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3-6주차 후기] 대세는 SF!

혜근
2023-10-30 21:55
265

  SF소설이 대세라는 문탁샘의 말씀. 개인적으로는 김초엽(“지구 끝의 온실” 강추!)을 좋아하고,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이 기억에 남는 정도였다. 테드 창의 소설은, 낯선 경험이었다. 낯설긴 한데, 아귀가 딱딱 맞고, 신선하고, 똑똑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계속 생각하게 된다. 좋았다. 또 하나의 소설집 “숨”도 궁금하지만, 한 템포 쉬고 가야할 것 같다. 대신 문탁샘이 추천해 주신 정세랑 작가를 먼저 접해볼까 한다.

 

*일흔두 글자

  차티스트 운동, 러다이트 운동과 연결해서 이야기가 오갔다. 차티스트 운동이 뭔지 몰랐던 내게 문탁 선생님께서 그것은 19세기 영국에서 노동자들의 의회 참정권과 관련된 것임을 말씀해 주셨다. 스트래튼이 방적공들의 생활 수준 향상을 위해 자동 인형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그 운동과 맞닿아 있었다. 전성설과 관련해서는 지영샘이 “동적평형”의 DNA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고 하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전성설은 호문쿨루스 안에 성체의 축소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 소설은 이것이 실현된다면 하는 상상력에서 쓰여진 것이다. 이와는 달리 후성설은 배아의 각 기관은 성체와 무관한 조직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으로 잠재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랍비들의 골렘 설화, 명명학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오갔다.

  이어 등장인물의 욕망들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하여 자신이 가진 기술이 권력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이타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이는 과학의 결과물에 대한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로서 숙의 민주주의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문탁 선생님께서 질문을 만들 때는 잘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내 질문들이 다 하나로 뭉뚱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움찔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단성 생식만으로 자손을 낳는 식의 공동체가 어떨지에 대한 질문을 가벼운 마음으로 던졌는데, 문탁 선생님은 너무 좋을 것 같다시며(ㅎㅎ), 하지만 에로스는 이성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주셨다.

 

*인류 과학의 진화

  메타인류의 사고방식과 지식처리 능력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태어나기 전, 배아 상태일 때 특수 요법을 시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인류 부모의 비율은 거의 0에 가깝다는 설정에 놀랐다.(은영샘, 이지샘). 인류와의 소통을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겠다. 자식이 남들보다 잘되길 바라는 많은 한국의 부모들도 같은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지옥은 신의 부재

  이지샘의 메모. 닐은 살아서는 손 닿는 모든 것이 비탄으로 바뀌지만 죽어서는 그것을 감사히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테드창은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나는 욥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했다. 이지샘은, “너희의 일은 너희가 결정하라, 그게 바로 우리가 한 일이다. 너희도 우리처럼 하면 될 것이다”라는 타락천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일을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 왜 타락인가를 질문했다. 자유의지를 갖는다는 것이 바로 신의 부재를 주장하는 타락이라는 이야기, 하느님의 예정조화설,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도구라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은영샘은 인간이 만들고 기대하는 인과 관계가 허상이며, 결국 자신의 믿음과 신념으로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감상평과 함께 드라마 “지옥”을 언급했다. 문탁샘은 이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으신 듯하였는데, 참가자들의 호응이 부진해 안타까워하셨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어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이 필요하겠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영선샘이 몸이 안 좋으셔서 문탁샘이 대신 메모를 맡아주셨다. 원제목인 <liking what you see : a dacumentary>는 보자마자 매력을 느끼다, 첫눈에 뿅 간다 등의 의미로 볼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칼리아그노시아 의무화에 대해 즉석 찬반 거수를 해 보았는데, 반 정도의 샘들이 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 어떤 건지 궁금해서 한 번 해 보겠다는 의견, 뭔가를 해야한다는 것 자체도 싫지만 미적 판단을 유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 아름다움을 보는 건 좋다는 의견 등을 나누었다. 그리고 칼리아그노시아를 두고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있게 나누는 것 자체가 놀랍고 SF적이라는 은영샘의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이 많았다.

 

  앞선 후기들이 너무나 세세하고 생생하여, 혹시나 문탁샘이 녹화영상이라도 주시나 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샘들이 올려놓으신 메모들과 허접한 기억력에 의존하여 늦게 올리는 후기가 민망할 따름이다.ㅠㅠ

댓글 6
  • 2023-10-31 14:53

    혜근샘, 차분하면서도 생생하게 지난 세미나 내용을 정리하셨는데, '민망'함을 느끼시다뇨..? 지나친 자학이십니다. 세미나 하다보면 저는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약해져, 무슨 얘기들이 오가는 건지 이해를 잘 못할 때가 있는데, 혜근샘의 일목요연한 후기가 지난 세미나 내용을 복기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런 얘기들이 오갔군요. ^^

    저는 미정샘과 비슷하게 소설을 잘 읽지 않고, SF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SF소설이라니.... 테드 창의 소설은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어려웠어요. 심지어 이 글은 '이야기가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소설을 읽는데 머리를 써야 하다니...라는 한탄과 한숨을 달고 읽었습니다. 정말.. 뇌가 욱신거리는 느낌? ㅋ
    세미나를 끝내고는, '이 책 다시한번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야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소설을 읽는데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별로더라고요. 그래서 앙코르석공님이 소설적 재미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하셨을 때,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테드 창의 서사를 1도 이해하지 못한 것도 같아요 ㅠ

    <숨결이 바람될 떄>>를 읽는데, 테드창의 소설을 읽으며 남겨진 질문에 대한 답을, 답에 대한 힌트를, 얻는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목적적인 삶. 우리가 결론을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삶의 불가피성이나 (이 생의)현실과 지옥의 차이는 신의 존재라는 부분 등등. 그런 점에서 제 이해와 관계없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정말 우리 인생의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 2023-10-31 18:22

    두분 모두 짱이세요^^

  • 2023-10-31 21:22

    지난 시간에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들어간 사람으로서 스스로 책임감이 생겨서 '지옥은 신의 부재'를 완독하고 저도 후기 적습니다. 혜근쌤께서 자기 언어로 소화하셔서 맥락을 중심으로 발표를 해주셔서 장황함과 싸우는 저로서는 배움이 있었답니다. ^ ^

    그간 SF소설, 영화 등을 즐기지는 못했는데, 몇년전에 처음 접한 테드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컨텍트'와 스타니스와프 렘/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 등으로 큰 매력을 느낀 후, 이번 시즌 '당신 인생 이야기'의 단편들을 완독해야겠다 했지만... ㅜ ㅜ 다 읽지 못하고 세미나에 참석했네유.

    지옥은 신의 부재를 읽으면서 못읽은 단편들 읽겠다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ㅎㅎㅎ
    문탁쌤께서 소개해주셨듯이 sf의 매력은 기존의 통념을 깨는 방식으로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고 동시에 굉장히 집중해서 한 문장 한 문장 읽어야한다는 점에서 몰입하기 전까지는 문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 완독한 후에는 다르게 생각하고,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다시 느꼈던 시간이었어요.

    지옥은 신의 부재를 읽고나니 또 다시 '시력 없는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빛은 닐의 눈을 앗아갔고, 예전에는 시력이 있었던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시력이 없었던 존재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빛은 닐에게 신을 사랑해야 하는 모든 이유를 보여주었다."
    지옥, 즉 신의 부재,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에도 자기 삶의 고통의 조건이나 이유, 어떤 장애를 논하는 것, 특정한 조건과 관련이 있음과 없음도 말할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신에 대한 사랑을 응답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시력이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육체(눈)의 시점이 없어지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보게되는 일을 의미하는 거였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신을 사랑하려고 자유의지로서 애쓰고 있던 주체로서의 닐에게 시력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자신과 신과의 관계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관계성'을 보게된다는 것은 지금 자신의 고통을 해석할 때, 그것의 과거 조건, 미래에 대한 기대나 보상과 무관하다는 말이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응답은 신의 부재인 지옥에 있더라도 '신에 대한 사랑', 자기 삶에 대한 인정으로서의 응답으로 행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천상의 빛을 보고 천국갔다는 제니스와 이선의 신에 대한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예를들면, 천상의 빛을 본 제니스가 청중의 감소에도 개의치 않고 확신에의 설교를 하게 된 것, 이선이 신은 의롭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고, 자비롭지도 않다, 다만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심을 갖추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설교한 점에서 말이다.
    테드창의 작가노트에서 작품의 모티프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라 했는데, 어쩌면 도덕적 메시지처럼 느껴질법한 화두를 가지고 지옥과 천국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다르게 풀어내는 방식이 새삼 놀라웠다. 게다가 '네 인생의 이야기'의 인과론적 방식의 사유를 넘어선 순환론적 세계관과도 어떤 연결점이 있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저도 지영쌤처럼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으면서 이번 시즌을 보내면서 생각해보게 되었던 몇몇 연결 지점들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개체의 죽음과 생명의 무한함...

    며칠 전에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봤어요! 몇 번을 더 봐야 이 세계관을 이해할까 싶을 정도로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ㅜㅜ '네 인생의 이야기'와 통하는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누군가 관람하신 분들 계시면 관람 후기를 들어보고 싶어용 ㅎㅎㅎ

    • 2023-11-01 09:18

      이 애니에 대해 엄청 분분한 듯. 제가 이번 주말에 한번 보고 제 소감을 말씀드려볼게요^^

  • 2023-11-01 09:39

    제가 지식이 없어도 웬만하면 일단 책을 독파하는 자세로 그것만 죽어라 읽어대는데, 이번 책은 유투브 영상을 두루두루 섭렵하며 다시 읽었습니다. 특히 네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까지 만들어져 자료가 많아서 거기에 기대어 다시 읽어보니 이야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들어오네요.
    하지만 '지옥은 신의 부재'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고, 선생님의 후기에서 제가 썼다고 적어놓은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대체 왜 그런 말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오늘 아침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적어봅니다. 주인공이 사는 세계와 지옥이라는 불리는 세계는 평형 세계가 아닐까. 천사의 강림이나 신의 은총이 물리적 현상으로 일어나지만 신을 믿지 않는 주인공이 어떤 과정과 경로를 거쳐 신의 축복을 체험하고 그도 신을 사랑하게 되지만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데, 그 지옥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닐까. 어디에서도 신의 축복과 사랑을 느낄 수가 없는, 신이 부재하는, 그렇기 때문에 신의 사랑과 축복을 알고 행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세상인 거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에서, 깨달은 이들이 바로 하늘로 가지 않고 중생들과, 중생들 속에서 살아가며 부처의 말씀을 전하고 행하며 살아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문탁쌤이 영성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는 말에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보았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시즌의 텍스트 중 어떤 것과 글을 써야할 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고민이 됩니다.

    • 2023-11-01 09:56

      저도 지옥은 신의 부재가 참 좋았어요. 진짜 뭔가 써보고 싶었어요.
      대체로 신앙이 기복신앙 (믿을테니 주옵소서...ㅋㅋㅋㅋ)을 넘지 못하는데
      그게 아닌 신심, 영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저 역시 아직 맴맴 돌기만 합니다. 언젠가 쓸 수 있기를^^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9
2023년 마지막 에세이 데이 후기 (7)
김혜근 | 2023.11.30 | 조회 359
김혜근 2023.11.30 359
118
[초대] <나이듦과 자기서사> 2023년 마지막 에세이 데이 (11/26일)에 와주세요 (12)
문탁 | 2023.11.21 | 조회 419
문탁 2023.11.21 419
117
<가을시즌10주차 공지> - 에세이쓰기 3차 피드백 - 수정안- 1122 (12)
문탁 | 2023.11.16 | 조회 299
문탁 2023.11.16 299
116
<가을시즌 9주차 공지> - 에세이쓰기 2차 피드백 - 초안- 1115 (9)
문탁 | 2023.11.12 | 조회 236
문탁 2023.11.12 236
115
<가을시즌 8주차 공지> - 에세이쓰기 1차 피드백 - 초초안- 1108 (10)
문탁 | 2023.11.06 | 조회 252
문탁 2023.11.06 252
114
[s3-7주차 후기] <‘나’의 죽음 이야기 > (2)
평강 | 2023.11.04 | 조회 217
평강 2023.11.04 217
113
[s3-6주차 후기] 대세는 SF! (6)
혜근 | 2023.10.30 | 조회 265
혜근 2023.10.30 265
112
[s3-7주차 공지] <숨결이 바람될 때 > - 10월 마지막 날에 '죽음'을 생각합니다 (12)
문탁 | 2023.10.30 | 조회 338
문탁 2023.10.30 338
111
[s3-6주차 공지]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2- 낯설고 또 고전적인 테드 창의 sf (4)
문탁 | 2023.10.24 | 조회 296
문탁 2023.10.24 296
110
[s3-5주차 후기]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알 수 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지? (4)
바람 | 2023.10.23 | 조회 261
바람 2023.10.23 261
109
[S3- 4회차 후기] 커다란 연관과 중심 질서에 대하여 (3)
김은영 | 2023.10.16 | 조회 189
김은영 2023.10.16 189
108
[s3-5주차 공지]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1- 드디어 테드 창의 SF를 읽습니다 (6)
문탁 | 2023.10.15 | 조회 223
문탁 2023.10.15 22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