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인문학> 2주차 후기 1조

새털
2020-10-1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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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리베카 솔닛을 알게 된 것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고나서였다. 재난유토피아, 엘리트패닉 등 새로운 개념들로 재난이 가져오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리베카 솔닛의 관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등장한 '맨스플레인'이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책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놀랐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의 개념이 지금의 현실을 얼마나 명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그녀의 글은 잘 보여준다. 이렇게 나는 그녀의 팬이 되었다. 물론 내가 그녀의 책을 모두 다 읽은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책 <걷기의 인문학>은 예전에 샀다가 몇 장 읽다가 덮어버린 책이다. 너무 파편적인 이야기가 나열되고 있어 '읽는 맛'이 덜했다. 그리고 올해 <양생프로젝트>에서 '걷기'를 커리에 넣으며 다시 이 책은 1순위로 거론되었다. 몇 년을 묵혀 두고 읽어도 안 읽히는 책은 안 읽힌다. 그나마 내가 실제로 걸어보면서 이 책을 읽게 되어, 텍스트를 실기교본처럼 대하게 되어 덜 지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미나에 와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하품하며 읽던 내용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단박에 빠져들 수는 없지만, 슬슬 천천히 스며드는 맛이 있다. 두 번째 시간에 메모를 해온 사람은 우리 조에서 세 명이었다. 짜기라도 한듯 모두 다른 부분에 대한 글을 써와서, 메모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얼추 살펴볼 수 있었다.

 

라라님은 워즈워스의 낭만시가 그의 도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 엄청 감동받으셨다. 검색을 통해 <틴턴사원>을 찾아보고 오셨다고 해서 다들 놀랐다. 워즈워스는 걷기와 도보 여행이 없었더라도 시인이 되었을 것이지만, 걷기와 도보 여행을 통해 그의 시의 호흡과 리듬이 만들어진 것 같다는 솔닛의 해석에 우리 모두 동의했다. 특히 나는 운문인 시를 늘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걸음을 걷는 속도를 기억하고 시를 읽어보면 시가 가지는 운율과 리듬감을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보행을 위한 모임들, 통행을 위한 투쟁들'을 중심으로 메모를 썼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뒷산에 또 다른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통로가 제한되는 일을 겪은 터라, 이 부분이 특히 와닿았다. 영국에서는 '무단 진입 개념'이 별로 없는데, 사유재산에 대한 감각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무단 진입은 범죄로 취급받는다. 최근 휴먼시아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휴거'라고 놀리는 초등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계층에 따라 주거지가 분리되면서 나온 혐오발언들이다. 또 프라이빗 휴양지가 늘어가고 있다. 공적인 것의 사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오늘날, '걷기'로 이러한 감각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2주째 줌으로 참여하고 계신 무사님은 자신을 '한량이 워너비'인 사람이라는 메모를 올리셨다. 내가 보기에 너무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는 무사님에게 한량이 어울릴까 싶어 질문을 던졌는데, 이 순간 전화가 와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무사님은 뭐라고 대답을 하셨을까? 무사님의 메모는 등산회고록에 대한 내용과 벤야민의 플라뇌르를 중심으로 쓰여져 있었다. 여성 산악인들의 무분별한 경쟁과 사망사고로 이어진 비극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고, 빵지 순례의 전당 군산투어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다들 골목길과 근대식 건축물이 남아 있는 군산으로 '걸으러' 가고 싶다는 욕망을 마구 분출했다.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하루 종일 걸으러 가봅시다!!

 

다음주 드뎌 두꺼운 <걷기의 인문학> 마칩니다. 그리고 전체 세미나로 문탁 2층 강의실에서 모입니다. 각조별로 2명씩만 메모 올려주세요. 후기를 읽어보니, 모두들 활기차게 공부든 걷기든 각자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얻어가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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