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다 7월 상영작 <두만강> 후기

스르륵
2023-07-23 12:55
170

#많이 왔수다!

 

보시듯 이렇게 성황을 이룬 관객들 때문에 청샘의 공사일지 프린트가 모자라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두만강>이었습니다. 이례적(맞나요?)으로 공사일지가 두 페이지를 넘어가며 별도의 프린트가 제공되기도 했던 <두만강>은 여러모로 후기를 쓰기엔 좀, 아니 많이 버거운 아픈 영화입니다.  하여 왓챠에  장률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 <두만강(2009)>이 있으니 다들 꼭 보시라는 말씀으로 두서 없는 후기에 갈음합니다 🙂

 

 

 

# 포스터

 

이 소년은 죽은 걸까? 기절한 걸까? 아니면 잠들어 버린 걸까, 이도 아니면 얼어붙은 강물 아래로 흐르는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이 영화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이다. 물론 정답은 여기에 없다.  강 건너기에 실패한 사람들, 강 건너기에 성공한 사람들, 아직 강을 건너고자 희망하는 사람들, 건너고 난 뒤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건너는 사람들을 바라봐야 하는 사람들, 그들을 막아 서야 하는 사람들...정답은 이 영화의 아픔을 복잡하게 관통한다.

 

 

 

 

# '연변'

 

중화인민공화국 조선족 자치주 연변. 감독의 고향 연변을 나는 한번도 궁금해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우리 일상의 노동들에 이미 너무 깊숙히 들어와 있고, 내게 그들은 '거의' 북한 사람이거나 '거의' 중국 사람이거나 '거의' 한국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는 북한인가 연변인가를  한 번씩 의식해야 할 정도로 두 마을은 닮아있다. 영화에서 강 건너 마을은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겹쳐지고 분리되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창호의 마을(조선족)과 강 건너 정진의 마을(북한)을 확실하게 가른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내게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스산하고 얼어붙은 마을의 풍경과 대조 되었던 마을의 '음식'들이었다. 창호네가 둘러 앉아 먹던 둥근 밥상과 북한 소년 정진에게 차려 주었던 흰 쌀밥 수북한 밥상, 탈북자에게 순회가 차려주었던 비극의 그 밥상, 할아버지가 주정뱅이 손님들에게 대접했던 술상, 김이 모락모락났던 마을의 두부집,  그리고 그 귀한 명태들 말이다. '음식들'은 강 건너 마을(북한)이 여기와 비슷한 '풍경'과 '말투'와 '모습'과 '기억'을 가졌을지는 몰라도 이곳과는 전혀 다른 곳임을 아프고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경계' 같았다.

 

 

 

# 장률의 카메라

 

어떤 장면이 마음에 남았나요? 라는 청샘의 질문에, 특이하게 인형처럼 서있던 공안부대원들과 마을 사람들, 순희가 그렸던 '이 세상에는 없는' 다리 그림, 창호가 누워있던 영화의 첫 장면... 등등 수많은 디테일이 언급되었다. 그런데 나는  '영화 시작된거 맞아?' 라고 느티샘을 속삭이게 만들었던 장률 감독의 롱테이크가 마음에 남았다.. <풍경>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도 <경주>를 보았을 때도 뭔가 요지부동하지 않는 카메라의 묵직함. 그건 '너는 니 맘대로 여기서 눈을 돌릴 수 없다'라고 감독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 시작 후 1분 넘게 얼어붙은 두만강만 비추던 첫 장면, 그리고 정진이를 공안에 신고한 후 차마 건물 밖을 나가지 못하고 두 창문의 경계 사이에 그림처럼 앉아있던 옥설이 오빠, 그리고 후반부에서 창호가 지붕 꼭대기에서 잠시 카메라 뒤로 사라져 우리를 안심시키는 그 짧은 장면도 마치  롱테이크를 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을 돌리고 싶어도 카메라는 꼼짝 없이 우리를  '탄식과 염원이 담긴 무표정'(이동진)'에 가두어 두려는 것만 같았다.

 

 

 

#경계

 

<두만강>을 보며 나는 새삼 두만강이 생각보다 '만만한'(?) 강임을 처음 알았다. 물결이 거세고 깊고 험난한 곳도 있겠지만, 개울처럼 건너 갈 수도 있는 '두만강'말이다. 경계는 우리를 가르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곳도 경계밖에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하여 기어이 '상상의 다리'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반드시 감동을 느껴야 했을지 모르겠지만 실은 ..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경계를 건너간 '노파'가... 어쩐지 여전히 불안하니 말이다.

 

 

 장률 감독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지셨기를 바라며 무표정하지만 결코 무심하지 않은 그의 다음 영화 상영전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댓글 3
  • 2023-07-24 09:59

    덕분에 좋은 영화를 함께 볼 수 있어서 감사해요ㅎ
    다음달도 기대됩니다~^^

    IMG_2078.jpeg

  • 2023-07-24 10:08

    간결한 이미지 언어, 눈물이 나지 않는 무지근한 저림.
    내가 장률을 좋아하는 이유.

  • 2023-08-14 08:26

    저도 스르륵님의 글을 읽으니
    순희가 여러 사람을 거쳐 차렸던,
    가리는 것 없이 퍼주었던 밥상이 기억납니다.

    참, 추웠던 영화. 마음도 추웠고, 배경도 추웠던 영화.
    분명히 시간의 순서대로 사건들은 전개되는데
    다시금 처음과 끝이 헷갈리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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