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가족의 딜레마] 후기

건달바
2016-11-01 11:57
426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작년 축제 때 '좋은 삶'에 맞는 영화상영을 위해 프리뷰로 봤던 영화였습니다.

워낙 공장식 축산을 고발하고 있는 센(?) 다큐들을 익히 본 터라 좀 약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올 여름 '나무닭 움직임 연구소'의 여름 캠프에 갔다가 이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지난 주 금요일 그녀를 모시고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죠.

1차전, 게릴라 전, 2차전에 이은 3차전이 기다리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황윤 감독을 천군만마(?)로 생각하기로 하고 애써 3차전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ㅎ

사람들이 모이고

1.jpg

문탁 샘이 마이크를 잡으면서 전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2.jpg

그런데 이번에 본 영화는 왜 이렇게 새로운지

황윤 감독의 아들도, 남편도 다 아는 얼굴... 게다가 버려진 돼지 농장을 함께 방문하던 운동가도 이후 제가 다른 화면에서 봤던 얼굴이더군요.

1년 사이 내가 아는 사람 얼굴이 늘어난 거죠.

영화는 너무도 황윤 감독스러웠다고 할까요?

암퇘지 십순이의 출산과 황윤 감독의 출산이 평행으로 보여질 때

돼지의 생명이 고스란히 인간의 생명과 겹쳐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도 제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은 두가지의 대비적 장면입니다.

처음에 보였던 장면...

구제역으로 산채로 매장시키기 위해 큰 구덩이에 돼지들이 밀려 떨어지고 거기서 울부짖던 수많은 돼지의 공포에 찬 얼굴.

그리고 마지막 즈음

밀밭을 뛰놀던 농장의 돼지들...

이 두 장면에서 돼지의 고통과 쾌락은 누가봐도 구분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딜레마는 남습니다.

마지막 돼지 농장에서 받은 돼지고기와 그 옆의 칼은 그 자체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행복하게 큰 돼지고기인데 먹을래? 말래?

 

상영이 끝나고 황윤 감독과 대화의 시간.

3.jpg4.jpg

황윤 감독은 미리 책읽고 글쓰고, 세미나하고 영화상영한데는 문탁이 처음이라며 나름 준비를 많이 해오신 것 같았어요.

내가 1차전, 게릴라전, 2차전을 치른 경험과는 다른 것이었는데요

황윤 감독이 설명을 잘 해줘서였는지 아니면 손님 우대 차원이었는지 싸움같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만

주요한 쟁점은 이거였어요.

동물권을 위해서 왜 꼭 해법이 채식이어야 하느냐!

답은?

이미 너무나 많은 고기가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되고 있고 우리의 식문화도 그것에 맞춰서 변화된 상태에서

고기 먹는 것을 줄이지 않고 공장에서 농장으로의 전환 자체는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답이 채식으로 하나는 아니지만 어쨌건 육식을 줄어야하는 것은 사실인데...

우리의 딜레마는 다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갑니다.

이후에 어떻게 할 지는 각자 정해야겠죠.

뒤풀이에서도 끈질긴 질문들이 오갔어요.

6.jpg

황윤 감독이 머리가 아픈지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네요 ㅋㅋㅋ

3차전을 치뤘으니 3차를 해야겠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3차가 끝난 시각만 알려드리죠. 새벽4시.

댓글 4
  • 2016-11-01 12:13

    참 황윤 감독이 꼭 읽어보라고 한 책인데요

    건강과 취향의 문제가 아닌,

    음식 선택이 교과서, 종교, 대중매체 등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의식구조에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7.jpg

  • 2016-11-01 14:42

    4차 - 다음날 아침 조조영화보기 (자백)

    5차 - 채식뷔페 찾아가서 맛있는 점심 식사...까지

    무박 2일간의 접대였네요...ㅎㅎ 

    근데 내가 즐거웠으니..접대가 아니라..대접받은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황윤감독이 묻더군요...이렇게 격하게들 하시면, 서로 상처안받으세요? 

    물론 상처 받지만, 다음 날 또 만나서 괜찮다고..대답해줬습니다.

    그리고 또....100군데 넘게 감독과의 대화를 다녔는데...

    이렇게 자기를 힘들게 하는 곳이 없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당신 불러서 잘했다고 칭찬하려고 만든자리는 아니라고 

    대답해 줬습니다...황감독에게도 우리에게도 그 치열함 속에서

    어떤 배움이 일어나는 시간이었으리라 믿으며...

    저는 이 끈을 놓지 않고...또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황윤 따라, 새만금까지...6차를 가려고 합니다만...^,.^

  • 2016-11-04 15:05

    이번 동물 영화제를 하면서 저는 낯선 타자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해, 동물에 대해, 나에 대해,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존재가 타자라면,

    그래서 내 안에 작은 균열이 생기게 만든 존재가 타자라면,

    그것으로 인해 아주 미약하게나마 크게 변화시킨 존재가 타자라면,

    저는 이번에 돼지를  아주 좋은 친구로 만난 셈입니다....^^

    • 2016-11-04 19:32

      미 투!

      요즘 나의 화두는 최순실이 아니라 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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