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월경1회]생리가 마법이라면

동은
2021-07-01 12:20
219

 

 

<일리치약국에 놀러와 1회 월경편>이 7월 17일~31일까지 진행됩니다. 이벤트에 앞서, 월경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몇몇 사람이 리뷰를 썼습니다. '리뷰 오브 월경'을 통해 월경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책을 읽고 소감을 남겨준 친구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땡큐~

 

 

 

 

생리가 마법이라면

-<생리 중이야>(민은혜/박보람, 마음의숲, 2021년)을 읽고

 

 

<생리 중이야>는 생리와 관련된 경험들을 가벼운 만화로 풀어낸 책이다. 가볍지만, 그래도 담겨있는 일화들은 두툼하다. <생리 중이야>에 있는 여러 생리와 관련된 일화를 읽고, 나 역시도 생리와 관련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생리통

......첫 생리통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엔 분명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통증이었는데 어느 날 집 화장실에서 지옥을 맛봤다. 나는 변기에 앉아 있었고, 피는 계속 물속으로 떨어졌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고 허리를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없었다. 차라리 화장실 바닥에 눕는 편이 낫겠다 싶어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생리 중이야>, 6p)

 

나에게도 생리통과 관련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초경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부터 생리통이 심했다는 건 기억난다. 중학생 때 학교가 끝나고 아픈 배를 붙잡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정신이라도 다른 곳에 집중해보려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 재생 중인 플레이어에서 마침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 노래를 들으니 마치 마법처럼 생리통이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나아진 통증에 긴장이 풀렸던 것인지 그대로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 노래가 미카의 노래였던 것도 기억난다. 그날 이후로 생리통이 심할 때면 좋아하는 노래를 듣다가 잠드는 것이 내가 생리통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손빨래

생리 기간 대부분을 잠으로 견디기 때문에 자는 사이 피가 생리대 밖으로 넘치는 일이 다반사다. 피가 묻은 빨랫감을 다른 빨래들과 함께 세탁기에 넣을 수는 없어서, 생리하는 기간에는 항상 손빨래를 해야 한다. 생리를 시작함과 동시에 엄마가 생리혈은 찬물에 빨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는데, 그 이후로 나는 종종 찬물로 손빨래를 하는 일이 생리를 겪는 모든 여자의 기묘한 비밀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류의 절반이 손빨래를 하기 위해 쪼그려 앉으면 왈칵 나오는 생리혈의 불쾌함과 함께 차가운 물로 핏자국을 지우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경이롭기도 하고 때로는 벗어날 수 없는 한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이제 손빨래를 하는 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피가 흐른 것을 발견한 순간의 낭패감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생리 전 증후군(PMS)

오랫동안 나는 나에게 PMS가 없는 줄 알았다. 생리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생리로 인해 감정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생리를 탓하지 않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힘들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내 몸 상태를 무시하고 감추면서 말이다.

나중에서야 깨달은 거지만 나는 생리 전에 부정적인 사고에 쉽게 사로잡힌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은 일들에 속상해하고 우울해한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모든 일의 원인을 생각하기도 전에 모두 내 탓(생리 탓)으로 치부해버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내 탓,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속상해하는 내 탓, 그리고 이런 울분이 나중에는 뜬금없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우울감을 달래기 위해서 음식을 찾는 일은 당연지사였다.

처음에는 이런 일이 PMS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정말 힘들어했지만, 나중에는 PMS라는 걸 깨닫고 생리 전 기간을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고나 해야 할까. 내가 '나 사용법'을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줄 수 있어 더이상 나의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사용법을 알려면 그만큼 잘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덕분에 생리로 인해 힘들어하는 나를 감추는 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기도 한 우리

 

... 그렇게 '적군에게도 생리대는 빌려준다'는 여자들만의 피의 연대가 시작되었다.   (<생리 중이야>, 8p)

 

같은 경험을 가진다는 건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팔을 안으로 굽게 만든다. 그리고 생리는 적군에게 팔을 굽게 만든다. "생리 중이야."라는 말은 내가 겪은 모든 일을 그 사람도 겪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문이다. 새빨갛고 묽은 피, 검붉고 엉겨 붙은 핏덩어리, 말라서 검게 들러붙은 피... 내가 본 피의 모습을 다른 사람도 봤을 것이라는 생각, 내가 생리 기간 동안 겪었던 일을 다른 사람도 겪었을 것이라는 유대. 그것이 팔을 안으로 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생리를 겪는 사람들이 느끼는 유대가 가끔은 마법 같다는 생각을 한다. 생리를 '마법에 걸린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리를 통해 여자들의 경험이 한순간에 공유되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한 연대가 이루어지는 일은 그 대상이 누구더라도 팔을 안으로 굽게 만드는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댓글 4
  • 2021-07-01 12:25

    '적에게도 생리대를 빌려준다!!'

    의미심장한 연대감이네! 

    파지사유의 화장실에도 공유생리대가 있는데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싶네.

    동은 글 잘 읽었어^^

  • 2021-07-01 13:20

    생리의 경험이 연대에 이르게 하는 마법? 멋진 표현이네~~~ 

  • 2021-07-01 16:22

    미국에서 온 임상약학 강사가 미국 여자들도 생리할 때 다들 귀찮아하고 빨리 끝났음 한다고 얘기했을 때 묘한 동질감을 느꼈었죠. 피의 연대... ㅋ

     

  • 2021-07-03 22:04

    <생리 중이야>
    한 권 파지사유 책꽂이에 비치해야겠어요

    동은의 글도 책장 사이에 꽂아두면 더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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