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가격 마지막 후기

뚜버기
2021-05-03 10:49
241

후기가 많이 늦었네요.... 그동안 뭔 정신이었는지 앞부분 후기도 못 챙겼고요 ㅠㅠ 암튼..

마지막에 와서 저자는 처음의 질문과 답을 다시 점검합니다.

1장에서 플라톤의 입장에 서서 소피스트들을 비판했던 논지로 돌아갑니다. 우리도 그 부분을 읽으면서 의아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마무리에서는 균형을 되찾습니다. '소피스트 혁명'이 지식을 대중화한 것과 상업영역의 발전에서 가져온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효과를 보여줌으로써, 소피스트들을 복권시킵니다. 여러 분들이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하셨죠. 특히 이번 책은 상업교환의 영역에 대한 존중이 기존의 인류학 책에서 느끼지 못한 균형감각이 인상적이었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몽테스키외의 상업예찬과 지적소유권 및 정신분석의 보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돈으로 사고 파는 것과 관련된 시대정신이 어떻게 달라져가는지 잘 정리해 보여줍니다.

에나프는 선물을 상업교환을 대체하는 경제적 대안으로 취급하는 생각으로 빠지는 것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경계합니다. 그와 같은 관점은 결국 경제주의적인 시각, 경제를 모든 것에 우선하여 사고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됩니다.  기존의 경제인류학자들에 대한 비판도 그런 맥락에서 였죠. 다만 이질적인 두 영역은 하나가 지배적일 때 다른 하나가 약화되는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텍스트를 접하는 내내 사유의 미세한 차이와 그로 인한 여파들을 살펴보는 에나프의 통찰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가기에서 에나프는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반복합니다.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돈이라는 단일가치를 기반한 거대한 전지구적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고 파는 것은 공정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선물은 오히려 부패로 흐를 수 있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상업 영역 역시 부패의 위험이 없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가격으로 번역해버릴 때 개인의 자유와 형사적 정의마저 돈으로 거래되는 것을 뉴스에서 매일매일 접하고 있죠. 돈이 어떤 욕망이든 포획할 수 있는 텅빈 매개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상업교환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율적인 시민사회를 구성할 수 있지만 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는 선물교환관계를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음을 저자는 계속 지적합니다. 물론 동네 가게에서 주인과 단골손님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관계가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상업적인 교환을 넘어선 어떤 접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굳이 타자와의 유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을까? 가격을 매겨 사고 파는 상업교환을 마음 편히 여깁니다.

무료급식이나 0원상점보다 천원상점을 사람들이 훨씬 마음 편하게 여긴다고도 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선물교환은 상호대갚기라는 형식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는 것. 물건을 통해 자기자신을 내어줌으로서 서로 섞이는 행위인데 단지 자선과 박애의 형태로만 남아있기 때문에 상호인정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겠죠. 보답할 수 없다는 부채감만 남을 뿐... 돈으로 받은 것은 돈으로만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것으로만) 갚을 수 있다는 흐름을 끊은 구체적 실천을 만들어 간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에나프는 돈으로 시민사회의 성원권을 살 수 없는 타자들을 환기시킵니다.  상업교환의 쿨한 세계로 들어 올 그 어떤 소속도 가지지 못한 존재들... 잊고 살아도 내 삶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배제된 존재들은 어떻게 될까라고 묻습니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영역 = 화폐교환의 대상이 되지 않는 영역 = 선물교환의 영역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타자와의 만남은 그저 정언명령식의 윤리적 요청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에나프는 여기서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에 관한 논의를 가지고 옵니다. 갑자기 마지막에 레비나스로 결론을 맺는 것이 이전 부분과 어떤 연결이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현상학이나 레비나스는 어려웠습니다. 뭔가 뜨뜻한 것이 올라오고 마음에 든다는 막연한 느낌만 오더군요...작년에 읽은 리처드 세넷의 <짓기와 거주하기>에서도 레비나스의 타자 이야기를 가져왔던 기억이 났습니다. 레비나스의  성찰이 오늘날 함께 살아가기의 문제에서 중요한 성찰을 주고 있나봅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선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도, 세네카의 보답을 바라지 않는 도덕적 증여도 아니라고 합니다. 의례적 선물교환관계를 통해 닫힌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의 절대적 인정하는 행위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개시적이고 암묵적이고 계속적인 인정을 통해 국지적인 공동체를 재발명하는 것" (597).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에나프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인용하는 소설의 일부, 대공황기의 가난한 촌락의 모습을 통해 어떤 증여의 형태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레베카 솔닛이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보여주었듯이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상호연대 역시 그런 형태가 아니었을까.

 

마지막에 와서도 많은 것들을 풀어놓은 탓(?)에 책 전체를 잘 마무리한 세미나였다는 느낌은 부족했던 것 같다. 증여론을 읽을 때 헷갈렸던 부분들이 이번 책을 읽으면서 그 답답함이 많이 풀렸고(영감을 없애버렸다는 비판도 세미나에서는 나왔지만), 당연히 받아들였던 모스의 분석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당황스러웠던 부분도 많았다.  세미나는 이제 두 번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이 책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가게 될 것 같다. 

댓글 1
  • 2021-05-03 11:03

    👍👍👍👍

    정리를 엄청 잘해주셨네요.

    거의 에세이급!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부분은 어려워서

    세미나 끝나고 더 찾아봤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왜 레비나스를 소환했는지 짐작은 좀 돼요.

    저는 진리의 가격. 재밌었어요.

    이제 이것도 안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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