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3- 4회차 후기] 커다란 연관과 중심 질서에 대하여

김은영
2023-10-16 23:47
192

3주에 걸쳐 읽은 [부분과 전체]를 드디어 마쳤다.
개인적으로, 발제를 맡지 않은 주에도 이 책을 읽어내느라 다른 책을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 문단을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학 이론들은 대부분 소화하기 힘들었고, 전체 맥락이라도 이해해보자는 마음으로 읽다가 보면 앞의 내용이 또 까마득해져 다시 되돌아가 읽다보니, 늘 부족한 상태로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한 권을 마치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고, 양자역학과 관련한 이론들과 개념들이 덜 생소하게 다가오고, 기회가 있으면 양자론과 관련한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야망'도 생겨났다.

 

이제서야 발견했는데, 이 책에 부제가 있다.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대화들'

 

부제에 맞게 이 책의 모든 내용들은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새로운 이론들의 탄생 과정에서도 대화의 향연이 펼쳐지고, 이와 떨어질 수 없는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견해들을 나누기 위해서 대화를 한다. 만났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대화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만나는 느낌? 학회는 물론이고 함께 휴가를 가고 캠핑을 하면서 자신들이 나아가고 있는 길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서 기꺼이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경계를 두고 오랫동안 대치하면서 갈등하기도 하지만 증명할 수 있는 논리를 세웠을 땐 기꺼이 인정할 줄 아는 멋진 세계도 보여준다. 이런 면을 두고 저자는 다가올 미래 사회에 과학(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주장한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자신의 사고를 논리적으로 세울 줄 아는 힘, 그 논리가 자연과 우주, 인간 사회를 아우르는 커다란 연관과 중심질서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할 때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고 그 대화는 지속될 수 있는 것 같다.

 

예전부터 가까운 사람들과도 대화를 통해서 이해와 설득을 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고 이에 대한 답은 늘 회의적으로 결론이 났다. 낯선 타인과는 말해 무엇하나. 그런데 저자가 반복해서 말하는 '커다란 연관', '중심 질서'란 것이 함께 공유하는 어떤 방향, 비전과 연관지을 수 있다면, 누군가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나누는 가장 기초 작업으로, 우리가 어떤 세계를 지향 혹은 설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유가 먼저 교류 되어야 대화라는 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실용주의에서 나온)실증주의에 대해 말할 때(8장, 17장) 지금의 현대인들이 가지는 태도가 그렇지 않을까 하며 되돌아보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양자론에 대해서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자세, 새로운 개념은 기존의 것을 조금 확장시켜 우리의 이해를 도울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 이론이 가지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것을 우리 삶의 어떤 면을 변화시켜줄 '기술'로만 여기는 지금의 모습과도 아주 비슷하다. 각자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힘이 닿는 한 작은 영역에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실증주의 윤리가 중심 질서와의 연결이 끊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비극들이 지금 현대 사회에서 보여지는 것 같다. 각자가 추구하는 어떤 노력들도 결국은 자본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그것의 권력만이 제일 비대해져서 개인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 기술의 토대가 되는 양자론을 구축하는 데 일조한 저자는 끊임없이 중심질서와 커다른 연관 속에서 이론을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철학과 종교, 문학, 예술이 그러한 것처럼 과학 또한 정신 세계와 연결되어야 함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지난 시즌 동의보감을 공부하면서 우주의 생성과, 기형질로 세계가 구체화된다는 내용에 큰 의문없이 받아들였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몸 안에 정기신이 (이름만 달리하면서) 형상화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 물질화되어 우리 몸 속을 돌아다닌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은 것들을 설명하는 데 그 자체에 대한 의문 혹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어떤 세계와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없이, 현재 내 몸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실증주의를 체화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댓글 3
  • 2023-10-17 20:39

    은영샘, 핵심을 꼭꼭 짚어주시니 다시 복기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는 제가 실용주의적 사고에 완전히 길들여져서 살아왔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와 동시대 과학자들이 기존 지식에 대해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세상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요. 당시에는 끊임없는 대화나 서신 교환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앎을 확장했는데 지금은 어떤 형식으로 이걸 해야 하나라는 질문도 생겼습니다.

  • 2023-10-18 10:01

    토론이나 에세이 수업이 일상화된 교육방식은
    더 자기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는것 같아요.
    그져 받아들이기에 급급한 했던 방식이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변화하지 않는것 같아요.
    조선의 교육방식은 또 달랐던것 같구요.
    서양의 교육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뒤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것 같습니다.

    접힌질서와 펼친질서를 말한 데이비드 봄은
    연관되어있는 세계 질서는 접혀있고 접혀있기에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펼쳐진 지금 보이는 세계로 쓩나왔다가 다시 접힌질서로 간다고 설명합니다.
    우린 100년을 펼쳐졌다가 다시 접힌 질서로 돌아간다.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중심질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미시와 거시가 함께 있는 세계~~
    우리가 미시로 있는 동안은 미시를 알다가
    몸을 버리고 거시로 너머 가게 되면
    미시의 세계에서 알수 없는 거시의 바다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보어의 상보성을 연결하면 좀 이해가 되는것도 같습니다.

    선험적으로 쎄팅되어 있는 범위내에서 열심히 자유의지를 만끽하고 있지만 그것도 얼마큼인지 알수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끝은 알수없으나 허무에 빠지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야 만 하는, 또한 나와 함께 존재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본인 또한 사라진다라는것을 아는 존재로 사는 인간이
    안스럽습니다^^.

    서로 무엇이 궁금한지, 어느 부분에 걸려 있는지 서로에게 묻고 들어준다면 더 확장되며
    그럼에도 불구하며 잘 살수 있을것 같아요.

    선생님을 다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까?
    예(나)
    그러면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웃음)

  • 2023-10-18 16:38

    은영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은영샘 표현대로 양자역학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려면 ‘야망’ 수준의 마음이 필요하다는데 완전 공감합니다.ㅎㅎ

    책 내용이 어렵고 소화하기 힘든 수준이면 '아무말'이나 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미나 전에 메모해뒀으나 말하지 못한 두 가지 아무말을 적어봅니다.

    '16 과학자의 책임’에서 당시 서구열강의 팽창정책을 불가피하게 보는 대화들이 좀 불편했습니다. 제국주의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수단'을 잘 선택하면 괜찮은 것으로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요(폭력이 아닌 문화적으로 확장해 나가면 문제 없다). 과학에서 탐구하는 '자연의 통일된 질서'를 ‘지구상의 통일된 질서’라는 개념으로 연장하는 발상도 그렇고요. 작년에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사르트르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그런 대목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종교에서는 상과 비유로 말하는 것이 중요해. 물론 이것들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지는 못하지. 하지만 결국 근대 자연과학 이전 시대에 발생한 대부분의 종교들은 바로 이런 상과 비유로 묘사되어야 하는 내용과 사실들을 담고 있어. 가치에 대한 질문에 관한 것들이지. 오늘날에는 종종 그런 비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힘들다는 점은 실증주의자들의 말이 옳을 거야. 하지만 이런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그것은 우리 현실의 중요한 부분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더 이상 옛 언어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거야." ('17 실증주의, 형이상학, 종교' 부분에서 나오는 대화의 한 부분인데, 제 책이 구버전이라 페이지가 다르더라고요. ) 특히 맨 마지막 "더이상 옛 언어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거야" 요 부분에 꽂혔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나이듦의 탐구(?)'도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ㅎㅎ. 양자역학과 나이듦이 무슨 상관인지는 제대로 답하기 어려운데, 진리를 탐구해가는 자세(?)에서는 살짝이나마 나이듦 공부와의 연관(내지는 자세)을 찾아낸 느낌이랄까....

    이상 아무말이었습니다. 저녁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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