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다 6월 상영작 <경주> 후기

수수
2023-06-25 12:43
372

 

6월 필름이다 영화는 장률 감독의 ‘경주’였다. 6월 24일 토요일 파지사유엔 둥글레, 기린, 겸목, 스르륵, 청량리, 띠우, 나 이렇게 7명이 모여 조촐하게 영화를 봤다.

 

사실 난 ‘경주’를 전에 봤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혼자 집에서 봤는데 추천한 친구에게 ‘으이구, 왜 이런 영화를...’이라며 막 뭐라고 했었다. 그래서 필통 상영도 갈까말까 하다가 한번 더 보면 뭐라도 보일까 싶어서 갔다. 결과는 ‘와! 정말 같은 영화 맞아?’이다. 그래서 장률 감독과 내 친구에게 사과하는 의미로 자발적 후기를 쓴다.

 

‘경주’는 북경대 교수인 최현(박해일)이 선배의 장례식에 갔다가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체적인 구조나 느낌이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나 ‘생활의 발견’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경주의 고즈넉한 풍경과 느린 연출로 처음엔 지루한 영화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영화는 뒤로 갈수록 의외의 폭주와 깨알 웃음, 결국 풀기 힘든 미스테리까지 선사한다.

 

 

 

영화의 줄거리를 압축하면 몇 줄도 안 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하루 동안의 낮과 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정도의 시간이다. 지식인 남성이 자신의 과거 속을 어정거린다. 예전에 사귄 여자를 만나고, 새로운 여자도 만난다. 하지만 그들과 원하던 뭔가를 이루진 못한다. 엉뚱하고 묘한 기류의 밤이 지나고, 다음날 그는 새로운 기운을 얻은 듯 길을 나선다. (보통 다른 로드무비는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온 건 현실이 현실이 아닌 상황이다. 결국 그는 죽는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상상 또는 꿈이다? 과거가 과거가 아니다? 아니 내가 대체 뭐라는 거야.

 

이 영화의 묘미는 보고 나서 맞추는 퍼즐에 있었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풀숲에서 사라진 건 죽음을 의미하는 건지, 그들이 만났던 7년 전에 왜 신민아가 찻집 주인인지, 죽은 선배와 주인공의 관계는 대체 뭔지, 모든 것을 섞어 놓고 영화는 갑자기 끝나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고 신나게 떠들 수 있었다. ‘경주’라는 배경이 주는 상징적 의미와, 삶과 죽음이 섞여 있는 영화 속 인물들과, 곳곳에 드러나는 블랙코미디 같은 웃음 코드와, 풀기 힘든 조각들을 이리저리 붙여 보는 재미 때문에. 사실 얘기하자면 더 있다. 동북아 정치와 일본인의 뜬금 없는 사과, 차를 우려내는 방법, 동성애 코드, 영화 속 유명한 카메오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 배우 백현진의 놀라운 노래까지.

 

 

이제는 매끄럽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영화보다 이렇게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영화가 더 좋다. 피곤해도 영화인문학에서 비벼 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장률 감독을 다시 보게 해 준 스르륵샘과 청량리샘에게 감사를. 다음 영화는 장률 감독의 또 다른 영화라고 한다. 궁금하지 않은데 굳이 비밀이라고 제목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영화보고, 퍼즐 풀기. 다음 달(7월 15일, 토요일)에는 많이들 와 주세요^^

댓글 5
  • 2023-06-25 13:37

    그니깐요~~ 이번에 수수님이 유난히 즐거워하시는 것 같았어요. 모두의 상상력이 침을 튀며 얘기되어진 순간이었습니다. 간만에 유쾌했어요!!! ^^

  • 2023-06-25 13:41

    수수님 이제 필통에 적응하신듯ㅋㅋ
    다음 영화 완전 기대됩니다~

  • 2023-06-25 14:08

    자발적 후기 정말 기적이네요~~
    수수님 감사합니다.
    주무시지들만 않으면 쾌거라고 생각했는데 ㅎㅎ

    저도 필름이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 되겠죠~? 같이봐서 재미있었어요.

  • 2023-06-25 16:56

    띠우샘 말마따나 자발적 후기는 넘 오랜만이네요.
    게다가 영화는 더욱 어려워 하신듯…ㅎㅎ
    진지하게 이야기 하다가 살짝 빠져 나갔다가
    다시 또 돌아왔다가 엉뚱하게 흘러가는 재미가 있었죠.
    수수님, 후기보니 담달에 꼭 와야겠어요~ㅎㅎ

  • 2023-06-27 09:02

    전 <경주>는 못 봤어요. <군산>은 봤구요.
    후기만 봐도 두 영화, 뭔가 정조가 비슷한 것 같네요.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군산>은 진짜 우껴요.............라고, 쓰기엔 거시기하지만, 어쨌든 우껴요.
    아, 그리고 백현진은 군산에도 나와요.

    <경주> , 뒤늦게라도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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