엉~~
    할 때마다 웃던 우리애들 모습이 바다랑 겹쳐지네요ㅎㅎ
    매번 처음인 이 순간들이 하나같이 소중하고 따뜻합니다!
    눈도 비도 많이 오는 이 겨울~ 감기 조심하셔요^^
    기대하건대 따뜻해지먄 쑥 커버린 바다를 만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