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걷기, 로망에서 리츄얼로

기린
2024-04-06 08:13
225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 길을 걷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는 해야 할 일들이 뒤엉켜 떠올랐지만 이것부터다 싶은 것이 없었다. 친구들한테 해파랑길을 완주하고 싶다고 했더니 대부분 해보든지, 근데 왜? 이런 표정들이었다. 굳이 이유를 찾아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무작정 길을 나선다하기에도 어딘지 석연찮았다. 도보 여행가의 글을 읽던 시간에서 20년이 훌쩍 지나 50대 중반인 것도 한 몫을 했다.

 

 

<와일드>라는 영화가 있다. 개봉 영화 정보에서 알게 된 영화였는데 챙겨보진 않았다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찾아보았다. 2014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셰릴 스트레이드 라는 여성이 20대 후반에 4285km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을 혼자서 완주한 이야기이다. 미국 3대 트레일 중 가장 길고 험하다는 이 길은 미국서부를 종단하는 길로 사막을 통과하고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고 빙하와 눈이 쌓인 산길도 가야하는 장장 6개월이 걸리는 길이라고 한다. 영화 도입부에 야리야리한 리즈 위더스푼이 30키로가 넘어 보이는 배낭을 메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피시티’를 걷는 셰릴의 여정과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과거를 교차편집하면서 나아간다.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죽음, 뿔뿔이 흩어진 가족, 그리고 이혼까지 웬만한 인생의 역경은 거의 다 겪은 이야기는 걷는 길의 풍광보다 자극적이었다. 40대의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슬픔을 잊기 위해 마약에 빠졌다. 결국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절망은 바닥을 쳤다. 그러다 피시티를 안내하는 책자를 보게 되었고 충동적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자연이나 사람, 동물까지 어느 하나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막의 열기는 극단의 갈증으로 위협했고, 낯선 남자의 도움을 받는 일은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허허벌판에서 달랑 하나 텐트에서 잠드는 밤은 온갖 야생 동물들의 공격에 노출되어야 했다. 걷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도 없이 닥쳤지만 결국 그녀는 다시 걸었다. 걸으면서 겪는 자연이 험난하면 할수록 이미 지나온 삶이 주는 상실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트레일의 중간 중간 물과 식량 등을 보급 받을 수 있는 휴식처도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녀가 걸어오면서 남긴 방명록의 당사자임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혼자서 걷고 있는 그녀의 대담함에 다들 놀랐고 어느 순간 그녀는 ‘피시티의 여왕’으로 회자 되었다. 이혼한 남편이 보내주는 보급품을 챙기는가 하면, 하룻밤의 연인을 만나는 장면도 있다. 드디어 길의 끝에 이르렀지만,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그때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는 고백으로 영화는 끝났다.

 

 

영화다 보고 나니 뭔가 허전했다. 20대인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과거는 너무 자주 오버랩 되었고,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어 걷는 풍광은 배경화면에 불과했다. 길에서 풍기는 야생미에 비해 여주인공의 젊음이 너무 인공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시코쿠 순례길을 상상하고 해파랑길 완주에 나서고 싶었던 기대로 가슴이 뛰었던 순간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주인공처럼 젊지도 않고, 후방에서 보급품에 돈까지 챙겨 보내줄 전남편도, 밑바닥이라 여길만한 과거도 없어서 일까. 영화를 다 보고나니 언젠가는 그 길들을 걷겠다는 생각이 더 이상 나의 로망이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이 다 지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는 허전함이었다.

 

 

4월, 온 천지가 봄의 꽃들이 화사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곧장 공간을 나선다. 광교산으로 통하는 등산로 입구 분홍빛으로 일렁이는 진달래 꽃빛깔들이 멀리서도 발길을 잡아 끈다. 그 뒤로 벚꽃나무 한 그루에서도 벚꽃잎이 하하 호호 하면서 부르는 것 같다. 종잡을 수 없는 기온의 변화로 한꺼번에 피는 꽃들이 안쓰럽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만발하는 꽃들로 기뻐지는 것도 사실이다. 오르막으로 접어들면서 호흡을 가누고 한 걸음 한 걸음 몸의 무게를 땅에 싣고 걷다 보면, 산 밑에 있는 데서 공부하면서 보내고 있는 지금을 매번 감사하게 된다. 한 시간쯤 계절을 느끼면서 걷고 나면 오후의 일상에 활기가 돋는 것을 체감한다. 그래서 걷기는 여전히 나의 일상을 북돋는 리츄얼이자 또 다른 로망을 품게 하는 활동이다. 걷기 좋은 계절, 어떤 로망이 다가올지 기다려진다.

 

댓글 5
  • 2024-04-10 11:29

    시코쿠로 시작된 걷기의 로망이군요.
    제게 시코쿠는 순례의 로망입니다.ㅎㅎ

  • 2024-04-12 09:28

    <나를 부르는 숲> 이 생각나네~

  • 2024-04-12 19:13

    지금 읽고 있는 <바가와드 기타 강의>에서 리추얼을 "삶에 질서와 에너지를 불어넣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기린쌤의 걷기 리추얼은 정말 그런 것 같네요. ^^

  • 2024-04-15 12:05

    리추얼의 의미가 그렇군요~ "삶에 질서와 에너지를 불어넣는 기술" 메모 완료 ^^ 기린샘의 걷기 리추얼!
    언젠가 한 번 동참해보고 싶어요~

  • 2024-04-16 09:20

    "삶에 질서와 에너지를 불어넣는 기술" 을 걷기로하시는 기린샘 덕분에 어제 우중에 물소리길을 다양한 리추얼을 소지하고 계신 학인들과 걸을 수 있었어요 ~~
    무척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뒷풀이가 젤루 좋았지만...ㅎㅎㅎㅎㅎ
    앞으로도 "삶에 질서와 에너지를 불어넣는 기술" 리추얼을 걷기로 같이 실행해요~~
    걷친초는 계속된다!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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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 조회 181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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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290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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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4.17 | 조회 21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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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2024.04.15 | 조회 191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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