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 성의역사> 시리즈 완독기념 갈무리데이!!

문탁
2020-06-02 08:25
285

1. 와우,  후기 푸코를 ‘뗐다’ 

 

<성의 역사 4>의 마지막 문단을 읽고 책을 덮으면서 떠오른 것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뜬금없는 문장이었습니다. 알겠더라구요. 푸코가 1976년 성의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오랜 기간 질문하고 숙고하고 읽고 연구해서 도달한 것이 바로 <성의 역사 4>의 그것도 마지막 3장에서 정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리비도이론이라는 것을요, 그것을 통한 ‘욕망하는 주체’ 의 탄생이라는 것을요.

 

그런데 그렇게 맥락을 이해했다고 해서 <성의 역사 4>를 읽는 것이 쉬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푸코의 다른 책들은, 일단 그가 인용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도 읽을 수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읽었다는 차원에서 (플라톤? 세네카? 갈리우스? 에픽테투스?....^^)  푸코의 논지를 이래저래 따라갈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의 역사 4>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강론집>, <교사>, 카시아누스의 <강연집>,<수도원 교육>,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공동생활 수도사 교육>, 유스티누스의 <교훈집>,<변호론>, 테르툴리아누스의 <속죄론>과 <순결론>, 성 파치아누스의 <권면>, 안키라의 바실리우스의 <완전한 동정에 대하여>, 성 암브로시우스의 <동정론> 등, 성 히에로니무스의 <요비니아누스를 반박함> <헬비디우스를 반박함> ...계속해서 무슨 ....누스.....무스....티오.....피오...테스....로 줄줄이 사탕처럼 나오는 초기 교부들과 그들의 텍스트....

 

아이고, 단 하나도 읽은 게 없더라구요. 게다가 누가 무엇을 주장했는지도 모르는데 그가 누구와 뭐 땜에 싸웠는지를 도대체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겨우겨우 코끼리 다리 더듬듯이 이리 저리 얼개를 짜가면서 푸코를 간신히 따라갔습니다. (<성의 역사 4>를 읽기 위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고백론> <자유의지론>을 먼저 읽는 것은 필수 같습니다. .ㅠㅠ )

 

그렇다 하더라도..어쨌든... 비록 책장만 넘긴 것이라 해도...그래서 누가 뭐라해도...ㅋㅋ... 우리는 <성의 역사1>에서 <성의 역사4>까지 무려 1,342쪽을 다 읽었습니다. 후기 푸코를 ‘뗀’ 것입니다....크하하핫 아이 조아!!

 

 

 

 

2. 그래서, 푸코는 도대체 <성의 역사> 시리즈를 통해서 무엇을 하려고 한 것일까요?

 

  “몇 년을 거치는 동안 푸코의 계획이 ‘발견의 논리’라는 우여곡절 끝에 크게 변화하게 됨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거기서 주저와 오류, 회한과 방황이 이어지다가 그것들이 새로운 직관과 새로운 발견물에 의해 지양되고 극복되었다. <성의 역사>는 자기 테크닉의 역사가 되었고, 서구 문화의 여명기에 주체가 형성되는 방식과 그 ‘주체’의 계보가 되었다” (에리봉, p555)

 

지난 토욜 강의안에서 저는 이걸 요러케 정리해놨습니다.

 

많이 돌아왔다. 푸코 사후 36년을 지나서 우리에게 도착한 <성의 역사 4>, 그러나 그것은 어떤 점에서는 여전히 <성의 역사 1>의 문제의식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메커니즘을 전술적으로 반전시킴으로써 권력의 발판에 대해 육체, 쾌락, 지식의 다양성과 저항 가능성을 내세우고자 한다면, 바로 이 성의 심급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섹슈얼리티 장치에 대한 반격의 거점은 성-욕망이 아니라 육체와 쾌락임이 틀림없다.” (<성의 역사 1> p170) 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성의 역사1>에서 했던 바와 같은 작업, 즉 성을 더 이상 금기와 해방이라는 도식 속에서 사유하는 것을 멈춰 “성과 관련된 지식의 형성, 그것의 실천하는 권력체계”를 분석하는 것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성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 그는 개인들이 스스로를 성적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 방식들의 연구를 수행해야 했다. (<성의 역사2> p19) 바야흐로 “욕망인의 계보학”! 그리고 드디어 <성의 역사4>의 말미에 이르러 푸코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분석함으로써 그 작업을 완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푸코의 이 과정은 지난고난하다. 기독교에서 시작된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욕망의 주체라는 개념을 계보학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푸코는 우선 고대 그리스와 제정 로마시대를 연구한다. 복습삼아 말해보자면 고대 그리스에서 성의 경험은 욕망과 그것의 실천, 그 결과인 쾌락의 어떤 분리 불가능한 관계를 표현하는 아프로디지아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한 덩어리로 쾌락의 절정을 지향하는 행위..몸의 경련이 수반되는 일체성”(<성의 역사4>, p526)이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도록 그 힘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이 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의학적, 시학적, 철학적 테크네들을 통해 자기 지배의 미학적 삶을 구축해나갈 것! 그것이 그리스인들의 과제였다.

이에 비해 제정기 로마에서는 성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상대적으로 깊어지면서 ‘자기 수양’이라는 문제계가 출현한다. 그들의 관심은 관능적 쾌락의 적절한 분배가 아니라 자기 수양의 다양한 테크네 (cf <주체의 해석학>)를 통해 아파테이아의 삶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금욕의 강화와 성의 경직화가 목격되지만 여전히 그것은 ‘존재의 기술’에 속하는 것이었다. 다시 환기하자면 “‘존재의 기술’이란 인간들이 그것을 통해 스스로 행동규칙을 정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들의 특이한 존재 속에서 스스로를 변형시키며, 그들의 삶을 어떤 미학적 가치를 지닌, 그리고 어떤 양식의 기준에 부합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신중하고도 자발적인 실천”(<성의 역사2> p26)을 의미한다.

그리고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존재의 기술’, ‘자아의 기법“은 기독교 사목 권력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욕망의 주체가 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이건 근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인데 겉으로 보기에 기독교적 도덕은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더 이상 동정이라든가 순결을 최고의 가치로 삼지 않는다.) 실제 기독교 품행의 핵심 (스스로를 해독을 통해 파악해야 할 욕망의 주체로 삼는 것. 그래서 "니가 원하는 게 진짜 뭐야?"라고 자꾸 묻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교육적, 의학적, 혹은 심리학적 실천들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푸코는  <성의 역사>의 길고 긴 여정을 통해, 욕망하는 주체의 계보학적 탐사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 자신을 알기 위해 주체의 해석학을 시도하지 말고 너 자신을 만들기 위해 존재의 기술을 사용하라고. 

 

 

 

 

3. 하지만 그리스와 로마는 결코 대안이 아닙니다.

 

1984년 5월29일 푸코의 마지막 인터뷰 (푸코는 6월25일 사망한다)

 

-존재 양식이라, 그것 참 대단하군요. 그런 그리스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푸코: 아니요.

-모범적이지도 대단하지도 않나요?

푸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푸코: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제가 고대의 도덕 가운데 모순된 지점이라고 생각한 것, 즉 한편으로는 특정한 존재 양식을 집요하게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하는 모순에 즉각 부딪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스인은 이런 양식을 세네카나 에픽테투스와 함께 약간은 모호하게 접근했지만, 그것은 종교양식의 틀 안에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지요. 제게는 고대 전부가 ’심오한 실수‘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웃음) (푸코의 마지막 대담,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1999, 새물결)의 <4.도덕의 회귀>, p106)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의 강의록을 편집한 프레드릭 그로는 이걸 그리스, 로마 윤리의 아포리아라고 말합니다. (음, 새털님이 좋아하겠군요)

그러니까 그리스 윤리는 신분적 우월성, 타자에 대한 경멸, 비상호성, 비대칭성의 기준에 근거하고 푸코는 이 모든 것을 “솔직히 혐오스럽다”고 말합니다. 스토아는 이런 엘리트주의적이고 오만한 그리스 도덕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보편성 속에 자신의 윤리를 정초하지만 이렇게 되자마자 스토아의 윤리는 또다시 강압적인 공화주의적 도덕으로 변질되는 거지요. 푸코는 “바로 여기에 고대철학의 불운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프레드릭 그로는 이걸 ‘비종교적인’ 도덕과 진정한 (니체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재성의 윤리 간에는 차이가 크다고 말하면서 여기에서 푸코의 견유주의적 경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견유주의에 대한 궁극적인 호소일까? 마치 엘리트의 윤리나 만인에게 의무적인 윤리의 아포리아에 직면해 푸코가 결국에는 정치적인 도발과 파문을 일으키는 윤리 이외에는 합당한 윤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이 윤리는 견유주의자들의 자극적인 도움과 더불어 도덕적 고심의 원칙과 도덕을 귀찮게 하는 바(소크라케스의 교훈으로의 회귀)가 된다.” (프레드릭 그로, <주체의 해석학> 강의정황, p561)

 

그래서 어쩌라구...................요? 라고 말하고 싶으시죠?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구요?

 

푸코는 우리에게 대안을 자꾸 찾지 말고 철학적 활동을 하라고 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게 푸코가 칸트를 다시 독해하는 맥락이겠죠^^) 위에서 인용한 푸코의 마지막 대담의 마지막 질문과 답변을 다시 확인해봅시다. 대담자는 푸코에게 묻습니다. “보편적 진리도 확언하지 않고 대신 사상 안에서 역설을 제기하며 철학으로부터 끊임없는 질문을 만들어내고 있는 당신은 회의주의 사상가입니까?”라고. 푸코는 일단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또 다시 회의를 통해 다른 대안을 찾아가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푸코의 육성, “대신에 제가 목표하는 바는 우리가 지신의 영역을 한정시킬 수 있도록 철학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철학은-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적 활동인데 – 무엇인가? 그것은 사고에 대한 비판작업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에 어떻게, 그리고 어느 만큼까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철학적 담론이 밖으로부터 타인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그들의 진리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찾는가를 말해주고자 할 때, 혹은 순수하게 실증적으로 그들의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다고 자부할 때, 그 철학적 담론은 얼마간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보다 바로 그 철학적 사고 속에서 철학과는 무관한 지식의 훈련에 의해 변화될 수 있을 것을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권리인 것이다. ‘시도’-이것은 의사소통의 목적에 맞게 타인을 단순화시키는 것으로가 아니라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려는 시험으로 이해되어야만 하는데 –는 철학의 살아있는 본체이다. 적어도 철학이라는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전과 같은 것이라면, 다시 말해 그것이 사고에서의 ‘고행’, 자기의 훈련이라면 말이다.” (푸코,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 나남, p24)

 

음...나아간게 아니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으세요? ㅎㅎㅎ

푸코, 특히 후기 푸코를 읽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ㅋ

 

 

 

 

 

4. 어쨌든 갈무리를 하고 넘어갑니다.

 

<주체의 해석학>이 남았지만 <성의 역사> 시리즈를 뗀 기념으로 우리는 에세이데이,   갈무리데이를 합니다.

 

일시 : 6월6일(토) 오전반 10시, 오후반 2시

준비해올 것: 2쪽 이상의 페이퍼 (6월5일 밤 10시까지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반드시!!!!!!!!!!!!) + 약간의 간식

방법 :

①서평처럼 써보기 (성의 역사 1,2,3,4권 중에 한 권. 혹은 이 책의 한 장(章) 혹은 한 절(節)을 선택해  ‘새털처럼 써보기’)

②에세이처럼 써보기 (제목의 예 : 잃어버린 아스케시스를 찾아서 / 신독(대학)과 영혼지도(기독교) /스토아의 자기로의 전향과 맹자의 反求諸己 / 삶의 스타일을 창안한다는 것은? /욕망과 진실과 주체의 삼중주 / ‘자기고백’과 말하기의 윤리 / 자기가 자기와 관계를 맺게 된다면? ....)

③ 가장 좋은 것은 2~3쪽을 완결된 글로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면 지금까지의 독해와 질문을 두 세가지로 나눠서 작성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참고도서 : <안전,영토,인구>의 8강 + <자유의 실천으로서 자아에의 배려>

 

그럼 6월 6일에 뵙겠습니다. 

 

 

 

 

 

피에쑤: 이제 <주체의 해석학>이 남았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를 미리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가지고 계신 아무 철학사 책을 펼치셔서 소위 헬레니즘철학 (특히 스토아철학)도 휘리릭 읽어보세요

댓글 5
  • 2020-06-02 08:43

    아무 책이나 읽으려고 한다면 피에르 아도의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로 읽기를 권합니다!!

  • 2020-06-02 08:55

    튜터님^^ '스토아의 와 맹자의 反求諸己' 요 주제의 문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오.....타? ㅋ

    • 2020-06-02 09:01

      스토아의 자기전향과 맹자의 반구저기
      혹은
      스토아의 자기향유와 맹자의 반구저기

      뭐 어떤 것이라도 가능하겠죠?

      • 2020-06-02 09:06

        네~~~~에. 사서덕후에서 맹자를 매일 암송하고 있는 저로서는 '지나칠 수' 없는 주제이군요^^ 음....

  • 2020-06-02 20:48

    다행히 <알키비아데스>가 있네요 ㅋ

    욕망과 진실과 주체의 삼중주 .. 요거 주제로 탐나지만 쓸 수 있을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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