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禪

어째서 나한테는 떠난 사람의 그림자만 남았을까요

어째서 나한테서 돼지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무음 청소기로 소리를 모두 빨아들인 것 같은 방 안

이름 모를 나무의 이파리들이 흐릿한 커튼을 어루만지는 방 안

우리는 발끝으로 걸어야 하죠

벽 너머 8년째 묵언 수행 중인 스님

스님 밥 드나드는 문 열릴 때 섬광처럼 끼쳐오는 요란한 냄새

돼지우리보다 더 예리한 냄새

스님! 스님! 면벽스님! 제가 질문이 있는데요!

8년 동안 목욕은 한 번도 안 하셨나요?

혹시 표류선이라고는 들어보셨나요?

망망대해를 떠가는 아이스박스 표류선!

아이스박스 하나에 어부 하나!

물 한 모금도 못 먹은 지 8일째!

스님! 스님! 면벽 스님! 이런 건 들어보셨나요?

화장실도 없는 독방에서 하지도 않은 일을

불어라 불어라 두들겨 맞는 독방선이요!

그도 저도 아니면 똥선은 어떤가요?

하루 종일 제가 낳은 똥만 바라보면서 똥을 질질 싸는 선

코마에 갇힌 선! 창살 돼지 선!

나는 돼지인 줄 모르는 돼지예요

그렇지만 세숫물에 얼굴 쏟으면 일단 돼지가 보이죠

나는 돼지인 줄 모르는 선생이에요

매일 칠판에 구정물만 그리죠

나는 몸 안의 돼지를 달래야 하는 환자예요

그러고도 사람들 몸 안에 좌정한 돼지만 보여요

하루만 걸러도 냄새 진동하는 이 짐승을 어찌할까요

하루만 먹이지 않아도 꽥꽥 소리를 지르는 이 돼지를 어찌할까요

스님! 스님! 면벽 스님!

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벽이 열리나요?

벽 나가면 벽 바깥에 갇히는 기분이에요

사장 판사 장군 서장 형사 하나님은 벽 바깥에 살죠

벽이 열리면 수사가 시작되죠 스님! 스님! 면벽 스님!

벽 너머에서 나를 꿰뚫고 계시나요?

나의 자백을 듣고 계시나요?

그렇담 이 그림자에 분홍 살 올려보세요

저 커튼에 드리워지는 정신분열증 걸린 나무 말고

분통색 통통한 꽃 한번 매달아보세요 추워 죽겠어요

파리가 껌처럼 수행자들을 씹고 있는 방 안

큰 소리만 들어도 가슴에서 젖이 쏟아질 듯 조용한 방 안

나는 돼지인 줄 모르는 돼지예요

두통이라는 뚱보 여자예요

구토라는 뚱보 여자의 그림자예요

날개도 없는 검은 기름가방이에요

제 몸을 제가 파먹는 돼지예요

전 세계의 부처들이 돌아앉아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방

나는 겨드랑이에 털이 가득한 돌덩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