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첫번째 후기

곰곰
2023-11-08 02:44
210

지난 세미나는 아쉽게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여러분들이 결석을 하셨다. 그래서  뚜버기, 달팽이, 낮달, 참, 곰곰 이렇게 다섯이서 하는 조촐한 세미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 첫번째 시간이다. 

 

첫인상

뚜버기샘의 말처럼 애나 칭의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요약되는 논의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아듣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질 수 없다. 칭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는 복합적이고 추할 때가 많으며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고 팩폭을 한다. 골치 아픈 이야기들과 불협화음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희망과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네그리와 하트는 ‘자본주의의 외부는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 삶이 자본주의에 다 포섭되었다는 말이다. 세미나에서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려고 찾은 여행지에서조차 왜 현지 음식이 아니라, 글로벌 프랜차이즈(=맥도날드)부터 찾게 되는지 얘기했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지역적인 것을 없애고 전세계를 획일적으로 만들지만, 그러한 확장성 = 검증된 방식이라는 의미이기도 해서 우리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선택지가 된다. 사소한 선택에마저 무기력해지는 것이 참 씁쓸하지만...  우리는 플랜테이션 농장과 다름없는 도시에 살면서 점점 더 온실 속 화초가 되어 간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칭은 세계가 ‘정말로’ 자본주의에 포섭 되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세계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질서와 힘에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경계지대를 들여다보면 상당히 틀린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의 기술

지구는 근대 자본주의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 발전을 통한 부의 축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인간과 자연을 본래의 생태환경과 관계에서 떼어내어 착취하고 상품화해 왔다. 인간-비인간들은 다종의 집합과 협력에서 소외되었다. 그 결과 패치성을 갖는 풍경, 복수의 시간성, 인간과 비인간의 가변적인 배치 같은 정작 중요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칭은 현대의 자본주의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를 보여주기 위해 송이버섯의 상품화 과정을 설명한다. 

 

 

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의 일부를 기꺼이 참아주고 있다. 오리건주의 송이버섯은 폐허가 된 국유림에서 소나무와 협력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유해생물이 아니며 오히려 귀한 고급 식재료다. 그래서 채집된 뒤에는 상품으로 분류되고 그 결과 일본으로 수송되어 판매된다. 칭이 ‘구제 축적’이라 부르는 이 과정은 비자본주의적 삶을 사는 생물이 자본주의적 부의 축적을 위해 어떻게 이용되는지 보여준다. 현대 사회의 모든 생산과 소비는 글로벌 자본주의로 획일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의 비자본주의적인 것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가 자본주의에 산발적으로 흡수되며 상품으로 전환된다.

 

구제salvage 축적 

자본가는 생태를 개조하는 것 외에도 그것이 지닌 역량 자체를 이용하면서 착취한다. 생태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살아있는 존재를 끌어들이는 것을 ‘구제salvage’라 부른다.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석탄, 석유, 노동 등)를 써먹는 것을 의미한다. 구제는 자본주의적 축적을 위해 자본주의의 내부인 동시에 외부(주변자본주의적)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멕시코의 피복 제조 공장에 고용된 여성들은 성장하면서 집에서 이미 바느질을 배운다. 구제축적은 그러한 기술을 공장주가 이윤을 낼 목적으로 공장에 끌어오는 과정이다. 

구제는 추출, 착취, 외부효과 등의 용어로 쓰일 수도 있을 텐데, 왜 굳이 ‘구제’라 불렀는지 궁금했다. 구제 축적이라는 말은 꽤 새롭지만 낯설다. 칭은 ‘알아차림을 위한 명칭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움직이고 있는 명칭으로서 필요한 것’(67p)이라 한다. 그렇다면 알아차림을 위해, 움직이는 명칭으로서 일부러 새 개념을 가지고 온 걸까, 혹은 단순하게 sevage(야만)/salvage(구제)를 쌍둥이처럼 배치하려고 한 걸까, 뭐 그런 얘기를 나누었다. ㅎ

 

비자본주의적 요소들

글로벌 자본주의는 구제축적을 통해 환경파괴, 착취, 소외를 일으킨다. 하지만 송이버섯의 생산, 무역, 판매, 소비에 참여하는 인간 비인간 생물들의 관계와 활동은 대부분 비자본주의적이다. 예를 들어 오리건주 숲에서 야생 송이버섯을 따는 프리랜서 채집인들은 버섯 채집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기업에 고용되어 시간당 임금을 받고 노동하는 대신 자유롭게 숲을 누비며 송이버섯을 발견했을 때에만 돈을 버는 불안정한 삶을 선택한다. 일반적인 시장경제를 따르는 상인들은 상품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얻으려 하지만, 이와 달리 프리랜서 채집인과 일본인 무역업자를 연결하는 중간 상인들은 송이버섯 가격을 올리기 위한 전략에 매진한다. 

 

배치

공장이라는 획일적 리듬이 압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과는 달리, 예측 불가능한 야생 버섯의 세계. 자본주의는 이곳에서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고, 이런 곳이야말로 다른 존재들과의 의도치 않은 조율들이 발달하게 된다. 그런 패턴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모여 빚어내는 시간적 리듬 및 규모의 상호작용을 지켜본다는 뜻이다. 이는 다성음악에서의 다운율의 배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화성음악이 주선율을 연주하는 성부(주인공 하나)를 중심으로 다른 성부(조연)가 화음을 받쳐주는 것이라면, 다성음악은 하나의 주선율을 다른 성부와 같이 연주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연주한다. 즉, 주인공이 많고 이들을 어떻게 엮어가는가가 중요한 악곡이다. 퍼머컬처에서의 다운율 배치도 떠오른다. 플랜테이션 농업은 단일 작물을, 같은 시간성으로 키워내는 방식이지만 퍼머컬처에서는 복수의 리듬이 존재한다. 여러 작물이 각각 다르게 자란다. 이런 다운율의 배치와 산업 과정을 조율하는 활동은 자본주의의 주변부일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오염contamination

칭은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오염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온다. 오염은 의도하건 하지 않았던 간에 다른 존재와 닿기만 하면 발생한다. 가장 진입(침입?)장벽이 낮은 마주침이 아닐까. 오염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이를 피할 방법도 없다. 그러니 어떠한 기준, 잣대를 가지고 재단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순간에 그저 킁킁대며 오염이 만들어낸 사건의 냄새를 맡을 뿐. 

 

자유=경계물

그리고 6장에서 송이버섯 채집인들에게 자유란 ‘경계물’, 즉 의미하는 바가 많고 다양한 방향으로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공유하는 관심사(178p)라고 한 부분. 각각의 채집인들이 겪은 전쟁의 경험은 그들이 생존을 연장하기 위해 해마다 숲으로 돌아오는 이유가 된다. 각각의 역사적 흐름은 자유의 실천으로서 버섯 채집이라는 실천을 동원한다.(179p) 

경계에 자유가 있다니... 세미나에서는 자유가 경계에 있어야 안에서도, 밖에서도 모일 수 있겠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자유가 안에, 즉 중심에 있다면 그 한 방향을 향해서 가야겠지만 경계에 있기 때문에 안과 밖 모두에서 접근 가능하다는 말이 아닐까 하고.

낮달샘은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버섯을 사냥하면서 자유를 찾았다면,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하셨던 아버지에게는 무엇이 송이 사냥이었을까, 라고 질문하셨다. 달팽이샘은 전쟁의 역사로 버섯채집 공동체의 자유를 풀어낸 칭의 이야기가 흥미롭다고 하셨다. 자본주의가 의존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들, 확장성 없는 산림경제, 의도치 않은 조율, 다양한 삶의 방식이 빚어내는 시간적 리듬 및 규모의 상호작용, 삶을 가능케 하는 불확정성, 이런 개념들이 이들의 삶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미나라는 이 우연한 배치에도 이러한 경계물이 있을 텐데, 그렇다면 우리를 모이게 한 경계물은 무엇일까. 낮달샘은 돌봄과 사회변화, 존엄을 얘기하셨고, 달팽이샘은 소박함, 참샘은 생존 등을 얘기하셨다. 내가 찾고 있는 자유는 무엇일까? 세미나 자체가 교란이자 오염이고 패치의 공간 같다. 

 

다음 시간에는 13장 부활(338p)까지 읽고 옵니다. 

댓글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63
에코프로젝트 첫 시간 공지입니다!!
관리쟈 | 2024.03.01 | 조회 166
관리쟈 2024.03.01 166
962
[2024 에코프로젝트 시즌1] 비인간&인간: 에코-인문학적 상상 (10)
관리쟈 | 2024.02.10 | 조회 1484
관리쟈 2024.02.10 1484
961
에코프로젝트 Ⅱ 마무리 발표회 후기 (7)
| 2023.12.19 | 조회 261
2023.12.19 261
960
시즌2 <문명 너머를 사유하다> 최종에세이 올립니다 (4)
띠우 | 2023.12.01 | 조회 239
띠우 2023.12.01 239
959
마무리 발표회에 초대합니다 (12/1 오전10시15분) (10)
뚜버기 | 2023.11.28 | 조회 693
뚜버기 2023.11.28 693
958
세계 끝의 버섯 3회차 후기
느티나무 | 2023.11.24 | 조회 177
느티나무 2023.11.24 177
957
세계끝의 버섯 3차시 (4)
관리쟈 | 2023.11.17 | 조회 229
관리쟈 2023.11.17 229
956
<세계끝의 버섯> 2회차 후기
토토로 | 2023.11.16 | 조회 238
토토로 2023.11.16 238
955
루쉰 원정대 4 - 넷째날 (4)
느티나무 | 2023.11.10 | 조회 257
느티나무 2023.11.10 257
954
세계 끝의 버섯 2회차 (5)
자누리 | 2023.11.10 | 조회 227
자누리 2023.11.10 227
953
루쉰원정대3-셋째 날 (6)
새봄 | 2023.11.08 | 조회 265
새봄 2023.11.08 265
952
<세계 끝의 버섯> 첫번째 후기
곰곰 | 2023.11.08 | 조회 210
곰곰 2023.11.08 21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