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결론, 후기' 후기

경덕
2024-04-04 17:55
93
정동적이고 미로를 탐험하는 듯한 사라 아메드의 서술을 따라 마지막 결론과 후기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와 해제와 들어가는 글을 읽으니까 다시 새로운 미로에 입장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감정이 안과 밖을 구분하고 표면과 경계를 형성한다는 아메드의 주장에 따라, 이 책을 읽으며 그때 그때 만들어지는 감정이 이 책의 표면과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느낌이 주체나 대상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의 효과로 생산된다는 감정의 "사회적 모델"을,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으며 접촉하는 대상들, 순환하는 감정들, 생산되는 경계들이 정동적 가치의 형태로 축적되어 어떤 '우리'를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아메드는 감정과 정동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증오, 공포, 혐오감, 수치심, 연민, 슬픔 등의 감정의 언어를 사용하여 감정 정치(정동 정치)의 작동 방식을 분석합니다. 결론에서 정의를 이야기할 때에도 감정은 정의와 분리될 수 없고, "감정에 휩쓸린다"고 말하며 감정을 폄하하는 상황들, 감정과 이성의 구분에 의존하여 정의를 이야기하는 철학 전통을 비판합니다. 감정은 주류집단에 의해 전유되어 지배질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될 수도 있지만, 부정의에 분노하고, 상처로 인한 흉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부정의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감정은 타자에 대한 다른 지향을 수반하면서 미래를 열기도 한다고 말하며 "느낌은 우리가 세계의 표면을 가로지르도록 하며 우리의 삶을 이루는 내밀한 테두리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우리가 이 느낌을 가지고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마무리합니다.
 
사라 아메드는 이 책을 2004년에 출간했고, 10년 후 2014년 이 책에 대한 긴 후기를 남겼죠. 저는 옮긴이의 후기도 인상깊었어요. 이 책의 번역 작업을 2014년에 8명의 번역팀으로 시작했는데 9년이 지나서 혼자 마무리한 것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메드가 이 책을 쓰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9.11 테러 이후에 대한 반응, 난민, 이주민, 원주민을 둘러싼 폭력의 역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럼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어떤 정동적 가치를 축적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성과 합리성의 언어 이전에 우리를 형성하고 대상을 만들어내는 감정과 정동에 주목한다면, 부정적인 느낌에 사로잡힐 때 그 느낌을 극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느낌에 머무르고 느낌에 주목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는다면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요.
 
사라아메드는 '정동적 전환an affective turn'이라는 흐름 속에서 "정동적 전환이 정동으로의 전환이 될 때, 페미니즘 연구와 퀴어 연구는 더 이상 정동적 전환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며 우려를 표합니다. 라겸 샘 은 아메드의 지적과 관련하여 마수미가 말하는 '개인성도 없고, 지향성도 없고, 매개되지도 않고, 의미작용에서 벗어나는 유동적인 것'으로서의 '정동'과 아메드 자신이 말하는 '주체를 넘어서 작동하며, 표면을 경계화하면서 움직이는 것, 경험의 무질서'로서의 '감정'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는 달라지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아메드는 정동을 감정과 다르거나 감정을 넘어서는 것으로 다루려는 경향을 경계하면서 자신은 정동과 감정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 정동이 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 개념이라고 보는 관점, 감정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으로 환원하는 경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주체와 관련 있지만 주체로 환원되지는 않는 감정에 대한 모델을 발전시키려 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아메드는 '대상의 순환'에 주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수상하고, 위험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을 형성하는 감정을 문화 정치와 사회성 모델로서 제시하기 위함인 것이죠. 이후에 읽을 마수미의 작업은 사회적 속성을 강조하는 문화 정치와는 다른 층위(비인간적 역사, 전개체적 역사)에서 정동 이론을 제시하려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스피노자와 마수미로 이어지는 이후 텍스트를 읽고 나면 아메드에 대한 이해가 또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집니다.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겸목 샘은 요즘 선거 기간이 한창이라 여러 정당에서 쏟아내는 복수, 분노, 환상, 설렘의 정동을 목격하며 이번 총선을 '감정 과잉'이라 진단하셨고, 정의와미소 샘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자’,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같이 행복을 표방하는 언어에서 정작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정동 소외자'가 될 텐데, 그럼 우리에게 행복의 대상은 뭘까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저는 공적 언어 이면에 흐르고 있는 정동적 언어들, 친구들이 비공개 톡방에서 표출하는 감정의 언어들이 떠올랐어요.
 
며칠 전에 문탁샘이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이란 책을 힘들게 읽고 있다고 하셨어요.  '청년여성들의 자살생각에 관한 연구'라는 부재가 붙은 그 책은 코로나19 이후 20대 여성들의 급증하는 자살률에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살충동을 경험하고, 자살생각을 공유하는 청년들, 심리 상담과 약물 복용에 관한 대화를 일상적으로 나누는 지인들도 떠올랐고요. (문탁샘은 정동 팀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나가며 말씀하셨...) 아메드의 '감정의 사회성' 모델에 따르면 감정은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인 느낌일 수 없기에.. 누군가의 '느낌' 은 생산과 순환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말을 기억하며...
 
담주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습니다. '감정의 기원과 본성'이라니... 난감함이 극에 달하면 편해질 거라는 겸목샘의 조언을 새기면서^^ 토욜에 뵈어요!
댓글 2
  • 2024-04-04 18:11

    오! 경덕님의 후기도 정리가 좋네요~~ 정동과 감정의 구분, 감정의 순환과 대상의 순환, 감정과잉과 냉철한 이성에 대해 샘나에서는 쌈박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스피노자와 마수미를 읽으며 그 부분들을 채워 봅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까요^^

  • 2024-04-06 07:26

    한 손님 가시고 나니 다른 손님 오시네요^^ 그리고 경덕샘 후기와 스피노자의 3부 정리 4를 보니 뒤르켐의 자살론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드네요. 마무리 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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