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3회 알코올 의존증편

겸목
2020-05-30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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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 괴롭게 하고 병나발을 불게 만드는 것인가? 그러니까 알코올 의존증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봐야 한다.(이렇게 쓰고 나니 명의가 다 된 느낌이다^^)

 

 

“따로 학원을 차릴 생각이라며……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은 그만둘거야?”

“지금 학원에서 나보다 더 오래된 강사가 없어요. 나한테 맞게 세팅해놨는데 왜 그만둬요? 학원 문 닫을 때까지 있어야지.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좋은데.”

 

경력 15년이 넘어선 베테랑강사 자룡이 최근 학원일로 괴로워한다는 풍문이 나에게 들려왔다. 그쯤 되면 자기 학원을 운영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질 만한데, 경영자가 된다는 건 또 리스크가 따라오는 일이니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으리라 나는 예측했었다. 그런데 아니란다. 고정수입이 보장되는 지금의 학원을 유지하며,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자신들이 해보고 싶은 방향으로 학원을 하나 따로 차리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 차릴 학원에 대한 계획을 얘기할 때 자룡의 눈빛은 빛났다. 학생들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앱을 개발하고 통계 분석에 기반한 합리적인 로드맵을 학생들에게 제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만으로도 그는 자신감이 ‘뿜뿜’ 넘쳤다. 야구선수들의 타율과 팀별 승률을 달달 외우며 야구에 대한 지식을 뽐낼 때,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는 그의 초등학생 아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 사람은 소주잔을 한 사람은 사이다잔을 들고 있다는 차이 정도.

 

“저는 지금도 강의할 때 땀을 뻘뻘 흘려요. 학생들은 그런 저를 보고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하는데, 사실은 긴장해서 그런 거예요. 강사일이 잘 안 맞아요. 처음 시작할 때 3년만 하자 생각했는데, 3년……3년 연장돼서 지금까지 왔죠.”

 

이때쯤 초등학생은 문방구에 다녀오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자신의 아버지가 곤혹스러워한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어른들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알아서 자리를 피해줬다. 밤톨만한 녀석이 기특하다. 어디선 이런 매너를 배운 걸까? 자룡이 강사로서 자신의 자질 없음을 토로하고 있을 때, 나는 그의 아들을 신통방통해하며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질이 없는데 한 직업을 15년 이상 유지할 수는 없다. 어떤 직업이든 그것에 맞는 직업의식과 재량이 필요하고, 15년 이상 그 일을 유지해오고 있다면 그에게 그것이 없을 수가 없다. 학생들 앞에서 ‘떠는’ 일은 그가 불안하고 초조해서가 아니라 ‘열의’를 갖고 수업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준비해서 보여주려 할 때 우리는 긴장되고 떨린다. 그게 설렘이고 ‘살 떨리는’ 재미이다. 이런 긴장과 설렘이 없어질 때, 그때야말로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니 강사로서의 자질 없음이 그의 스트레스의 원인은 아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진단의 어려움으로 우리는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이제 더 이상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잖아요. 지금 시작하려는 학원 일도 패배자의 자기합리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멋있고 훌륭한 일이 뭔데?”

“누구는 교수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폼 나잖아요.”

자룡이 말하는 ‘폼’ 나는 일에는 정당 정책연구소의 노동문제 연구원도 있을 것이고, 대안적 삶을 실천하는 비판적 지식인도 있을 것이고, 척하니 기부금을 쾌척하는 금수저도 있을 것이다. 작품성이 뛰어난데 흥행에도 성공하는, 기가 막히게 운이 좋은 영화감독이 되는 일과 같은 것. 나도 그런 꿈을 꿨던 사람이라 덩달아 심란해졌다. 감자탕 국물은 냄비바닥까지 졸아붙어 있고, 술병은 빠른 속도로 비워졌다. 문방구에 갔던 초등학생이 돌아오자 우리는 불콰해진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떻게 이렇게 시간을 딱 맞춰 왔어!”

우리도 그날 우리를 따라왔던 초등학생처럼 매일 ‘칭찬’ 받는 날들이 있었다. 밥을 잘 먹어서, 떼를 안 써서, 학교에 잘 가서, 친구랑 잘 놀아서, 대학에 척 붙어서……. 그런 ‘좋은’ 날들이 다 지나갔다.

 

 

 

  인정욕망, Somebody or Nobody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는 무인도에 도착했지만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어딘가 허전했던 것이다. 말 못하는 염소떼 뿐이었던 것. 배가 채워지자 그의 마음속에 다른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인정의 욕구. 낯선 땅에 사는 존재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고향 이타카에서는 왕이었고, 트로이에선 영웅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언제나 썸바디였다. 그런데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바다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뭇잎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의 자아는 쪼그라들었다. (중략)

 

나 역시 국내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내고 작가로서 자리를 잡은 후에는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 습작생이었던 시절과는 달라졌다. 서점에 가면 좋은 자리에 내 책이 놓여 있고, 꾸준히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 나가면 여전히 나는 노바디였다. 2003년에 아이오와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나는 서른다섯이었고 작가가 된 지 구 년째였지만 해외에서 나온 책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프랑스어판밖에 없었다. 그 후로 세월이 십 년쯤 더 지났을 때는 상황이 더 나아졌다. 이제 영어판으로 나온 책도 여러 권이 되었고, 그 밖에도 여러 언어로 소설이 번역되어 여행지의 서점 외진 구석에서라도 내 책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노바디라는 느낌은 여전했다. (중략) 국내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데, 해외에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를 나만 아는 것 같았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자기만 아는 상태가 지속되면 키클롭스의 섬으로 쳐들어가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심리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163~165쪽)

 

“가끔은 주목받고 싶은 생이고 싶다”는 시집의 제목처럼, 나는 ‘인정욕망’은 우리 모두를 살아가게 하는 기본적인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인정욕망이 자신을 과도한 경쟁심과 성취욕으로 몰아가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정욕망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니냐 조언하려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이건 아마도 자신은 성공에 눈이 멀거나, 과시욕에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에 띄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노바디’의 삶을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가끔은 누구나 알아봐주는 스페셜한 ‘썸바디’가 되고 싶을 때가 없을까? 가끔은 자신을 성별, 나이, 직업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함’으로 구별지어지기를 욕망하지 않는가? 나는 ‘실패자의 자기합리화’라는 말에서 진단하기 어려웠던 자룡의 ‘아킬레스건’을 발견했다. 가끔은 썸바디가 되고 싶은 노바디의 우울함이 느껴졌다.

 

김영하는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자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노바디’와 ‘썸바디’라는 표현을 통해 적절하게 설명해준다. 우리는 때로 지금의 정체성에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행이 인생에 대한 오래된 ‘비유’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노바디와 썸바디를 오고가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타케의 왕이고 트로이의 영웅인 오디세우스도 바다 위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순간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낯선 이방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했고, 그 허영과 자만심이 위기를 가져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십 년이나 지연시켰다. 김영하는 말한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허영과 자만심이 가져온 위험을 겪으며 신중해지고 겸손해지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라고. 허영과 자만심이 아니라 신중함과 겸손함이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찾아주었다. 그러니 썸바디가 되고 싶으면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는 노바디로 움직여야 한다고. 혹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시간들을 꿋꿋하게 보내야 한다고.

 

돌아보면 내 인생은 온갖 중독과의 싸움이었다. 십오년을 피우던 담배를 끊는 데 겨우 성공한 것은 서른세 살 때였다. 그전까지 침대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골초였다. <빛의 제국>을 쓰던 2006년 무렵에는 매일 밤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만들어 마셨다. 그래야 잠이 들었다. 이 버릇을 고치는 데에도 또 몇 년이 걸렸다. 컴퓨터 게임들에도 쉽게 중독되었다.(중략)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야 그 시기에 내가 겪은 것이 단순한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가벼운 우울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던 시절이면 나는 무엇에든 쉽게 중독되어 자신을 잊기를 바랐다. (위의 책, 178쪽)

 

이제 자룡의(그리고 나의) 알코올 의존증은 조금 설명이 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자’로 자신이 규정되는 것을 잊기 위해 도피처를 만는다. 술/담배/게임/쇼핑/여행 기타 등등 우리가 빠져드는 아름다운 것들. 내가 어려운 철학책 속으로 파고들어갔다면, 자룡은 멕시코, 쿠바,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등 지구 반대편의 남미로 날아갔다.

 

 

 

 

  자룡의 세계 테마 기행’-남미편

자룡은 최근 몇 년 사이 두 번이나 남미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한 달씩이나 장기여행으로. 여행을 준비하며 라틴댄스학원을 다녔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가 여행준비와 계획을 철저히 짜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란다. 몇몇 일정과 숙소 예약을 제외하곤 대부분 비워진 채로 그냥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일정과 코스가 바뀌는 게 재미있고, 일정이 안 맞아 하루 이틀 할 일 없이 빈둥대거나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신이 즐긴다는 사실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그는 기뻐했다.

 

“한 번은 저녁에 도미토리에서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저는 다음날 가볼 관광지의 차편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나는 뭔가 극적인 전개를 기대하며 자룡을 쳐다봤다. 지구 반대편까지 갔으니 아즈텍의 신비, 삼바의 정열, 안데스의 별빛, 이과수폭포의 장엄함 같은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너 뭐하니?” 그래서 내일 차시간을 알아본다고 했더니, 소리를 빽 지르는 거예요. “왜 내일 걱정을 해? 맥주 마셔! 지금 맥주 마시는 시간이잖아.””

 

이 한 마디가 자룡에게 각성을 가져왔단다. 아마도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더 강한 임팩트가 전달되지 않았나 싶다. 자룡의 ‘세계 테마 기행-남미편’은 천연조미료를 넣어 요리한 음식처럼 ‘건강한’ 심심한 맛이 났다. 유명 관광지를 굳이 가보려 하지 않았고, 시장을 구경하며 뭐든 사먹는 게 재미있었고, 남미 사람들의 여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그들에게 자신이 가지지 못한 ‘낙관’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그날그날을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날그날 그냥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오니, 학원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조금은 달리 보였다고 한다. 왜 저렇게 공부를 하지 않을까……예전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말을 거니 학생들도 선선히 자신에게 마음을 보여주었단다. 이 무슨 ‘EBS'스러운 전개인가?

 

 

아르헨티나의 쇠고기와 와인이 싸고 맛있었다는 자룡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왜 알코올 의존증을 걱정해? 사회생활에 지장을 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닌데?”

“나쁘지 않은데, 내가 술을 안 마시면 이야기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술이 있어야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자유롭지 않다는 거잖아?”

 

도대체 왜 자룡은 나에게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 알코올 의존증을 염려하고 치료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다. 나는 아직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만성질환 수준인데, 그는 이미 자신의 음주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자기 객관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나도 철학책 속으로 파고들어갈 것이 아니라 집 밖으로 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술은 ‘해방’의 상징인데, 그는 해방이 아니라 ‘자유’를 말한다. 왠지 그는 ‘썸바디’고 나는 ‘노바디’로 밀리는 기분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인생을 자동차라고 비유해보자.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어’를 변속해야 한다. 잘 나가고 싶다고, 기어를 주행(D)에만 놓고 운전할 수는 없다. 후진(R)도 해야 하고 평행(N)에도 놓아야 하고 운전을 마칠 때는 항상 주차(P)에 기어를 위치시켜야 한다. 기어가 주행에만 가있는 자동차는 쓸 데가 없다. 그러니 인생에는 썸바디의 날도, 노바디의 날도, 음주의 날도, 여행의 날도, 그리고 그 밖에 ‘한 눈 팔 것’들이 모두 필요하다. 적절하게 변속할 수 있는 재량과 함께.

 

나보다 더 잘 기어를 변속하는 자룡이지만, 문학처방전답게 앞으로도 그의 여행이 순조롭기를 기원하며 김영하의 문장들을 옮겨 적어본다. 아마도 그는 노바디의 우울이 심해질 때 다시 가방을 싸서 보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길로 걸어가리라.

 

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중략)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앞의 책, 180~185쪽)

 

 

댓글 12
  • 2020-05-30 10:38

    명의세요!!!!

  • 2020-05-30 11:22

    아! 자룡에게 오래전 예약해 둔 치아파스-사파티스타 여행담을 잊고 있었네요.
    자룡님, 언제로 할까요? 날짜 잡읍시다~~

    • 2020-06-10 11:04

      흑 기억이 점점 흐려져가고 있습니다

  • 2020-05-30 14:33

    새털의 글에 점점 빠져들고 있습니다~~
    좋은 중독!!!

    자룡 술 안마셔도 말 잘하고 자유로와 보이던데
    얼마나 더 자유로와지고 얼마나 더 말을 잘 하려고??? ㅋㅋㅋ

  • 2020-05-30 15:51

    제가 [다른 아빠] 모임을 지난 1년간 하면서 본 자룡샘은 참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평소 저지르시는 온갖 악행들(써오기로 한 글을 안 써오신다거나, 지각을 하시고도 사과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모를 자기반성으로 넘어 가신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요) 에도 불구하고
    뭐랄까요, 매력이 터진달까요, 그런 분이었습니다.
    함께 수다를 떨면 어쨌거나 재미있고, 진짜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아시고(이게 참 생각보다 드문 재능입니다),
    논리적이고, 술도 잘 마시시시시고, 피지컬도 좋으시고, 맛집도 많이 아시고, 매너남 우찬결과 닮으셨고, 돈도 잘 버시고, 많이 드시고, 웃기고, 등등등.
    그런데 이 모든 탁월함들에도 불구하고, 안 훌륭하시려고 애를 쓰시는 것 같아요....
    그게 어떤 느낌이냐하면 '난 안 훌륭하니까 훌륭하지 않을거야' 같달까요?
    그래서 애써 훌륭함을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난 훌륭하지 않으니까'
    계속 그러시면 결국, '안 훌륭해서 괴롭다. 술마셔야지, 난 안 훌륭하니까, 술마셔야지, 난 안 훌륭하니까, 술마셔어야쥐이... 난 안 후울류하니꽈알라.'가 되고 말겁니다. ㅠㅠ 흑.
    부디 이미 가지고 계신 훌륭함을 업수이 여기지 말아주셔욥.

    - 우훌룡님께 정군 드림.

    • 2020-05-31 01:01

      와! 정군의 자룡을 향한 애정! 기억해둘게요^^

    • 2020-06-02 21:04

      아 감사한 마음! 새겨듣겠습니다! 이런게 브로맨스인가?

    • 2020-06-05 14:00

      난 안 후울류하니꽈알라~~ 꼭 음성이 들리는~한참을 웃었네요~~^^ 정군님의 담백한 글을 받아서~

      저도 4년쯤 함께한 주정뱅이로써^^
      엉덩이를 슬렁슬렁 흔들며 그 멋진 목소리로 현진영, 육각수부터해서 이승철까지 어떤 장르든 불러 재끼시는 매력등어리인 자룡을 좋아라 하는 1인으로서!
      이병은 안고침이...^^;;; 으쩌실랑가요!~

      • 2020-06-05 14:49

        앗! 낮술에 가무가 빠졌구나...
        하는 깨달음이!! 주도의 길은 멀고도 험해요. 차근차근 서둘지 말고 늘 첫잔을 제끼는 심정으로 마음을 담읍시다...

      • 2020-06-10 11:05

        돠안푸웅이다다!!! 멋진 술친구 단풍! 자네 덕분에 소주 10박스 정도는 더 먹은 것 같소!

  • 2020-06-10 10:31

    어찌보면 자룡과 나는 꽤 많은 부분에서 서로 반대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덕분에 동네친구로 만났고
    아빠라는 정체성(?) 덕분에 함께 술을 마시고 책을 읽는다.
    아마도 이 부분은 정군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이미 그렇게 서로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만남이 있는 그 자리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서 계속
    술을 마시고 함께 놀러를 가고 같이 책을 읽는 건 아닐까?
    자룡은 두 번의 남미 여행 이후 한동안 여행을 안 가도 되겠다는 말을 했던 거 같다.
    김영하의 말처럼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여행'을
    그렇게 멀리까지 안 가도 된다고 느끼게 된 걸까?
    아, 자룡의 음주의존증에 대한 새털샘의 글을 읽으니 갑자기 술이 땡기는 건 좋은 처방 덕분이겠지?
    오늘 점심으로는 공복에 맥주다!!!!!!!!

    • 2020-06-23 23:29

      공복에 맥주 마시다간 곧 청량리도 처방전 의뢰하는 날이 오겠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가 막히게 잘 듣는 처방전으로 준비해놓고^^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남어진
2024.05.10 | 조회 182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오영
2024.05.09 | 조회 170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316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8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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