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차 <에티카> 3부 후기

겸목
2024-04-25 11:56
72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해설서와 연구서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결국 <에티카>를 직접 읽는 방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많은 시도 끝에 깨닫게 된다. <에티카> 3부에는 그간의 정의와 정리와 증명을 스피노자 스스로 다시 또 한 번 정리해주는 '색인' 같은 부록이 실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미나에서 이 부분만은 같이 강독해 보기로 했다. 2주에 걸쳐 우리는 서로의 독해를 반신반의하고 긴가민가하며 스피노자의 '정서'의 이해에 다가가고 있다. 

 

  스피노자의 정서론에서 기본 정서는 코나투스(욕망), 기쁨, 슬픔이다. 코나투스를 유지 보존 키워가는 것이 개체의 본성이고, 이것을 키울 수 있을 때, 즉 코나투스의 행위역량이 증가할 때 기쁨이, 반대로 코나투스의 행위역량이 감소할 때 슬픔의 정서가 나타난다. 여기서 정서의 정의가 나오는데 "신체의 행위 역량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고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신체의 변용들이자 동시에 이러한 변용들의 관념들"(3부 정의3)이다. 신체의 변용이며 변용들의 관념들이기 때문에 정서는 신체(연장)와 정신(사유) 양쪽에 모두 걸쳐 있는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외부 원인에 의한 기쁨은 사랑, 외부 원인에 의한 슬픔은 미움이고, 코나투스의 증대를 위해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더 많이 상상하려 하고, 미워하는 것에 대한 상상은 되도록이면 억제하려 한다. 이게 스피노자의 감정법칙이다. 그런데 '연민'은 이러한 감정법칙에 위배된다. 연민은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개체의 슬픔에 같이 슬퍼하는 정서인데, 감정법칙대로로만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을 미워하고 그것을 제거하려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나와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다른 사람의 슬픔에 같이 슬퍼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법칙에서 어긋나는 '예외 정서'라 우리도 '연민'의 독특함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이는 좀더 생각할 거리가 많다. 결국 개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나와 유사한 개체, 다른 사람도 나를 포함한 더 커다란 '개체'(공동체)의 코나투스를 위해서는 외면할 수 없고, 함께 해결해가야 함을 이해하게 될런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감각이 남아 있을까? 오늘날 개체의 범위는 아주 협소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연민은 발현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같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부록 24번까지는 원인으로서의 외부 실재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과 슬픔의 정서들에 대한 것이고, 이후는 원인으로서 내부 실재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정서를 다룬다. 여기서도 우리는 많이 헷갈렸다. 자족감, 자기애, 자기만족은 과연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것인가? 자족감에 있어 스스로 오인(착각/상상)하고 있다면 이것을 능동 정서로 갈 수 있는 디딤돌로 볼 수 있는가? 정서는 기본적으로 수동 정서(곧 정념)이기 쉬운데, 기쁨의 정서를 통해 우리는 능동 정서로 옮겨갈 수 있고, 이는 이성으로 가는 출구이기도 하다. 과연 수동에서 능동으로 갈 수 있을지 우리는 쌈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일어나는 자기애와 자기비하의 드라마는 능동 정서로 옮겨가기 어려움을 설명해주고 있다. 스피노자는 '자기비하'는 슬픔에 의해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낮게 여기는 것인데, 이는 본성에 맞지는 않다. 그렇다면 "자기 비하적이고 자괴감에 빠져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사실은 극히 커다란 암비치오를 갖고 있으며 시기심이 강한 사람들이다"고 스피노자는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이러한 암비치오는 정서 모방과 연관성을 지니고, 명예욕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칭찬 받으려는 정서 가운데 '전도' 가능성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려는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다고 생각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암비치오는 지배욕과 연결된다. 주목해봐야 할 정치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절제, 굳건함에 대해서는 '마음의 역량'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이들 정서는 능동 정서임을 밝히고 있다. 놀람과 마음의 동요도 수동과 능동의 전환에 있어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정서에 대한 일반적 정의'에서 "정신이 신체의 현재 상태를 그 과거의 상태와 비교한다는 점이 아니라 정서의 형태를 구성하는 관념이 신체에 대하여, 이전보다 더 크거나 더 작은 실재성을 함축하는 어떤 것을 긍정한다는 점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해명)에서 '이전'과의 비교에 의해 실재성의 증감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과거와의 비교가 아닌가? 내가 헷갈려했다. 이런 게 헷갈릴 때 드는 생각은 <에티카> 1부와 2부를 건너뛰고 3부를 읽고 있기 때문에 스피노자의 개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뭐 어쩔 수 없다. 헷갈리고 불안해하며 읽어나갈 수밖에. 이런 혼동된 관념들을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진태원)을 세미나하며 좀더 명확해지기를 기대해본다.

 

 

 

댓글 3
  • 2024-04-26 20:45

    스피노자 읽을수록 매력있네요^^
    핵심 정리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미나 시간은 정말 빨리 돌아오네요. 돌아서면 일주일이 후딱ᆢ ㅜ

  • 2024-04-26 21:00

    제 말이요. 읽기도 재밌고 정리된 후기 보는 것도 좋은데 말이죠. 정서가 역량이라니. 생각할수록 신묘합니다.

  • 2024-04-26 22:34

    발제를 하다보니 스피노자에게 푹 빠져지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예전 메모를 찾아보았어요.
    공부가 조금씩 쌓여는 가는 느낌도 좋고..스피노자도 좋고 우리 양생프로젝트 팀도 좋고..ㅎㅎㅎㅎㅎ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403
[4월 27일] 8주차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세미나 공지 (6)
겸목 | 2024.04.25 | 조회 59
겸목 2024.04.25 59
402
7주차 <에티카> 3부 후기 (3)
겸목 | 2024.04.25 | 조회 72
겸목 2024.04.25 72
401
[4월20일] 7주차 에티카 3부 끝까지!!
겸목 | 2024.04.19 | 조회 62
겸목 2024.04.19 62
400
5주차. 에티카 후기 (3)
천유상 | 2024.04.11 | 조회 108
천유상 2024.04.11 108
399
[4월 13일]6주차 <에티카>3부 후반부 세미나 공지 (7)
겸목 | 2024.04.10 | 조회 81
겸목 2024.04.10 81
398
4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결론, 후기' 후기 (2)
경덕 | 2024.04.04 | 조회 110
경덕 2024.04.04 110
397
[4월 6일 세미나] 5주차 <에티카> 3부 전반부 공지 (4)
겸목 | 2024.04.03 | 조회 134
겸목 2024.04.03 134
396
[3월 30일 세미나]4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결론과 후기 발제와 메모는 여기로 (6)
겸목 | 2024.03.27 | 조회 109
겸목 2024.03.27 109
395
3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6,7장 후기 - '사랑(감정)'은 움직이는 거야 (6)
라겸 | 2024.03.24 | 조회 582
라겸 2024.03.24 582
394
< 2주차 > 감정과 문화정치 ,3-5장 후기 (3)
정의와미소 | 2024.03.22 | 조회 104
정의와미소 2024.03.22 104
393
[3월 23일세미나]3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6~8장 발제와 메모 (7)
겸목 | 2024.03.22 | 조회 147
겸목 2024.03.22 147
392
[3월 16일 세미나] 2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3~5장 발제와 메모 (6)
겸목 | 2024.03.13 | 조회 132
겸목 2024.03.13 13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