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 해석학> c 조의 '무리한' 토론 후기

스르륵
2020-06-22 12:24
274

(토론 내용의 50%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지고, 손이 떨렸는지 쓴 글이 한번 날라가 그나마 더욱 간결해진 ...ㅜ)

 

'노년'이라는 주제는 우리 c조원들(기린, 뿔옹, 라라, 인디언, 스르륵)에게는 전혀 낯선 주제가 아니다. 최고령조 답게 우린 결코 10시 이전에 만나 조별토론을 하는 부산함(?)은 떨지 않는다. 느긋하게 10시에 만나서 열띤 토론을 해도 우린 절대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 왜냐면... 우린 최고령조니까. (이건 뭥 ? @#&)  하여, 이번에 12시 반까지 조별토론을 하라는 미션에 우린 살짝 당황했다. 우리의 체력은 한시간에 최적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린 그날 쉬는 시간도 없이 정확히 12시 30분까지 '무리하게' 토론했다. 

 

마침 c조 메모의 주제는<주체의 해석학> 3,4강 에서 노년(라라샘)과 타자(스르륵)이었다. (질문, 쟁점 정리만)

노년에서는 -  도시국가들이 통합되어 제국으로의 변화속에서 새로이 직면되는 문제들과 더불어 노인들의 통찰과 지혜는 예전만큼 존중 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큰데, 왜 세네카는 (역설적으로) 노년을 윤리적 완성의 단계로 설정했을까라는 지적.(라라)

                   -  그건 아마, 초월적 지점이 아닌 내재적 지점으로서의 '노년'의 이상화가 일반인들에게 무리없는 보편화의 방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기린)

                   -  '젊음도 노년처럼(세네카)'와 달리 '노년도 젊음처럼'을 외치는 오늘날의 우리는 노년의 비루한 생물학적 측면만을 고려한다(기린). 그렇다면 지금 우리(혹 젊은이들)는 노년의 개념적이상화 가능할까? (뿔옹, 스르륵) 아니, 그때도 이 주장이 먹히긴 먹혔을까?(스르륵)

                   -  '젊음도 노년처럼'의 구호에서 노년은 그저 아파테이아의 개념적인 노년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라라, 뿔옹, ㅇㅋ)

반론: 생물학적 측면은 정말 1도 없을까? (아파테이아에 도달한 젊은이가 있다면 그는 아파테이아에 도달한 노인과 정말 같다고 말할 수 있나?)(기린과 스르륵)

                   -  혹, 플라톤과는 다르게 1,2세기에 신체가 영혼의 교정영역으로서 편입되었다는  사실이 노년의 생물학적 영역의 개입성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스르륵)

 

타자에서는 -  스승, 철학자는 '타자'라는 넓은 사회적 영역으로 편입 되었는데, 지금의 우리는 스승을 어떻게(무엇으로) 생각? (기린: 스승과 타자는 구별할수 없다)

반론 :(뿔옹: 정말 같을까? 우샘과 문탁샘이 스승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자기배려를 말할 때 '우정'의 의미는?(긴~ 토론, 에피쿠로스의 우정에서 세네카의 우정, 오늘날의 우정 비교.......결국 파르헤지아까지 주욱~~)(뿔옹: 우정은 그들에게 일종의 비지니스 였을지도) (기린: 그러나 우정은  심리적 측면이 결코 간과 될수 없다)

                   - '나'는 왜 한평생 타자를 만나본 적 없이 자가발전만을 하고 산 느낌인가?(기린), 그럴때 타자는 무엇?(라라)

                   - 코로나 시대, 물리적 타자를 만나는 방법에만 골몰(스르륵의 질문)하지 말고, 진정 내 삶에 타자가 필요하다고 정말 인식하고 있는지 부터 점검하자(뿔옹). 필요하다는 타자는 우리에게 진정 누구? 타자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는 진정한 이유는?(스르륵) 

                  - 타자를 만나길 원한다면 나 자신부터 오픈(?)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자.(뿔옹)

 

무리함을 무릎쓰고 열띤(?)  토론을 했지만 토론 후기, 역시 어렵네요. 씨조님들 여력이 되신다면 수정과 빠진 내용 첨언 부탁드립니다. 

 

댓글 6
  • 2020-06-22 19:15

    아, 댓글 달기 어렵다...ㅋㅋ
    씨조의 보충이 필요해유....각자 자기의 주장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유. 질문도 포함^^

  • 2020-06-22 22:24

    '무리한' 요구시지만ᆢ ㅜ
    수정(?) 완료^^

    • 2020-06-24 11:29

      뭔가 재미나고 중요한 논의를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많은 이야기를 글로 납작하게 만들다보니 어려움이 있어 보이네요.
      담에 말로 해주세요.
      (아니면 제가 자주 만나는 뿔옹이나 기린에게 물어볼게유~~)

      • 2020-06-24 12:03

        워낙 정리 능력이 좋으신 스르륵샘이신데 그날의 무리한(?) 토론을....날것으로 보이기가 조금 쑥스러우셨나봐요. -.- 죄송!

        지난주 세미나에서는 '우정', '스승', '파레시아'에 대한 토론이 길었던것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자기배려의 황금기라는 1, 2세기에서 푸코는 다양한 우정의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프론토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우는 아주 깊은 심적 신뢰를 가진 우정에서부터
        세네카와 세레누스의 (지금 보이게는) 상당히 비지니스적 관계처럼 보이는 우정까지.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우정은 조금 이상적인 모델을 생각하는데 '우정관계의 친구에게는 뭐든지 해주고 용서하는'...
        사실 이런 우정은 없고, 이것만 우정이라고 볼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그래서 푸코가 사례로 보여주는 우정관계를 보면 좀 더 넓고 다양한 방식의 (주체화의 기술로서) 우정의 기술이 가능한 것 같다였습니다.

        세네카가 이야기하는 '노년으로 돌진하는' 것에서 노년의 생물학적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도 조금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면서 노년이 보여주는 초연함(아파테이아)과 아주 가까이에 와 있는 죽음에 대한 경험이 중요한 부분인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노년이란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상태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즉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신체적 반응으로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신체를 단련하고,
        정신적으로도 이런 정념들을 확대하거나 거기에 고착되지 않는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노년'의 모습이지 않을까.

        참, 스승에 대해서는 점차적으로 전문적 철학자의 모습이 사라지고나서부터는 이제 주위의 친구, 가족, 동료들이 이전에 스승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것 같다고.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타자의 범위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여기에서 중요한 기술이 파레시아!

        이 정도였던것 같네요. ^^

        • 2020-06-25 10:26

          논의를 할 때, 푸코가 특정 맥락에서 쓰는 '우정'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우정을 구별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푸코가 어떤 때는 에로스 관계, 어떤 때는 우정관계, 어떤 때는 철학자, 어떤 때는 교사, 어떤 때는 고문....이런 단어들을 쓰는 데...이걸 섬세하게 분별하지 않고 그냥 몽땅 우정이다...라고 쓰면....우정이 '깔대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ㅋ

          세네카보다 한 세대 뒤의 인물인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에는 바로 "노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챕터가 있어요. 당시에도 노년의 문제로 체력의 저하를 이야기하는 담론이 많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짧고 금방 읽어요. 모두 한번 읽어보심은 어떨지....ㅋ

  • 2020-06-23 07:46

    A조 후기(우리는 무슨 얘기를 나눴던가...가물가물)

    <주체의 해석학 2강 후기>

    “오늘 수업은 강의안 없이 <노년과 타자>라는 새로운 주제에 대해 조별 세미나 중심으로 진행합니다.” 진행방식에 대한 문탁샘의 카톡이 전해진 건 수업 시작 2시간 30분 전이었다. 수업 시작 2시간 30분 전에야 부랴부랴 메모를 올렸던 지난날의 만행(?)에 대한 문탁샘의 소심한 복수였을까?ㅎㅎ

    문탁샘과 함께 한 토론(보다는 강의 청취)

    토론은 3인(새은, 우현, 초희)의 메모 읽기와 메모 중간 쟁점사항에 대한 문탁샘의 코멘트로 시작되었으나, 어느 순간 강의로 변질(?)되었다.

    우선, 문탁샘은 요약하며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셨다. “요약하기는 맥락과 구조를 잡는데 효과적이므로 노트에 요약하며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지금 읽고 있는 텍스트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늘 생각하며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늘의 푸코는 로마 제국 시대 기원후 1, 2C ‘자기 배려의 황금기’에 대해 다룬다. 이전 수업에서 그리스 시대 <알키비아데스>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본 ‘자기 배려’와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했다. <알키비아데스> 시대, 자기 배려의 대상은 젊은 귀족 청년이며, 도시국가 통치가 목적이었고, 자기 배려의 주된 형식은 ‘자기 인식’이다. 반면 로마 제정기에 와서는 자기 배려의 대상은 만인으로 일반화되고, 자기 자신이 목적이며, 자기 인식을 넘어 실천 행위들이 요구된다. 이 자기 실천은 교육-지식보다는 교정-자유에 가깝다. 다만, 만인으로 일반화되었다 하더라도(호소의 보편성) 소수의 특정한 사람만이 가능했으며(구원의 희소성) 당파적 현상과 연결되어 학파, 종파 등으로 조직화되었다.(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견유학파 등)

    자기 배려의 정점, ‘노년’에 대해서는 잠깐 언급만 됐고,
    자기 배려의 매개자로서의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알키비아데스>시대에는 세 종류의 타자와의 관계, 즉 모범행동의 모델, 행위능력의 숙달, 소크라테스식의 숙달이 있었던 반면, 로마 제정기 자기 실천에서 타자와의 관계에는 학파 중심의 헬레니즘적 유형(피타고라스 학파는 비의적이고 엄격한 유형이었고, 에피쿠로스학파는 ‘우정’의 관계를 기반으로한 학원, 학교적 유형. 문탁도 ‘우정’관계를 기반으로한 유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과 로마적 유형(사적인 고문 형식이다. 마치 스카이 캐슬의 김주영 스앵님과 같은 코디네이터, 준계약적 의존 관계와 같다.)으로 구분된다.

    우리끼리의 토론

    ‘노년의 자기 배려’에 대한 생각 나누기
    “노년이 자기배려의 정점인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노년은 너무 먼 얘기다. 청년인 나를 온전히 누리고 싶다.“, “지금 시대는 듣기 윤리와 말하기 윤리가 필요한 때이다. 스승이나 노년의 조언은 이른바 ‘꼰대’스럽다며 배척당하고, 옛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는 노년의 말하기 습관은 ‘라테는 말이야’로 희화화된다. 청년에게는 듣기 윤리가, 노년에게는 말하기 윤리가 필요하다.” “자기배려의 정점,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년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정념의 수가 적어질 수는 있으나, 정념이 없을 수는 없다.”

    타자와 관계맺기의 어려움
    “타자와의 관계에서 ‘교정-자유’ 자기 실천을 하고 싶은데, 이 관계에서도 역시나 듣기 윤리와 말하기 윤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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