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용 15일차 - 기차 탔어요

토용
2021-10-27 18:54
143

어제 기차 타고 딸이 사는 함부르크로 왔다.

뮌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가을이 깊어졌다고나 할까.

뮌헨의 이른 아침보다 함북의 오후가 더 추운 느낌이다. 

함북은 북유럽쪽에 가까워서 겨울이면 대부분 흐리고 비가 온다.

 

기차를 타기 전  좀 걱정을 했다.

그동안 독일 기차를 여러 번 타면서 별별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차에 야생동물이 부딪혀서 뒤에 오는 기차 두어 시간 기다렸다가 선로 중간에서 다른 기차로 갈아탄 일.

기차역에 나갔더니 내가 탈 기차가 그냥 취소되어 또 두 시간 뒤 기차를 타고 간 일. 

잘 가다가 무슨 공사 한다고 다른 기차로 갈아탄 일(심지어 논스톱 기차였는데 환승까지 함)

또 잘 가다가 선로에 사람이 서 있다고 한참 멈춰 서 있다가 늦어서 환승기차 놓친 일.

그냥 연착을 밥 먹듯이 해서 하염없이 기다린 일 등등등

제대로 기차를 타 본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오죽하면 독일에서는 중요한 시험이나 업무상 미팅이 있으면 그 전날 미리 가라고 할 정도이다.

 

 

비행기를 타면 그나마 낫겠지만 난 그래도 기차가 좋다. 

유럽은 기차로 국가간 이동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래서 툰베리가 비행기 타지 말고 기차 타자고 주장하나보다.

탄소배출이 훨씬 적으니까.  그렇지만 시간이 금인 사람들은 비행기 타겠지....

이번 기차는 아주 다행히도 30분 정도 연착한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무거운 캐리어도 있는데 중간에 다른 기차로 갈아탈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런데 내 뒤에 한 무리의 10대들이 앉아서 6시간 내내 떠드는데 정말 괴로웠다. 

전세계 10대들은 정말 다 똑같다.^^

 

 

기차 여행은 잘 했는데 문제는 딸과의 상봉이었다.

딸이 요즘 목이 아파서 학교도 못갔길래 중앙역으로 나오지 말고 집근처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통때면 집까지 혼자 가는데 새로 이사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함북은 그래도 익숙해서 역까지는 문제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딸은 승강장에서, 난 전철역 입구에서 30분 이상 따로 기다린 것이었다. 길이 엇갈렸나보다.

문제는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 난 독일 가면 잘 안돌아다녀서 따로 현지 데이터를 사지 않는다. 

집에는 와이파이가 있어서 크게 힘들지 않으니까. 

가게 들어가서 전화를 걸어달라고 할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혹시나 싶어 승강장으로 올라가 봤더니 거기 딱!!

반가운 상봉은 커녕 넌 왜 여기서 있냐고 구박부터 했다. ㅋㅋㅋㅋ

이렇게 딸 집에 무사히 왔고, 여기서 앞으로 두 달을 지낼 예정이다. 

이제 숙제를 했으니 청소 도구를 사러 나가봐야겠다.

 

 

 

댓글 4
  • 2021-10-27 20:22

    독일 사람들은 기차가 연착되고 엉뚱한곳에서 서도 그려러니~하는군요.

    마치 시골 버스 운행같아요.

    함부르크는 또 어떤 곳일까. 완전 기대 뿜!뿜! 입니다. 내일아. 빨리와라~~새로운 일지 읽게.

    ㅎㅎ

  • 2021-10-28 08:29

    ㅋㅋ 왜 거기  서 있냐구? 엄만 왜 거기 서 있는데 하고 맘 속으로 문정이가 생각했을듯….

    상봉부터 재미난 모녀

    같이 지낼 하루하루가 기대됩니당

  • 2021-10-28 09:53

    기차 안에서 줌으로 회의하며 간 토용 ㅋ

    그래서 인지 사진이 왠지 친숙하네요 ㅎㅎ

    잘 도착해서 재밌는 상봉도 했군요

    딸 사랑 많이많이 하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 2021-10-28 13:29

    저 위의 기차를 타고 가는 데 여러가지 사연들을 읽는데 넘 설레였어요.

    옛날 우리의 모습들이 그러지 않았나요. 가다가 멈추면 멈춘대로 기다리고,

    갑자기 취소되면 취소된대로 다른 방법을 찾거나 또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렇게 우린 기다림을 배웠는데....  언제부터 단 1초도 기다릴 수 없는 신체가 되었는지.... 넘 우울해집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있는 전날은 모든 준비를 다해서 대기하고 있기,.. 등등등

    똑같네요.. 그들은 우리같은 상황을 겪은 후 한바퀴 돌고 지금의 모습일까요. 아니면 벌써 다 알고 아예 우리같은 상황을

    시도도 하지 않았을까요... 좀 천천히 살기, 느리게 살기... 왜 이렇게 그리운 걸까요.. 이 대낮에...

     

    문정인 좋겠어요.  앞으로 2달동안 구리스마스랑 연말을 엄마랑 같이 지내게 되어서...

    '넌 왜 거기 서있냐'고 타박부터 하는 토용샘이 딱 상상이 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