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기금 : 441-910008-41705 (하나은행) 정성미
문탁에서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공부와 자립을 위한 복주머니입니다. 청년들의 활동과 장학금 그리고 기본소득을 지원합니다.

연대기금 : 352-0621-1403-73 (농협) 권성희

좋은 삶을 위한 인간, 비인간의 분투에 공감하고 배우며 지원하는 일에 쓰입니다. 새로운 연대활동 제안과 참여를 언제나 환영합니다.

길위기금이야기_직장인이 쏜다~

기린
2024-01-23 20:54
321

1.지영님의 쾌척

 

공동체에서 1월은 제법 한가한 때다. 주제를 잡고 1년을 공부하는 기획세미나가 없는 일명‘셈한기’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물밑에서는 친구가 올해 무슨 공부를 하는지 살피는가 하면, 같이 공부하자고 꼬드길 친구를 면밀히 찾는 일명 ‘스토브리그’ 기간이기도 하다. 2월 마지막 주에 개강하는 나이듦연구소_개념탐구학교는 드물게 정원 마감을 하고 대기자를 받는 시절을 누리는 중이다. 연구소스텝인 나는 탐구학교 반장으로 내정된 지영님에게 톡을 넣었다. 지영님은 2년간 <나이듦과 자기서사>에서 공부한 구력으로 올해 개념학교에서 푸코와 버틀러의 개념들을 공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영님^^ 개념탐구학교 반장 감투 쓴 소감이 어떠세요? 기획세미나 반장을 맡으면 회비 50% 감면 혜택이 있답니다, 회비 반 돌려줄 계좌 번호 좀 알려 주세요.”

“ㅎㅎㅎ 그게 감투인가요? 회비도 감면해주는군요 할 일이 많은가요? 몰랐어요. 저는 직장인이라 감면 혜택을 받지 않아도 되니, 기금에 내고 싶어요, 길위기금인가 있던 거 같은데요.”

“지영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네요, 올해 공동체에서 하는 공부에 접속한 청년들도 늘었던데, 거기 내 주시면 길위기금팀이 어깨춤을 절로 추겠는데요.”

그리하여 지영님은 개념탐구 학교 1년 회비 중 절반을 길위기금에 쾌척하고, 나이든 반장 노릇의 부담(ㅋ)을 안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총총히 톡을 떠났다. 그와 나눈 톡 끝에 ‘직장인이라’ 가 잊었던 어떤 기억을 불러왔다.

 

 

2.별일 없이 살았다

 

공동체 안에서 밥도 벌고 공부도 하겠다고 나선 이후, 그 뜻은 좀처럼 성사되지 못했다. 밥벌이로 기획한 일들이 영 시원찮은 걸 본 스승님들이 장학금을 출연(出捐)해 주셨다. 우샘과 문탁샘이 이문서당과 학이당 튜터비로 받은 금액을 일부 떼어서 친구와 나에게 주신 장학금이었다. 공동체에 공공연히 알린 것도 아니고, 당시 반장 노릇을 했던 나에게 매달 지급할 수 있도록 1년 치를 한꺼번에 주셨다. 2년을 꼬박 그렇게 두 스승님이 챙겨주신 장학금으로 밥도 먹고 책도 사보고 가끔 술도 사 마시는데 보탰다. 그 사이 무진장이 꾸려지면서 거기서도 살림살이를 보살펴 줘서 별일 없이 살았다. 공동체 안에서 이렇게 암암리에 또는 공공연하게 흘러 다니는 돈이 내게도 닿았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길위기금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2021년 공동체 안에서 일리치약국을 열었고 거기서 정규직으로 3년 동안 따박따박 월급 받는 나날을 보냈다. 공동체에 오기 전 학원 수업 일수에 따라 들쑥날쑥한 수입으로 살았던 시절에 비하면, 20일이면 어김없이 입금되는 월급의 맛은 참 든든했다. 더구나 공동체에서 자립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던 바람을 결국은 성취해낸 것 아닌가. 그 맛에 희희낙락했던 시절이 지나가니, 매일 똑같은 일에 치인다는 푸념이 늘어갔다. 푸념이 징징거리는 수준으로 치닿던 3년차의 어느 날, 약국 일을 그만하겠다고 했다. 뭘 먹고 살거냐는 친구들의 염려를 뒤로 하고 나는 2023년 약국 일을 접었다. (실업급여 받는 6개월은 놀 거라고 큰소리치며)

 

지영님이 길위기금에 쾌척하면서 ‘직장인이라서’ 라는 말에 그동안 내가 공동체에서 별일 없이 먹고 살았던 그 맥락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리고 3년의 따박따박 월급쟁이의 시간들도 함께. 그러자 지영님의 쾌척을 이어서 나도 지나간 ‘직장인 시절’을 복기해보는 쾌척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길위기금을 내기로 했다.

 

 

3.청년을 응원하는 마음

 

막상 약국을 떠나고 나니 당장 해야 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 따박따박 밥을 먹을 수 있는 공동체 밥상은 결코 떠날 수 없었다. 다시 매일 공동체에 그것도 문탁 2층 공부방으로 출근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약국에서 일하는 3년 동안 2층 공부방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붙박이로 공부방 책상에 앉아 있는 청년들을 자주 보는 일도 그 중 하나다. 밥당번을 하거나 세미나를 하는 청년들은 익숙했는데, 공부방에서 텍스트에 코를 박고 있는 그들은 어쩐지 좀 낯설었다. (난 그랬다 ㅋㅋ)

 

동시에 수시로 공부방을 들락거리는 그들도 보였다. 더치커피를 설치하러 나갔다가, 철 지난 선풍기를 닦아서 창고로 옮겼고, 공부방에 고장 난 난로를 고친다고 드라이버를 돌렸다. 한 해의 공부를 갈무리한 자료집을 편집한다고 다크서클이 코 밑으로 내려온 채 어슬렁댔고, 파지 백일 장날에 불후의 신곡 ‘공부방’을 불러 재끼기도 했다. 자기 공부의 현장으로 어린이캠프를 연다고 동분서주 하는가 하면, 월든의 작업장에서 매주 이틀씩 일하는 청년이 재봉틀 앞에 코를 박고 있던 것도 기억난다. 그들의 모습에서 예전의 내가 보였다. 공동체로 출근하면서 여기저기 출몰하며 연루된 일들로 하루가 갔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다 때로는 책 읽는 건 뒷전이 되기도 했던. 그 시간을 다 통과하고 지금에 이른 내가 보였다.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라는 노래에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는 가사가 있다. 여기서 ‘니’는 누굴까? “특권과 반칙으로 얼룩진 기득권 세력을 물리치고, ‘공정한 진짜 경쟁’에 기반 하여 정말로 능력 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좋은 불평등 세상을 만들자”(녹색평론 184호 41쪽)는 담론에 경도되어 “능력주의 경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어떤 이들이 아닐까? 그런 ‘능력’에 별 관심 없고 또는 그 ‘경쟁’에 나설 자격도 부재했던 내가 오늘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다면, 그들의 불쾌지수는 더 상승할까.

 

지금 여기에서 공부하며 복닥거리고 있는 청년들과 장기하의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고 싶다. 그러면서 함께 공부하고 밥 먹으면서 살다보면 그들이 내는 어떤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또 다른 삶의 길을 내게 되는 때가 오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님 말고. 더불어 올해 또 다른 도전을 위해 공부방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그렇게 지금을 함께 하는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길위기금에 담아 보낸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댓글 12
  • 2024-01-23 22:15

    아! 저도 며칠 전에 기린님과 같은 응원의 마음을 길위기금에 보냈답니다.^^
    이렇게 멋진 글을 썼어야 했는데.. 아쉽군요.(그러나 슬쩍 숟가락 같이 얹을 수 있어서 무지 기분 좋습니다.ㅎㅎ)

  • 2024-01-23 22:48

    기린샘의 마음도, 글도 다 멋져요.
    자발적 실업 중에도 별일 없이 살아지길 응원합니다^^

  • 2024-01-23 23:31

    👍😍

  • 2024-01-24 00:59

    👍

  • 2024-01-24 01:26

    감사해요 샘!!!

  • 2024-01-24 09:10

    감사합니다.
    직장인분들!

  • 2024-01-24 09:24

    생각만하고 있던 제게도 얼른 하라고 기린샘이 등떠밀어주는군요
    자신의 삶이 그대로 녹아나는 기린샘 글이 감동입니다~^^

  • 2024-01-24 09:41

    와우~~~ 오늘 글이 너무 확 와닿네요~
    요즘, 기린샘의 글에도 흥이 묻어나시는거 아세요??^^

    지난번 '공부방'을 부르는 한 청년의 모습을 보고 길위기금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담달을 기다리고 있어요. 13월의 월급을 기다리고 있는 직장인이거든요..ㅋㅋㅋ
    담달에 저도 투척할게요~!!

  • 2024-01-24 09:43

    감동입니다 ㅠㅠ
    길위기금 내주셨던 분들
    내주실분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2024-01-24 10:04

    길위기굼 곳간이 넉넉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듯
    더불어 기린의 2024년도 넉넉하기를 응원합니다~~

  • 2024-01-24 10:24

    사랑해요 기린샘

  • 2024-01-24 10:48

    오! 멋진걸요?!!! ^^ 그러고보니 저도 1월 월급 받으면 길위기금 낸다고 노라한테 장담하고 아직 못내고 있었네요. 바로 입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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