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비글] 시즌1 첫시간(3/10) 후기

수영
2024-03-11 15:57
143

 

2024 평비글/ 시즌1/ 1차시 후기

 

장미를 심는 마음

 

첫 시간을 설렘을 안고 문탁에 도착했다. 어떤 분들이 오실까? 오늘 나눌 책 『오웰의 장미(리베카 솔닛, 반비, 2022)』가 흥미로웠기에 더 기대되는 첫 수업이다.

겸목샘의 강좌 소개에 이어 자기 소개가 이어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함께했던 시소님은 올해도 이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신청하게 되었다며 거의 정답(?)에 가까운 소개를 하셨다.

멋불빛님은 쓰기를 조금 쉬셨다며, 글쓰기가 쉽지 않았지만 잘 살기 위해 다시 써야겠다 생각했다고. 산책으로도 해소가 안되더라는 말을 들으며 올해는 좀 가볍게, 술술 풀어 놓듯 쓰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건 늘 글쓰기가 어려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단풍님은 책 읽기를 혼자 하니까 남는 게 없더라며, 글쓰기는 자신이 없지만 책을 함께 읽고 싶은 마음에 신청하셨다고.

꿈틀이님도 작년에 이어 공부를 함께 하게 되었다. 이전 문탁 강좌에서는 서펑식 글쓰기를 했다면, 평비글에서 조금은 개인적인 속 깊은 글쓰기를 하면서 더 유연하고 풍요로워진 거 같다고, 회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에너지를 가져가는 거 같다고 하신다.

이든님은 든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닉네임을 지었다고. 글쓰기를 평생 친구로 삼아야 겠다는 마음으로 블로그 등에도 꾸준하게 글을 쓰셨고, 여행을 길게 다녀와서 시간을 정해서 글쓰기를 해보면서 이 작업이 ‘나’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일임을 알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셨다며, ‘나란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무이님은 둘이 아니다(유일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은 닉네임이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흔들리는 것 같다며, 더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이름이 생기면 바꾸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이’는 다른 무엇이 될까? 궁금하다. 무이님은 아이가 작가가 꿈이라고. 갑진년엔 뭔가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오셨다는데.. 일간이 무었인지도 궁금하다.

유유님은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닉네임을 꺼내셨는데, 유유히 흐르다(流)는 뜻으로, 이즈음 오니 더 마음에 든다고 하신다.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의 영상이 떠오른다. 자신을 말과 글이 장황한 사람이라는 겸손의 말과 더불어 글쓰기 시간이 치유의 경험이 되더라고 이전 글쓰기에 참여했던 경험을 이야기하신다. ‘나’를 살리기 위해 평생 가져갈 글쓰기라며, 둘째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주말에 나오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는 말고 덧붙이신다.

첫 시간 후기 쓰기는 약간의 행운인 것 같다. 돌아가면서 하는 숙제를 미리 해치우는 후련함도 있지만, 몇 단어 메모를 바탕으로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면 둘러앉았던 우리 수업 풍경과 각각의 분위기의 회원들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떠오른다. 나같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이 작업은 매우 유용하게 느껴진다.

 

긴장, 흥분을 자아내는 자기 소개 시간을 지나 『오웰의 장미』 토론 시간이다. 이 책은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 날카롭고 진보적인 글을 썼던 조지 오웰이 어디서 휴식과 기쁨을 찾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뭐든 다급하고 빠른 이 시대에 어떻게 평안을 찾을 것인가를 말하는 책이다. 조지 오웰의 덜 알려진 면모를 리베카 솔닛의 특별한 시선으로 조명한 색다른 전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리베카 솔닛의 글솜씨에 대한 이야기로 토론을 시작했다. 겸목샘은 리베카가 말하는 글쓰기 팁이 있다면 상관없는 것을 나열하면서 상관있는 것을 보게 되는 글쓰기라고 말한다. 사소한 것에 다 있다는 것이다. 중대한 것은 누군가가 다 썼다. 어쩌면 우리 <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의 모토가 되어도 될 법한 말이다. 이든님이 고른 대목 “이 에세이는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사소한 것에서 중대한 것으로-...-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그의 작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글쓰기 방식을 잘 보여준다.”(21쪽) 이 문장은 리베카 솔닛이 조지 오웰에게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리베카 솔닛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장미라니, 오웰에 대해 내가 오래전부터 받아들이고 있었던 전통적인 시각을 접고 그를 더 깊이 알아보라는 초대와도 같았다.”(27쪽) 먼불빛님은 이 대목에 이르러 흥미가 확끌렸다며, 레베카의 문제제기에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웬 나무? 하고 있던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며 아하!하는 탄성이 나왔었다.

시소님이 읽은 대목에서처럼 오웰은 생애 마지막 시기에 “『1984』를 쓰는 데 열중하는 한편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에서 정원을 가꾸는 데 막대한 시간과 힘과 상상력과 재력을 바쳤다.”(42쪽) 이는 “삶에서 주된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으며 그러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한다. 절벽에 매달려 있더라도 눈 앞의 딸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웰은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정치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평등과 민주주의, 언어의 명확성과 의도의 정직성, 사생활과 그 모든 즐거움과 기쁨, 정치적 자유와 어느 정도 그 기반이 되는, 감독과 침범을 받지 않는 프라이버시, 그리고 즉각적 경험의 즐거움”을 추구했다. 꿈틀이님은 이 대목을 읽으며 기쁨을 맛보는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단풍님은 《위건부두로 가는 길》 같은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조지오웰이 기쁨을 누리라고 말하는 것에 쉬 동의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 놓았다. “그 인부들이나 석탄 구멍 이전의 과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는 얼마나 쉬웠던가”(82쪽)라는 문구처럼 아직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은 마당에 안온한 일상과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을 누리는 기쁨을 누리라는 제안에 저항감이 든다는 말이다. 겸목샘은 일단 레베카 솔릿의 논지를 따라가 보자고 한다.

나는 그 시각이 솔닛이 비판하고, 당대의 조지 오웰이 비판받았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반혁명적이고 부르주아적이요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라 보며 그런 것들에 대한 욕망은 근절하고 경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용주의적인 이데올로기”(128쪽)라며, 지나치게 이분법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유유님은 장미가 “그저 생존이 아니라 삶에 대한 권리”를 말하는 것이고, “주관성과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뜻한다며, 노회찬 재단에서 3월8일에 청소노동자에게 장미를 주는 것을 삐딱하게 봤었는데 이 대목을 읽으며 깊이 반성 했다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이런 의미라면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장미는 정치적이다.”

이든님은 “모든 예술이 교훈적이라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대의를 위해 나선 자들의 필요와 욕구를, 그들의 열정을 가능케 하는 것을 그리고 정의 와 연민에 관심을 두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더 큰 일이 어떤 것이라야 하는가를 간과한다.”(132쪽)며 페르메르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매일 해뜨고 달뜨듯이 게을리하지 않는 일상의 변함없는 아름다움에 공감의 시선을 보낸다. 무이님도 일상속에서의 충실성과 인본주의적 생각들에 공명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시대의 자본가들과 공산주의자들이 한 가지 공통된 이상들을 신봉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과학과 기술이 자연계를 지배할 수단이라는 믿음과, 책임을 맡은 자들이 그 힘들을 현명하게 사용하리라는 그릇된 확신이 모더니즘에는 핵심적이었다. 그 시대의 전위적 예술가들, 공산주의자들, 기술자들, 자본가들이 모두 빛나는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제 돌아보면, 그것은 오만하고 위험한 망상으로 보인다.”(136쪽) 근대의 오류와 공산주의자들의 이상이 그렇게 연결된다고는 생각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겸목샘이 읽은 대목대로 “그들은 단지 일시적이기 때문에 소중했던 무엇인가를 끝없이 지속함으로써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욕망이나 기쁨처럼 본질상 유동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무엇을 고정시키고 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장미를 빵으로 만들기를, 또는 빵을 획득하고 장미를 던져버리기를 원했다.”(140쪽)

겸목샘은 죽기 전에 나무 한 그루는 꼭 심어야겠다는 말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마음도 장미를 심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다음 토론 시간이 기다려진다.

댓글 4
  • 2024-03-11 16:11

    죽기 전에 나무 한 그루 심겠다!는 생각이 상투적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돼서 저도 놀랐어요. 리베카 솔닛과 오웰이 말하는 희망과 저항이라는 것이 오늘날 '상투적'이라 느껴지는데, 이걸 어떻게 '상투적'이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오웰의 장미>를 읽으며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제 내내 <나는 왜 쓰는가>를 뒤적였어요. 마음이 계속 조지 오웰과 리베카 솔닛이 보여주는 조지 오웰에 가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좋은 거죠^^

  • 2024-03-11 20:19

    다시 일요일로 세미나로~ 소환 되었어요^^
    수영샘의 살뜰한 후기는 독서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후기네요^^
    좀더 리베카에게 집중하는 읽기를 해보렴니당

  • 2024-03-11 22:08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사소한 것에서 중대한 것으로 ... 우리의 글쓰기의 여정도 이 문장과 맞닿아 있을것 같습니다
    수영샘의 촘촘한 후기를 읽으니 다시 세미나가 시작되었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조지오웰, 리베카 솔닛을 시작으로 이번 시즌의
    기쁨을 다 같이 나누었으면 합니다!

  • 2024-03-16 22:02

    후기를 읽으면서 지난 시간을 복기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지 오웰을 이름만 알고 있는 수준이었는데, 리베카 솔닛이 소개하는 조지 오웰을 만나며
    점점 매료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더 알게 될 오웰이 너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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