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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특강-한국장애인들의 투쟁 형상은 어디서왔는가 후기(3)

정건화
2023-08-1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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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수라>를 보고 기회가 닿아 새만금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매년 6박 7일 동안 새만금 바닷길을 걷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요. 여러 핑계로 성인이 된 이후에는 발길을 끊었던 저는 <수라>를 계기로 10년 만에 새만금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잊고 지내는 동안에도 바닷길 걷기 프로그램은 이어져왔습니다. 새만금 바닷길 걷기 멤버들은 벌써 20년째, 이제는 갈대밭이 되어버린 바닷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지요.

 

갯벌에서 염습지로, 염습지에서 이제는 고라니와 멧돼지가 사는 마른 땅으로 변해가고 있는 새만금을 걸으며 저는 내내 궁금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걷기를 계속하는 걸까? 바닷길 걷기 멤버들 중에는 비관적인 말을 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해수유통이 일부분 이뤄지고 있지만 그 또한 궁여지책일 뿐이고, 군산 신공항도 아마 막기 어려울 것이고, 갯벌을 되돌리는 건 이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요. 그럼 왜 걷는가? 돌아오는 대답은 <수라>에 나오는 오동필 단장의 말과 비슷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본 죄. 생합과 망둥어와 도요새와 저어새와 농게와 이제는 그곳을 떠나버린 어민들과 연루되어버린 죄. 어떤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는 일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게 여겨졌습니다. 제가 만나고 온 분들만 해도 눈앞의 희망이나 명백한 논리적 정당성을 붙들지 않고도 20년째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거니까요.

 

고병권샘께서 들려주신 장애운동 이야기와 제가 새만금에서 보고 온 것 사이에 무언가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애운동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저로서는 강의 내용 대부분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는데요. 고병권샘은 전장연의 투쟁이 ‘거대한 장례식’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애인들의 투쟁을 한 맺힌 채 세상을 떠난 열사들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다는 말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떤 죽음이 한 사회의 억압적 구조에 의한 것일 때, 그리고 그 죽음을 자기 자신과 분리할 수 없을 때 애도는 투쟁이 되고 투쟁은 애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고병권샘은 산 자들이 죽은 자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산 자들에게 ‘곁을 내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애도될 수 없는 죽음의 증인이 된다는 게 그런 것이 아닐까 상상해보았습니다.

 

여전히 제게는 연루된다는 것, 증인이 된다는 것, 응답한다는 것이 수수께끼 같기만 합니다. 어떤 죽음을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죽음에 응답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어쨌든 나름대로 이해하고자 머리를 굴려보니, 어떤 죽음의 증인이 된다는 건 상실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고병권샘은 장애운동의 열사가 고결한 삶을 살다 간 존재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들의 투쟁은 대의를 위한 헌신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고, 이들이 어긴 법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도로교통법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범적인 삶의 규범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을 둘러싼 차별적인 삶의 조건을 노출시켰습니다. 열사들의 죽음은 어떤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고통이 다른 이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음을, 자신들이 누군가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이 피부나 자아의 경계선을 넘어 다른 이들과(산 자이든 망자이든)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동안 저는 세련된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만금 같은 곳에서 제가 접한 말들은 올바르고 아름답지만 너무 투박해보였습니다. 그래서 좀더 날카롭고 힘 있고 지적인 언어를 갖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수라>를 보고, 이번에 고병권샘 강의를 듣고, 또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하면서 나름의 균열을 겪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앎을 필요로 하는지, 언어와 앎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투박하거나 나이브하다고 생각했던 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단지 저에게 그 목소리들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했듯, 제게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로 가득한 강의였습니다. 후기에 담지 못했지만, 한국 장애운동의 역사, 포함-통합의 정치에서 분리-차이의 정치로 나아가는 운동의 흐름, 자립과 의존에 대한 새로운 관점, 그리고 문탁 네트워크의 연대활동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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