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p111-112

건달바
2014-09-26 22:59
624

p111-112

さんけん[散見]산견; 여기저기 조금씩 보임.

おおざっぱ[おおざっぱ·大雑把]

1. 대략적임; 조잡함.

2.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대목잡는 모양대충; 얼추.

3. 대범함.

へめぐる[経巡る·経回る]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 편력(遍歷)하다.

りっしょう[立証]

じょうよ[剰余]잉여(剩餘); 여분.

せいち[精緻]정치; 정교하고 치밀함.

そうごしんとう[相互浸透]

ぬけおち[()落ち]누락(漏落); 빠짐.

もちだす[()出す]

1. 가지고[들고] 나오다반출하다; 끌어내다;훔치다.

2. 말을 꺼내다; 제기(제안)하다.

3. 갖기 시자하다.

4. (부족한 비용을) 자기가 부담하다.

ぬける[抜ける]빠지다없어지다뽑아지다.

こうせい[公正]

けつじょ[欠如]

はいじょ[排除]

ばらまく[散蒔く·散播く]

1. 뿌리다; 퍼뜨리다; 여기저기 뿌리다.

2. (돈 등을 여러 사람에게)마구 나누어 주다. 뿌리다

らちがい[らち外·埒外]울타리 밖; 허용일정 범위[한계]의 밖; 테 밖.


(해석)

 그러나, 국내외 불문하고 여기저기 보여지는, 시니피에는 요컨대 이미지이다, 라고 하는 이해는 너무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이해는, 소쉬르와 라캉이 함께 시니피에의 장소에 「나무의 그림」을 그려 보여줬던 것 정도밖에 근거가 없다. 필자가 아는 한에서. 그것은 적어도 소쉬르의 경우에는 「개념내용」이며, 그 그림 자체는 아니다. 라캉의 경우는 이미 논해왔다. 반복하지 않겠다.

  좀 더 대략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봐왔던 저 글이 끝날 때에 떨어지는 문자가 시니피에이고, 거기에서 탄생하는 그 떨어진 구멍의 주변을 두루 돌아다니는 것을 강제되어지는 무언가가 주체이다, 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우리가 라캉 자신으로부터 끌어내 입증한대로, 이 문자는 대상a이고, 구멍의 주변을 도는 것은 향락, 잉여향락라고 불리는 무언가이다. 여기에는 개념의 정치(정교하고 치밀함)화가 있다라고 하는 것보다도, 우리가 최초에 말했던 것 같은 개념의 상호침투, 불균질성이 있다라고 하는 쪽이 정확할 것이다. 여기서는 시니피에와 주체와 대상a가 침투해버리고 있다고. 또, 여기에는 라캉이 시대에 따라서 자신을 갱신했던 역동이 있다라고 하는 것 보다도, 단지 라캉은 항상 같은「누락」항상 같은「구멍」을 꺼내어 설명하는 버릇이 없어지지않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편이 공정할 것이다. 항상 구멍의 논리, 항상 결여의 논리, 항상 배제의 논리인 것이다. 시니피에이든,대상a이든, 주체이든, 향락이든. 실제, 나중에 라캉은, 상징계에도 상상계에도 현실계에도 구멍을 마구 뿌리기도 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도 아무래도 좋다. 우리의 논리의 울타리 밖의 것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진실의 구멍」이라고 부르는 무언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좋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캉이 진실로 알아차려야할 부분는 거기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을 말하기는 아직 빠르다. 계속하자.

댓글 6
  • 2014-09-27 16:26

    106~107쪽 단어입니다~

  • 2014-09-28 13:47

    야전과 영원 110~111(요요)

    こうぞう [構造]

    あくなき[飽く無き] [연어](連体詞적으로) 만족할[물릴] 줄 모르는.

    だく[抱く] 1. (팔·가슴에) 안다.(=かかえる) 2. 전하여, 마음속에 품다. 3. 이성과 동침하다.

    うねり 1.물결침; 넘실거림. 2.높게 이는 파도; 놀.

    よど[淀·澱] 물이 흐르지 않고 괸 곳; 물구덩이; 웅덩이.(=よどみ)

    たまさか[偶さか] 1. 드물게; 어쩌다.(=まれ) 2. 우연히; 뜻하지 않게.

    せんこう [閃光] 섬광

    ひょうしょう [表象]

    さいさん [再三] 재삼; 두 번 세 번; 여러 번.

    じゅんきょ [準拠]

    じげん [次元]

    そうさ [操作]

    いっせん[一閃] 일섬; 한번 번쩍임.

    すいじゃく [衰弱]

    しょうしつ [消失]

    たえず[絶えず]

    たえま[絶え間] [아어(雅語)]끊어진 사이; 짬; 틈새.(=切れ間)

    たえまない[絶え間無い] 끊임없다.[문어형][ク]たえまな-し

    ものする[ものする·物する] 무엇인가를 하다; 행하다; 특히, 문장을 쓰다; 식사(食事)하다.

    [(주 191)

    ねんのため[念のため·念の為] [연어]다짐하기 위해; 더욱 확실히 다짐해 두기 위해.]

    わいきょく [歪曲]

    つくす [尽(く)す] 1.다하다. 2.있는 대로 다하다. 3.(남을 위해) 애쓰다; 진력하다.

    そご [齟齬] 서어; 뜻이 맞지 않음; (일이) 어긋남.

    かいまみ[かいま見·垣間見] 틈 사이로 슬쩍 엿봄.

    はなす [放す] 1.놓다.(↔つかむ) 2.풀어놓다; 놓아주다. 3.(국물 따위에) 넣다.

    じょじゅつ [叙述]

    リテラチュール((프랑스) littérature, 리테라튀르) ⇒リテラチャー。

    littérature[liteʀatyːʀ]1.문학 2.허구, 인위적인 것 3.문학사

    확인하면서 나아가자. 시니피앙은 연쇄하고, 유동하고, 환유적인 구조에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품고 계속 나아간다. 그 흐름이 물결치고 멈추는 것이 초래하는 우연한 섬광이 효과로서 시니피에를 생산한다. 그렇다. 기호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표상하는」것과 대조적으로, 라캉은 시니피앙을 「다른 시니피앙에 대하여 (혹은 「다른 시니피앙의 대신에(pour)」), 주체를 표상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고 되풀이해서 서술하였다. 따라서 시니피앙은 시니피에를 표상하지 않는다. 주체를 표상한다. 더구나 「다른 시니피앙」이라는 「준거의 차원」을 향하여 표상한다. 마치 라캉의 개념조작이 한 번 번득이면 시니피에는 쇠약해지고, 소실되어 가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할 때까지 반복해서 라캉은 말한다. 시니피에는 「흘러 나가고」 끊임없이 시니피앙의 아래로 「끊임없이 미끄러져 들어가고」있다고. 결국 시니피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인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Jean-François Lyotard]가 일찍이 명쾌하게 라캉론을 쓰고, 그 안에서 시니피에를 결국 주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모르지도 않고, 그것이 합당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주 191) 시니피앙, 그리고 그 연쇄의 효과야말로 주체라고 우리도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결국 가령 라캉이 『불안』의 세미나에서 「시니피앙의 효과는 주체의 내부로, 본질적으로 시니피에의 차원을 출현시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무언가 왜곡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어긋남이 엿보인다. 여기에서 결국 주체와 시니피에가 다른 것처럼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것으로 좋다. 어긋남은 어긋남대로 놓아두자. 다름 아닌 라캉 자신이 이와 같은 어긋남을 원했기 때문에. 시니피에에 대해서는 그 스스로 「알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시니피에, 즉 시니피앙의 연쇄와 주체가 효과로서 만드는 무언가, 그것은 상상적인 환상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술도 있고, 가령 만년의 「리테라튀르」를 읽으면 뭔가 현실계에도 관계하는 것 같은 서술도 보인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서는 현실계에 대해서 논할 때에 간략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자.

    [주 191: 확실히 하기 위해 덧붙여 둔다. 나중에 서술하는 것 같이 시니피앙의 연쇄 안에서 「소실」해 간다는 특성을 라캉적 주체와 시니피에는 공유하고 있고, 그 유사성은 그렇게 간단하게 끊어버려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시니피에가 주체라고 하는 이해가 완전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 2014-09-29 01:52

    p107-108

     

    もって 미리

    指摘(してき)

    隠喩(いんゆ)

    () 뜨다. 떠오르다.

    定式化(ていしきか)

    成立(せいりつ)

    (かた)견고하다. 단단하다.

    (むす)() 결부되다

    ()(はな) 떼어놓다. 분리하다.

    形成物(けいせいぶつ)

    換喩(かんゆ)  수사학의 수사학 기법 중 하나로, 개념의 인접 또는 근접에 따라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여 사용, 비유의 일종이다. 또한 그렇게 사용되는 단어 자체도 말한다. 예를 들면, 월 스트리트는 뉴욕의 거리지만, 경제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확장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根本(こんぽん)

    構造(こうぞう)

    派生物(はせいぶつ)

    二次的(にじてき)

    合言葉(あいことば) 암호, 군호, 변말.

    定礎(ていそ)

    克明(こくめい)

    (よう)するに 요컨대, 결국

    居場所(いばしょ) 거처, 자리

    (さだ)める 안정시키다. 자리잡히게 하다.

    (がた) (動詞連用形에 붙어서 形容詞를 만듦) 하기 어렵다; (좀처럼) 할 수 없다.(-やすい)

    (さだ)(がた)

    齟齬(そご) 어긋남, 저어

    軋轢(あつれき) 알력

    (かか)()부둥켜안다. 껴안다.

    想像界(そうぞうかい)

    領域(りょういき)

    密輸(みつゆ) 밀수

    (うたが)의심, 의문

    ()てしない 한없다. 끝없다.

    熱狂(ねっきょう)

    (もたら) 가져가다; 가져오다; 초래하다.

    そぐう[] (보통, 否定형으로) 어울리다; 걸맞다.

    よこぼう[横棒] 가로대; 가로장.

    ()()える 타고넘다. 극복하다.

    廃棄(はいき) 폐기

    (あた)える 주다. 수여하다.

    []

    優位(ゆうい)

     

     

    p107-108 (수정)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미리 지적해 둘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다. 은유, 시니피앙 연쇄의 시공으로서의 2의 상징계의 이 단계 논지에서, 떠오른뭔가라는 것이다. 물론, 은유의 정식화는 2의 상징계라고 우리가 불러온 것의 성립에 단단히 결부되어 있고 분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라캉은 무의식의 형성물세미나 안에서, 은유는 환유라는 근본적인 구조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마치 은유가 환유의 파생물, 환유에 대한 이차적인 것인듯 한 발언을 하고 있으며, 정신병세미나에서는 환유가 암호라고 한다면, 은유는 정초하는 빠롤이다, 라고 극명하게 말하고 있다. 요컨대, 은유는 2의 상징계안 어디엔가 좀처럼 자리 잡기 어려워서, 거기서 어긋남이나 알력을 초래하는 무엇인가를 껴안아 버리고 말았다. 은유란 1의 상징계상상계등의 다른 영역에서, 말하자면 밀수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있는 것이다. 시니피앙 연쇄의 끝없는 열광 가져오는 환유와는 다르게, 은유는 제2의 상징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를 지니고 있다. 은유에 의한 이 가로선을 극복하기가 가로선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 극복이 환유에 영향을 주는 것 따위는 아닌 듯이 쓰여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서, 리얼리즘이, 그리고 우리의 욕망의 궤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상징계는 환유가 우위인 세계라고 이 시점에는 말해두자(187). 은유에 관해서는 이 장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논하게 될 것이다.

     

    (187) 물론, 부성은유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논하는 것도 뒤로 미루자.

  • 2014-10-02 00:18

    p.106-107 해석입니다.

  • 2014-10-03 00:25

    108-109 해석(인디언)

    그런데, 저 <쿠션의 끝맺음, 쁘앵 드 카피통>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까.

    그 무언가 독자나 청중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꺼내온 것 같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거는 것>, 그 무한의 미끄러짐을 그치는 것이라는 저 <끝맺음>에 대하여.

    그러나 필자에게는 이 개념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라캉 자신도, 라캉파의 사람들도, 라캉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결국 이 개념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유동을 멈추는 것이라고 해설하거나 혹은 <오이디푸스>와의 관련을 암시하는 라캉을 추종하여 이것은 아버지의 기능이라고 말하는 정도의 것이고, 결국은 대단한 발전은 기대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라캉 자신이 어디에선가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있는 핀고정, 쁘앵 드 카피통은 신화적인 것일 뿐입니다. 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의미작용을 하나의 시니피앙에 핀고정하는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았듯이 그 자신, 후에 시니피에는 이해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곤경에 빠졌고, 그것(시니피에)과 시니피앙을 고정하는 것이 있다 라고 말해도 곤란하다.

    다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신화적>인 것이다 라고 라캉 자신이 말하고 있다는 것은 머리 속에 넣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후에 <신화>의 전문가에 대해서 우리들은 제 2부에서 길게 논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으므로.

  • 2014-10-06 00:57

    단어편집 106~112

    지난주 반장님 대신 편집한 단어...올립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487
p.121~p.123 단어 (3)
썰매 | 2014.10.04 | 조회 401
썰매 2014.10.04 401
486
[해석]야전과 영원 2장 11절 교정본 올려요.
요요 | 2014.09.28 | 조회 329
요요 2014.09.28 329
485
단어 p111-112 (6)
건달바 | 2014.09.26 | 조회 624
건달바 2014.09.26 624
484
2장11절 해석모음 (2)
요요 | 2014.09.24 | 조회 540
요요 2014.09.24 540
483
[해석]야전과 영원 제 1부 제 2장 제10절(p.93-p.98) (2)
썰매 | 2014.09.21 | 조회 352
썰매 2014.09.21 352
482
단어 103~104 (3)
바람~ | 2014.09.21 | 조회 643
바람~ 2014.09.21 643
481
p100-102 단어 (5)
둥글레 | 2014.09.11 | 조회 552
둥글레 2014.09.11 552
480
[해석]야전과 영원 제10절 전반부(86-93) (1)
뚜버기 | 2014.09.10 | 조회 445
뚜버기 2014.09.10 445
479
p91-92 해석 (3)
둥글레 | 2014.09.09 | 조회 455
둥글레 2014.09.09 455
478
야전과 영원 p.95~97 단어 (4)
썰매 | 2014.08.30 | 조회 838
썰매 2014.08.30 838
477
<해석> 1부 2장 9절(p77-86): 베르붐, 로고스, 다바르-은밀한 전회, 제2의 상징계로 (6)
둥글레 | 2014.08.23 | 조회 855
둥글레 2014.08.23 855
476
p91-92 단어 (1)
둥글레 | 2014.08.21 | 조회 598
둥글레 2014.08.21 59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