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스타의 책읽기>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르디플로 1월호 전반부 후기)

블랙커피
2022-02-12 18:08
155

버리스타의 책읽기 세미나는 녹평읽기를 중심으로 한 세미나입니다.

녹평이 지난해 11월호를 마지막으로 일 년간의 휴간에 들어감에 따라 여러모로 고심한 끝에 2월부터 4주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생태계간지 <바람과 물>을 시범적으로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2월 11일에는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중 전반부를 다루었는데요. 세르주 알리미(르디플로 프랑스판 발행인)와 브누아 브레빌(르디플로 프랑스판 편집장)이 공동으로 쓴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라는 기사를 중심으로 후기를 써보겠습니다.

프랑스는 2022년 4월 10일부터 대선에 들어가는데요. 우리나라도 대선이 코앞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대선 관련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는데요.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022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가상대결

장-뤽 멜랑숑(좌익, 불복종 프랑스): 11% / 야니크 자도(중도좌파, 녹색당): 8% / 안 이달고(중도좌파, 사회당): 7%/ 에마뉘엘 마크롱(중도, 전진하는 공화국): 24%/발레리 페크레스(중도우파, 공화당): 14%/ 니콜라 뒤퐁-애냥(우익, 일어나라 프랑스): 7% / 마린 르펜(극우, 국민연합): 26%

 

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둔 프랑스는 이번에도 좌파가 패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좌파들이 결집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현재 좌파를 결집시키는 유일한 공통분모는 극우에 대한 두려움뿐이다. 이는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2002년 사회민주당은 EU 내 15개 정부 중 13개 정부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7개국이다. 재화, 서비스, 자본,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한 신자유주의에 문제를 제기한 진영이 포퓰리스트적인 우파라는 현실은 좌파 몰락의 원인이 자신들의 모순 안에 있음을 말해준다. 사실 이 문제기는 ‘좌파 중의 좌파’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권은 채권자들의 개혁 요구를 무시했고 실권했고, 스페인 포데모스와 독일의 좌파당, 프랑스 공산당, 영국의 노동당 등도 힘을 잃었다.

사회적 전환의 목표가 실현되려면 서민층의 강력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정책실패, 체제의 부당성을 인식했다고 이를 타파하려는 의지가 절로 생겨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단이 부족할 경우 저항과 분노는 현실에 굴복하며, 이런 상황은 보수와 극우의 자양분이 된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패배를 거울삼아 패배의 원인이 될 수단을 파괴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또 게임의 규칙을 바꾸거나 어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좌파 집권 시절에 대한 유권자의 기억은 다시 좌파정권의 집권을 꺼리게 한다. 블레어, 클린턴, 미테랑, 크락시, 곤잘레스, 슈뢰더, 올랑드 등은 종종 강한 거부감마저 유발한다. 좌파의 실망스런 모습에서 두 가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들 좌파는 좌파의 강령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파의 강령을 실천했다. 둘째, 타협을 최대한 연기하려던 좌파를 굴복시킨 것은 재정 질식이었다.

적은 종종 내부에 존재한다. 노동당 출신의 전직 총리인 바클레이는 은행과 JP모건의 고문을 맡아 큰돈을 벌었고, 사회당 출신 전직 재무장관은 국제통화기금의 총재가 됐다. 그리고 민영화는 좌파가 주도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좌파 유권자를 결집시킬 것인가? 그렇다면 집권 좌파가 우파 정책의 관리자 역할을 거부하면 상황이 개선될까? 100년 전에는 우파의 실력행사가 우려되었다면, 이제는 구조상의 빗장, 그리고 불가능에 대한 공포가 통지차의 정책과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이런 반복된 무력감 속에서 당원들은 빠져나가고, 좌파 당은 ‘끼리끼리’ 형태만 남았다. 그리고 정당이 부패했다고 판단한 활동가들은 수평적, 포괄적, 참여적인 다른 형태의 투쟁(아랍의 봄, 월스리트점령운동, 밤샘, 노란조끼 시위)으로 눈을 돌렸다. 이 시위 모두 지도자선출, 위계적 조직 구성, 정당이나 노조와 연맹결성 혹은 선거 입후보를 거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성의 추구는 효율성을 희생시킨다. 2011년 점령(Occupy)운동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 세계적 시위였지만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했다. 노란조끼, 아랍의 봄은 어떠한가? 이러한 시위는 조직이 없으면 영향력이 없고, 영향력이 없으면 결과도 없음을 말해 주었다. 체념의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지역사회의 대안들과 구체적인 행동들을 우위에 둔 활동들(보호구역 운동, 자치공동체, 순회법원)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제도에서 떨어져 나와 산다는 것은 본질을 바꿀 수 없으므로 활동 범위가 제한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주로 중산층 출신의 젊은 대학 졸업자들이 주도하는 이런 보호구역 유형의 운동들이 대중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까? 좌파의 실패를 제대로 성찰하려면 20세기 내내 사회의 신뢰를 얻고 사회에 변화를 선사한 계층 간 연대를 돌아봐야 한다. 오늘날 사회는 산산조각 났다. 진보성향의 중산층과 서민층이 결집한 통일전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두 집단은 공간적, 학력적 분리가 확산됨에 따라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게 됐다.

지난 30년간 좌파와 대중 유권자들이 멀어진 요인은 정치적으로는 공약 불이행에 대한 배신감, 경제적으로는 3차 산업의 확대, 자본화, 세계화 때문이다.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사회학적으로는 교육받은 계급들의 능력주의 찬양, 인류학적으로는 계산적이고 상업적인 합리주의로 인한 삶의 다양성 와해 때문이다. 또한 지역적으로는 대도시의 주변 지역 잠식, 문화적으로는 사회 투쟁에 대한 상류층의 투쟁 때문이다.

위에서 열거한 것들은 다음의 두 가지 원인을 고려할 때에 일관성 있는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소비에트의 위협이 자본주의적 자유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중재의 미덕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피케티가 20세기에 나타난 불평등의 감소는 공산주의 역모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출현을 가져왔다. 두 번째로 서민층과 제도정치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1950~60년대는 부유층과 고학력자들이 우파를, 빈곤층과 저학력자들이 좌파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제는 전문직업인이나 기업 간부들이 좌파에 투표하며, 이들은 부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을 종종 반대 방향으로 이끈다. 사회당, 노동당, 민주당, 생태주의 정당 등 중도좌파 정당들도 서민층 유권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도 선거에서 이길 것을 자신하며, 고학력 부르주아 중심의 문화적·사회적 자유주의를 우선시한다. 그러는 사이에 블루칼라의 지지를 얻은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현실!!

사회당 지도부 중 한 명인 앙리 에마뉘엘리는 “과거 좌파연합의 영향력은 전통적으로 ㎡당 가치에 반비례했으나, 이제는 그 가치에 비례하는 추세”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엘리트층과 블루칼라가 같은 좌파정당을 지지해도 이들이 중시하는 사안은 다르다. 2017년에 미국의 민주당에 투표한 노동자들은 의료비, 연금총액, 고용주가 의료비를 부담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위험, 경제 활동 수준, 실업문제를 중요하게 보았다. 반면 엘리트층은 환경, 기후변화, 의료비, 교육, 인종적 정의를 중요하게 본다.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 찬반 문제에서 중산층 대학 졸업자들은 반대, 노동당을 지지하는 서민적인 지역에서는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은 유럽연합을 선택해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보수당에 넘겨주었다. 이 사건은 좌파가 잃어버린 유권자를 되찾고자 한다면 유권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민감한 주제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좌파가 이러한 ‘공포의 정치’에 무릎을 꿇는다면, 좌파는 공포의 정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로 인해 과거에 쟁취한 것을 지키거나,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선거용 미봉책밖에 제시하지 못하면서 ‘바리케이트’가 세워진 기존 질서와는 단절될 것이다.

반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자유주의 건설자들은 방어전이 아닌 길을 택했다. 그들은 지지자들이 ‘지적 모험’, ‘용기있는 행동’, ‘진정한 급진주의’를 중시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지침은 오늘날 좌파에게 더 유용할 것이다. 지난 30년간 세워진 경제적·정치적 게임의 규칙들을 우파가 ‘양심적으로’ 지킴으로써, 이제 또 한 번 좌파가 실패할 것은 확실하다. 반대로 생태적, 사회적, 민주주의적 측면에서 벌어지는 3중의 긴급한 상황은 진정한 ‘자유주의적 급진주의’에 맞서 전도된 급진성을 내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 연설에서 칠레를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만들 것이라고 얘기한 가르리엘 보리치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심장하다.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당신은 나는 비관주의자야.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야. … 아니면 가능성의 존재, 희망의 빛줄기를 붙잡고 어쩌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진실로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가르리엘 보리치

 

유럽에서 우파의 강세가 지속되고 2017년에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 르디플로는 좌파의 좌파답지 못함을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싣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좌파의 좌파다움’은 무엇일까요? 이를 <특정 세계관은 어떻게 자리잡는가?>라는 제목으로 1월호에 함께 싣고 있는 브르디외의 미발간 글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 글은 그의 장(場, champs)개념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힘이 상호 간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투쟁을 벌이는 공간인 장. 이 공간에서 투쟁의 목표는 힘의 장에 변형을 가하는 것인데, 이는 장의 ‘안’과 ‘밖’의 구분 원칙을 점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정치장으로 가져와 보면, 정치장에서의 경쟁의 목표는 다수의 관념 중 자신의 관념이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원칙으로 인정받으면서 결국 하나의 주도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세계관(다수의 세계관)이 어떻게 자리잡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한데요. 이는 또 현재 정치장을 어느 진영(세력)이 장악하고 있는지, 그러한 장 안에서 좌파의 패배 원인과 승리요인은 무엇인지를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르디플로의 ‘좌파의 좌파다움’이 무엇인지도 대강 짐작해 볼 수 있지요.

그런데말입니다...

지금의 선거구도에서 과연 가장 좌파다움을 얘기하는 대선후보에게 과연 나는 투표할 수 있을지... 이건 선거당일까지 고민스럽겠네요. ㅠㅠ

 

댓글 2
  • 2022-02-18 09:35

    빈틈없는 후기에 더 붙일 얘기가 없네요 ㅋ 참- 오랜만에 읽는 르몽드인데, 지난 셈나를 돌이켜보니 짧은 시간에 정치, 경제, 철학, 여성문제까지 다 훝었더군요. 시나브로 전방위 공부가 되는 르몽드! ㅋㅋ  

    좌파가 좌파스럽지 못한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주니 정치맹인 저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우파가 더 매력적이고 진보적으로 보이는 지금의 아이러니한 현실에서 과연  그런 이슈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는 있는지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희망의 빛줄기를 놓쳐서는 안되는 거겠죠? 

  • 2022-02-18 14:07

    저도 충실한 후기 글이라 댓글 못달고 있다가 곰곰샘 댓글에 자극받아 조금 말해보자면,,,,

    처음 읽어보는 <르몽드>!

    글로벌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와 질문이 참 재밌더만요.

    다른 국가들의 제도와 인물명은 가독성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찬찬히 읽으며 우리나라가 상당히 서구화 되어있고 그래서  또한 서구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다시 느낍니다.

    그렇기에 르몽드는 블랙샘이 얘기한것처럼 우리를 비슷하게 비추는 '현재의 거울'같아요.

    오늘만해도 메타버스와 k-웹툰. 동계올림픽, 소셜 미디어 등등 트렌디하면서도, 따라가기도  벅찬 현실 기사들이었어요.

    반면 <증여론>, <숲은 생각한다> 같은 인류학 책은 아주 낯선 원시 사회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곳(?)으로 멀리 왔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 비춰주는 '과거와 미래의 거울'같은 느낌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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