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쉿잡> 5장~7장 후기

띠우
2023-06-1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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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쉿잡> 5~7장 후기

 

구체적인 실례들을 많이 들고 있어서 읽기에 좀 수월하려니 했더니만, 역시나 그레이버의 깊이있는 사유는 매 장마다 빠지지 않고 나왔다. 아뿔싸 싶으면서도 꼼꼼하게 읽으면 더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오갔다. 지난 시간 4장까지 그레이버는 불쉿 직업이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을 짚어주었다면 5장에서는 왜 우리삶에서 실제로는 경제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불쉿 직업이 증가하는지를 파악한다. 우선 저자는 불쉿 직업의 증가원인을 서비스업에 두는 많은 이론들이 사실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동시대 서비스업의 비중이 실제로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며, 오히려 금융산업의 팽창이야말로 이 모든 것의 원인임을 밝히고 있다. 보험, 부동산,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중간관리자의 증식이 바로 불쉿 직업의 증가원인이며, 더불어 그것은 경영봉건제의 확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런 사이에 차츰 경제가 생산적 노동이 아닌 비생산적 노동을 중심으로 하면서, 자본주의가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식인 지대추출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6장에서 다들 꽂혔던 내용은 ‘가치’와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세상에 절대적 가치란 없으며, 이에 따라 가치는 우리 사이에서 항상 논란을 낳는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고려하는 요소가 다 다르고, 수량화될 수 없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레이버는 수량화되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가치’, 그 외 우리가 수량화할 수 없고 각자 고유하며 환원불가능한 것으로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것들을 ‘가치들’이라고 한다.

 

공부하고 싶지만, 공부하려고 해도 필요한 것이 돈이다. 세미나비가 땅에서 솟아나지는 않으니까. 한 가정의 경제규모는 계획할 수 있지만 그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들이 생겨난다.  그럼 우리는 그것이 너무너무 하고 싶더라도 당장은 스스로가 그것을 할 경제력이 있는가를 떠올리게 된다. 경제력이 없음으로 인해 갖는 부정적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설명하기 어려웠다면, 역사적 맥락에서 가치와 가치들의 구분이 생겨남으로써 주입된 감정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도서관 봉사활동을 둘러싼 고민들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다. 가치들을 추구하며 활동을 시작했다가 가치 중심의 관계맺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괴로워지면서 그 일 자체를 피하게 된다. 사회적 가치는 형성되지도 않고, 봉사활동이 쉿잡으로 자리매겨지면서 적당한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갈등의 요소와 연결되는 내용이다. 가치와 가치들의 반비례관계에 대한 정리는 현재의 갈등많은 삶을 정리해주어서 좋았다. 동시에 돌봄노동의 가치들이 갖는 중요성도 크게 와닿았다.

 

이번 메모에서는 각자의 실제적인 고민들이 오갔다. 직장에서의 일이나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회적 활동에서 벌어지는 부정적 사례들을 마주한 것이다. 이럴 때면 참 고민이 된다. 공부는 왜 하나, 싶어지고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왜? 나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심정으로 이어지면서 모든 것들이 순간 멈춰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돈도 많이 벌지 못하면서 월든 일을 하고 집은 더럽더라도 파지사유 청소를 하는 나 역시 비슷하게 듣는 말들이다. 자원봉사하러 가는 거네... 그래 그렇게 좋은 거 하면서 살면 좋지. 그런데 사회가 그런 줄 알아? 너무나 나이브하네. 이상주의자네...등등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도 가치와 가치들 사이의 애매모호한 경계는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마음을 내서 사회적 가치나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활동 등을 회사에서 하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 말고 월급이나 수당을 잘 챙겨주기를 원한다. 살기 위해서는 우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도의 돈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상이 되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돌봄보다는 소비욕망을 키워가며 모든 것을 수량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소통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를 보여준다.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이 왜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사실 생각하지 않는 면도 있다. 하나하나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지만, 전체 사회가 맞물려 있는 만큼 개인이 극복해나가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기에 시시때때로 좌절감을 맞는다. 아, 어쩌란 말인가ㅠㅠ

 

집에 와서 이 말이 떠올랐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경영자 측면에서 경영에 해가 되지 않을 만큼이 된다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삶을 위한 수행이라고 생각해보기’다. 7장에서 그레이버는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이 이렇게 형성된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보며, 문제의 해결 또한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 정치적 해법은 인간 본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정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주류든 비주류든 오늘날의 모든 경제학에서 한발이라도 나아가는 철학적 인식이 너무나 필요한 시대다. 아울러 돌봄노동이 일과 직업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인식해야만 한다.

 

다음 시간에는 <가능성들>을 읽기 시작한다. 발제는 유님이고 1,2장을 읽고 메모를 올리면 된다. 나는 이 책들을 읽는 것도, 그러면서 이 세상과 어우러져 사는 것도 어렵다(저는 에코프로젝트 책들이 여러모로 너무나 어렵고 어렵습니다). 또한 함께 하는 선생님들의 삶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반성도 되고, 고맙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들).  그럼에도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치들에 대해 주목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스승으로 이 세미나를 해가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댓글 1
  • 2023-06-1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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