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4장 첫번째 후기

띠우
2022-08-12 00:10
220

4장 1923년 11월 20일 언어학의 기본전제들(p147~p163까지 읽음) 후기라기 보다는 요약정리가 되겠네요^^:;

 

지난주 읽은 내용은 내용과 표현의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이중분절의 세 가지 유형 중에서 세 번째 내용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을 다시 정리해보면, 첫 번째는 분자적인 것과 몰적인 것, 크기 내지 질서 사이의 실재적-형식적 구별이다. 두 번째는 유기체와 같은 지층에서 발생하는 이중분절로 표현이 내용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층을 획득할 때 나타나는 실재적-실재적 구별이다. 세 번째는 두 개의 층위가 본질적으로 다른 지층을 형성하는 경우 나타나는 실재적-본질적 구별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신체적인 것과 비신체적인 것의 실재적 구별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내용과 표현은 하나의 지층 안에서 발생하는 이중분절이었지만, 이 경우엔 본성을 달리하는 두 개의 지층으로 명확히 분리된다. 언어와 기호의 문제는 신체적인 것의 지층에서 독립한 표현의 지층에 관련된 것이다. 이를 언표행위의 배치라고 한다. 정리하면, 비신체적인 것은 언표행위의 배치에, 신체적인 것은 기계적 배치에 해당되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의 표현형식이 ‘유전학적’인 것에 가깝다면, 세 번째 유형은 ‘언어적인 것’과 결부된다.

 

4장의 제목은 ‘1923년 11월 20일-언어학의 기본전제들’이다. 그렇다면 1923년 11월 20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14년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마르크화를 마구 찍어낸다. 1918년 독인은 패전국이 되면서 파산상태에 이르렀고, 계속해서 화폐를 발행했기에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 1923년 11월 20일, 예전의 독일 화폐였던 라이히스마르크는 더 이상 화폐가 아니라고 선언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통화 렌텐마르크가 도입된다. 4장의 제목은 독일에서 화폐개혁이 일어난 날을 의미한다. 이전에 사용되던 화폐가 아닌 렌텐마르크 사용을 ‘선언’함으로써 화폐자체의 변화가 아닌 가치의 변화를 불러온다. 즉 4장은 이 ‘선언’에 해당하는 ‘언표행위’를 다루게 된다.

 

들뢰즈가타리는 4장에서 기존 언어학에서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네 가지를 차례차례 들면서 이를 비판하고 있다.

 

언어학의 네 가지 공준 (혹은 가설, 나아가 오류)

  1. 언어는 정보적이고 소통적이리라
  2. ‘외적인’ 어떤 요소에 호소하지 않는, 언어라는 추상적 기계가 존재하리라
  3. 언어를 동질적인 체계로 정의할 수 있게 해 줄 보편성과 항성성이 존재하리라
  4. 다수적인 혹은 표준적인 언어 아래에서만 언어는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으리라

 

먼저 들뢰즈/가타리는 언어활동의 본질을 정보전달이나 의사소통이 아니라 명령과 관계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알려주거나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을 사용하거나 그 말에 반응하는 활동을 훈육하고 훈련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말한다. 언어활동을 삶의 형식이나 활동, 실천의 문제로 보는 화용론의 문제의식과 연결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구조주의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달리 들뢰즈/가타리는 언표를 전면에 내세운다. 언표는 기표나 랑그와 다르다. 예를 들어 “寒い”와 “추워”라는 말은 전혀 다른 기표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혀 다른 두 개의 랑그를 따라 진술되었지만, 하나의 동일한 언표이다. 의미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기의처럼 보이지만 기의가 기표와 짝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말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의 또한 아니다. 이는 언표행위의 배치에 따라 “문 닫아”를 의미할 수도, “썰렁해”를 의미할 수도 있다. 모두 특정한 행동이나 활동과 결부된 문장이다. 언표가 기본단위라고 할 때, 그것이 언어보다는 언어활동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가타리는 ‘언표’를 언어활동에서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 일종의 명령이 담겨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언표라는 단위를 부각시키는 것은 기표를 부각시켰던 기존의 언어학이나 기호학적 경향을 겨냥한 것이라고 본다. 앞서 “추워”를 예로 이어가면, 이는 언표행위의 배치에 따라서 “문 닫아” 또는 “썰렁하니 그만둬”라는 명령어를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때 “추워”라는 말은 ‘간접화법’이며, 이때 잉여라는 것이 이러한 명령어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령어를 내포하는 언표나 언표행위는 그 자체로 비신체적인 것이고 표현의 층위를 형성한다. “추워”에 대한 답을 누군가 한다고 생각해보자. 답하는 사람이 “나도 추워” 혹은 “이 옷 입어”라고 하는 경우 각각 다른 전개를 가져온다. 전자의 대답은 여전히 비신체적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신체적 변화를 불러온다. 여기서 비신체적 변환으로써 언표나 언표행위가 신체적 변환을 일으키고 그것을 교차한다. 그 자체론 비신체적 변환이지만 신체적 변환을 야기하는 것은 언표에 실려 전달되는 잉여성이다. 이러한 명령어는 순간적이다. 비신체적 변환은 그 순간성에 의해 변환을 표현하는 언표와 변환이 야기하는 효과의 동시성에 의해 확인된다. 누군가를 기소하게 한 범죄가 선고되는 순간 일어나는 형의 집행에 의해 신체를 변용시킨다는 예로 이해할 수 있다.

 

댓글 1
  • 2022-08-12 08:40

    후기가 좋으니 개념이 더 잘 들어오네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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