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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특강-한국장애인들의 투쟁 형상은 어디서왔는가 후기

석운동
2023-08-1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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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네거리 밑으로 조금 걸어서 내려가면 조그마한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낮은 두 계단을 올라 들어가는 식당은 주인 한 명이 정성스레 만든 한 그릇의 정갈한 음식을 팔고, 10명 남짓 손님을 받는 정말 조그만 식당입니다. 저는 공간 디자이너입니다. 이 식당은 늘 제가 자랑하는, 제가 디자인한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매일 출근길 그 식당 앞을 지납니다. 하루는 휠체어를 타고 식당 앞을 지나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식당이 영업 중인 시간도 아니었고, 식당의 불이 꺼져있는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저 무심히 그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호등에 걸려 차 안에 앉아 본 그 광경 속에서, 내가 ‘낮다’고 생각해왔던 내가 만든 계단이 너무나도 높아 보였습니다. 내가 ‘이 공간에서 뽑을 수 있는 최대한의 넓이’라고 생각했던 식당의 복도가, 그보다 좁을 수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가게를 만드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였던 사려 깊은 가게 주인이 던진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휠체어도 들어올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난 그것을 만들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댔습니다. 길게 풀어서 설명했지만, 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꽤 많은 불가능한 공간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고병권 선생님이 강의 중 말씀하신 고무장갑, 화인과 같았던 따귀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오늘 아침에도 마주한 그 식당을 떠올렸습니다. 주로 공간과 관련한 주제로 공부를 하는 <짓기와 거주하기 세미나>에서 장애학을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은 계기가 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오늘 강의는 요청과 응답에 대한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완결될 수 없는 죽음의 형식, 요청하는 죽음과 응답하는 투쟁, 그리고 그것과 분리될 수 없는 삶들에 대한 이야기. 뉴스 속에서 보아온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전장연의 어쩌면 무식해 보이는 형상이 어떤 요청을 대리한다는 생각, 어떤 응답이라는 생각이 지금까지의 화면들을 다른 색깔,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합니다.

 

나는 어떤 요청들 안에 있었고, 어떤 응답을 해왔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무조건적인 반성보다는 할 수 없었던 것들과 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봅니다. 다음엔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장애해방열사들의 요청하는 죽음은, 늦은 응답이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다만 이 수많은 투쟁과 삶과 죽음들이 어떤 요청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더 읽고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 돌아오는 그 식당의 계단 같은 것들이 내 삶에서 더 많아지지 않도록 해보고 싶다고 또 다짐하며..

 

정말 오랜만에 고병권 선생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5
  • 2023-08-11 23:40

    🙂❤️

  • 2023-08-12 08:10

    강의 후 어떤 친구가 질문했듯이 장애해방운동의 형상을 저를 포함한 많은 비장애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이 사회 소수약자들의 투쟁은 대부분 장례투쟁인 경우가 많고,
    저는 그에 대해 알듯모를듯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생각거리가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망자들이 산자의 투쟁에 개입하는 죽음의 요청과 응답하는 투쟁, '애도와 투쟁의 결합'으로서의 운동형상.
    사실 애도와 투쟁의 결합은 너무 힘든 운동형상이라 마음도 몸도 무겁긴 합니다.ㅠㅠ

    권리중심일자리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노동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적용하는 여러가지 사회적 척도에 대해서도 제대로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특히 자립! 이건 마을경제 공부할 때도 계속 문제(?)였는데 '잘 의존하는 자율적 삶'이라는 고병권샘의 정의가 참 마음에 듭니다.^^
    장애해방운동에 새로운 젊은이들이 합류하고 있다니 참 감사하네요.

    역시나 엄청 빠른 속도의, 그럼에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고병권샘 강의, 오랫만에 너무 반갑고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 2023-08-12 08:11

    감사한 강의에 연대기금 보냅니다 ㅋㅋㅋ

    • 2023-08-12 09:04

      😁

  • 2023-08-12 15:39

    오랜만에 듣는 고병권샘 강의도 석운동님 후기도,, 인디언님의 기금도 다 참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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