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블루스(1) - 지구를 떠나고 싶다
문탁
2019-09-19 10:38
992
엄마를 퇴원시킨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음, 지구를 떠나고 싶다.
1.
지난 일주일 동안 난, “엄마, 집에 와서 좋지?” 라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엄마와 눈을 맞추며 애교를 피우고, 전기밥통이나 세탁기 쓰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일일이 일을 가르치고, 엄마가 간병인 아주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해서 차단하고, 간병인 아줌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감정노동을 하고, 집에서 삼시세끼를 찍느라 종종 걸음을 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그걸 널고 개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쓰레기를 버리러 수거장에 나갔다 오고 (그 사이, 잠시 망설인다. 병원에서 기저귀 쓰레기는 따로 수거를 했는데, 집에서는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될까, 라면서), 엄마를 보러 온 온갖 친척, 친지들을 상대하고, 사이사이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넣고, 하루 두 번 엄마의 간식을 미리 챙겨놓고, 엄마의 병원 서류를 정리하고 입원비를 계산해서 엑셀로 만들어 동생들과 공유하고, 엄마의 똥을 살피고 통증지수를 가늠하여 체크리스트에 적고, 무슨 서방정, 서방정, 서방정들로 점철된 약을 분별하여 하루에 29개나 되는 약을 약통에 담고, 매일 같은 시간에 하루는 오른쪽, 하루는 왼쪽에 포스테오 주사를 놓는다. (그걸 위해 알람을 다시 맞춰 놓았다. 동은에 대한 ‘감시알람’^^이 끝나자마자 ‘포스테오 알람’이 켜졌다^^) 발바닥엔 불이 났고 입안은 다 곪아 터졌다.
2.
엄마를 퇴원시켰다고 하니까 다들 좀 회복되신거냐구 묻는다. 글쎄, 회복이란 무엇일까? 회복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허리골절이니 허리뼈가 붙는 것? 아니면 심각한 통증이 완화되는 것? 아니면 다시 혼자서 걷게 되는 것? 아니면 혼자서 걸을 뿐만 아니라 외출까지 가능한 것?
“2번 요추 방출성 압박골절” 엄마의 공식 진단명이다. 수술을 요하는 심각한 부상이지만 수술 자체가 “배로 들어가 뼈를 들어내고 등으로 들어가 나사를 박아야 하는”, 고로 전신마취를 요하는 대수술이고, 그나마 골다공증 때문에 뼈에 나사가 제대로 박힐지 알 수 없다는 의사 말에 우리는 수술을 포기했다.
시간이 가면서 뼈에 미세하게 금이 간 것들은 대충 붙었다지만 납작하게 찌그러지고 척추신경쪽으로 돌출된 뼈가 신경을 누르면서 발생하는 통증은 시간이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손상은 이미 구조적으로 발생했고 통증 역시 진통제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계속 입원해 있었던 것은 기초적인 직립능력, 최소한의 보행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소위 “재활치료”!
그런데 새삼 깨닫게 된 사실! 대학병원이든, 척추전문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엄마는 지난 4개월 동안 이 병원들을 전전했다 – 병원은, 일리치의 말처럼, ‘병원병’을 만드는 곳이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장기입원에 따르는 온갖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똥은 지리는데 또 오줌은 못 누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약을 추가하고 저 약을 뺐다. 하지만 이 약을 먹으면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그 약을 끊으면 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쥐똥만큼 드시던 밥조차 점점 못 드시게되고 그나마 쬐끔 붙었던 근육도 다시 빠졌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수시로 정신줄을 놓으면서, 마치 <오발탄>에서 “가자, 가자”를 외치는 어머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이제 가자”, “빨리 가자”를 되뇌시곤 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엄마를 병원에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집으로 모시자. 엄마는 나아서 퇴원한 게 아니었다.
영화 <오발탄>
3.
사실상 단독자 개인의 임상적 질환은 없다. 한 개인에게도 병은 육체(질병=병인)와 정신이 함께 작용해서 발현되는 것이고, 그것의 전개는 더 넓은 네트워크(환자-의사-가족...)속에서 진행된다.
엄마는 입원 초기 기저귀를 강력히 거부했다. 척추골절 환자이니 가급적 움직이지 않는 게 좋고, 그러려면 당분간 기저귀를 차는 게 좋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날 문병 오신 교회 권사님들이 거의 반 강제적으로 기저귀를 채웠다. 엄마의 자조와 한탄은 훨씬 심해졌다. 기저귀를 거부하고 육체적으로 데미지를 입는 것과 기저귀를 차고 심리적으로 데미지를 받는 것, 둘 중 무엇을 택하는 게 더 올바른 치료의 방향일까? 의사, 간호사, 간병사, 요양사의 대부분은 이런 판단을 종합적으로 하진 않는다.
한편 엄마가 입원하신 이후 난 엄청난 네트워크 속에서 엄청난 정보를 소통시켜야 했다. 의사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진단을 내렸고, 치료의 방향을 정하려면 그 정보를 엄마와 관련된 모든 사람 (가족, 친지 등)에게 알리고 의논하면서 결론을 수렴시켜야 했다. 모두는 선의를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쏟아내면서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음식을 해서 싸들고 가지 않는 날에도 하루에 백개씩 카톡을 해야 하는 재택근무가 끊이지 않았다. 피곤이 쌓이고 짜증이 났다. 오렌지와 당근을 함께 갈아 드리는 게 좋다고 말하는 막내 동생. 산삼 한 뿌리를 들고 와서 소화기능이 약해졌으니 생으로 드시게 하지 말고 잘게 잘라 죽을 쒀 드려보라는 둘째 동생. 근육이 빠졌으니 단백질을 별도로 공급하는 게 좋다는 외삼촌.... 그 모두가 웬수 같았다.
하지만 별 수 없다. 가급적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그리고 누구의 맘도 다치지 않게 잘 들어주고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이 네트워크 전체를 소통시키고 관리하는 것. 엄마를 돌본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일이었다.
4.
퇴원 후 가장 큰 문제는 엄마와 간병인 사이의 불화이다. 퇴원 후 엄마는 더 이상 간병인 말을 듣지 않는다. 우리는 2차 부상을 우려해 엄마에게 눈을 떼지 말고, 특히 화장실에서는 꼭 붙어 있어달라고 간병인에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엄마는 당신 말이 아니라 보호자 말을 따르는 간병인이 못마땅하다. 따라 오지 말라고 하고, 쳐다 보고 있지도 말라고 하고, 뭐든 혼자서 한다고 하고, 특히 화장실에서는 문을 꼭 닫고 곁을 주지 않는다. 밥을 다 흘리고 물을 엎지르면서도 나 혼자 먹을래...라고 떼를 부리는 세 살 짜리처럼 구신다. 급기야 이제는 간병인이 약을 드시자고 하면 약을 안 먹겠다고 하고,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면 밥을 안 먹겠다고 하신다. 이쯤 되면 뭐든지 거꾸로 하는 미운 일곱 살과 다를 게 없다. 결국 엄마를 달래고 어르는 것, 엄마 옆에 앉아서 일일이 반찬을 얹어 드리면서 조금이라도 더 식사를 하게 하는 것은, 간병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몫이 되었다.
사실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소변 처리를 혼자 하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싸인이니까. 우리가 엄마를 환자수납공간에서 빼 온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 아니었나? 문제는 엄마가 자신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얼마만큼 혼자 할 수 있는지 어느 때 간병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집으로 퇴원해서 멘탈도 잡고, 당분간이라도 24시간 간병인을 붙여 피지컬도 안정적으로 만들겠다는 바람은, 사실상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는 뒤늦은 깨달음. ㅠ)
부상 방지만 생각하면 엄마의 의지를 강제로라도 꺽어야 한다. 의지를 펼 수 없는 병원에 입원시키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게 아니라 엄마의 의지를 존중해주고 부상에 따른 고통 속에서라도 일상을 유지하길 바란다면 언제라도 2차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의지를 꺽고 육체적 안전을 택할 것인가? 의지를 좇고 육체적 부상을 감수할 것인가? 죽거나 나쁘거나! 더 좋은 선택은 없는 것 같다.
5.
난 엄마에게 구박받는 간병인 아줌마가 안쓰럽고, 간병인 아줌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의 거의 대부분을 내가 하는 것이 미안하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은 자주 서로에게 덕담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아주머니가 나한테 하는 덕담은, 내가 참 대단하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엄마한테 잘 한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이렇게 엄마한테 잘하니 나중에 후회가 없겠다고도 하고, 자손이 복을 받겠다고도 한다.
그런데 사실 간병인 아줌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난 정말 돌봄노동이 싫다. 내가 그걸 싫어한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깨달았다. 난 밥을 차릴 때마다 <시경>을 이런 식으로 엮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 그걸 못하는 게 화가 난다), 설거지를 하고 엄마 간식을 챙길 때마다 루쉰 글을 써야 한다는 초조감이 든다. (그러니 그걸 못하고 있어서 맘이 괴롭다) 난 엄마를 돌보는 하루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짜증 난다. 뿐만 아니다. 각자 사는 게 바빠서 실제 나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동생들에게 수시로 원한의 감정이 들고 심지어 어떤 때는 그들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까,를 골똘히 생각한다. ㅋ. 심지어 최근에는 자기연민– 평상시에 내가 거의 하지 않는 일.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는 짓 –에 빠져 “왜 나는, 평생, 이렇게 고달플까?”라는 신세한탄을 한다.
니체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지고, 장자를 가르치면서 지식/문자에 대한 열망을 멈추지 못한다. <천의 고원>의 가장 아름다운 챕처 ‘리토르넬로’ 장을 읽으면서도 삶의 생성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난.... 점점.......... 후져지는............... 모양이다. 쩝!
이 간병부르스는, 어쩌면 나에겐 숨통? 혹은 어쩌면 더 이상 후져지지 말자는 다짐?
어쨌든, 늙어가는 내가 더 늙은 엄마를 간병한다. 이 미션 임파서블을 잘 수행할 수 있기를!
아스퍼거는 귀여워
모로
2024.04.25 |
조회
144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272
현민의 독국유학기
현민
2024.04.17 |
조회
203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가마솥
2024.04.15 |
조회
182
일상명상
요요
2024.04.14 |
조회
200
연재합시다!
새털의 연재본능, 누가 말릴 수 있으랴!ㅋ
나날이 늘어나는 간병인들과 그들이 주고받는 온갖 쓸모있는 정보와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의 흐름을 보니
아마도 우리는 인문학 공동체 말고도 간병공동체, 혹은 간병인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힘드실 거 같은데 그래도 힘 내셔요..
진정, 부르쓰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힘내세요!!
병원이 병을 만든다의 현실버전... 쏙쏙 들어옵니다. 건강 챙기셔요 선생님도..
간병과 부르스의 결합이라니요..선생님의 육체는 간병에 지쳐있을지라도 필력은 여전히 쌩쌩하다는..
고단한 간병도 선생님의 글로 풀어내어 읽으니, 정말 부르스 처럼 느껴져요.
짜증나고, 힘들텐데 내색하지 않고 다 해내시는 선생님..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