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다]<바베트의 만찬> 후기

자작나무
2017-02-2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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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문탁(주술밥상, <바베트의 만찬>, 1987, 감독 가브리엘 악셀)




2월 17일(금) 저녁 7시, 저녁을 먹은 직후였으나 ‘고로께’와 ‘뱅쇼’로 식탁을 가득 채우고, <바베트의 만찬>을 보았다. 주술밥상팀에게 이번 영화 상영은, 주술밥상 새 멤버를 환영하고 또한 또 기존 멤버들의 더 큰 활약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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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볼 영화를 선정하고 다양한 고로께 간식을 준비한 고로께님은 영화 상영 후, 영화 속 인물들처럼 함께 나누는 음식이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열고 병을 치유하고 행복을 갖게 하는 것처럼, 문탁의 밥상도 사람들에게 맛난 것뿐만 아니라, 감동과 행복까지도 주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나는 고로께님의 ‘진면목(^^)’을 그간 잘 볼 기회가 없었는데, 같이 주술밥상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특히 단품생산하는 금요일이면 그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폭발이다. 어떤 음식도 그녀 앞에서는 새발의 피다. 그냥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 그러면 뭐든지 만들어 줄 것이다. 어떻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대로 뚝닥뚝닥. 일처리도 척척.


 


다시 돌아가, <바베트의 만찬>은 덴마크의 어느 청교도 마을에 들어온 바베트라는 하녀가 복권에 당첨되어 얻은 만 프랑을 다 써서 자신이 기거하는 목사집 (늙은) 자매(와 마을 사람들을)를 위해서 한 끼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금욕적 삶을 살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생애 처음으로 프랑스 음식을 접하게 된다. 그것도 파리꼬뮨 당시 파리의 탑 클라스 음식점 세프였던 바레트가 마음을 다해서 마련한 만찬이었다. 바레트의 감사의 마음에 감동했던 것일까, 맛난 음식의 효과가 그런 것일까. 이들은 서로 마음을 열고 꽁하게 가져왔던 동생의 잘못을 용서하고, 아내에 대한 불만을 풀어내며 서로 용서와 화해의 마음으로 대동단결한다. 그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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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참석한 학인들의 감상도 대부분 비슷했다. 만찬에 참여한 12인의 행복해하는 표정, 화해하는 모습, 만찬이 끝난 뒤 서로 손을 잡고 우물을 강강수월래하며 노래 부르던 장면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음식은 사람들을 치유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연다. 하지만 행복은 이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손님들이 에피타이저부터 마지막 디저트를 먹는 내내, 그 옆 부엌에서 바베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음식을 준비했다. 그날의 만찬은 바베트가 자신을 받아들여준 마을 사람들에게 주는 감사의 자리이기도 했다. 14년 전, 파리혁명으로 가족을 잃어 초췌해지고 퀭한 눈으로 이 외진 마을로 도망 온 바베트를 품어준 마을에 대한.


 


그런데 재미나게도 그녀는 유명한 세프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맥주빵’을 만드는, 일견 창의적이지 않아 보이는 일들을 하면서 자신을 치유해갔고, 마을 사람들을 치유해갔다. 자매는 마을의 환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봉사를 하는데, 바레트의 맥주빵죽을 먹는 그들의 표정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보잘것없는 맥주빵으로도 사람들은 행복해했다. 행복을 주는 일을 하는 자, 바로 예술가다. 그렇기에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는 말처럼, 요리사도 가난하지 않다. 자신의 음식에 사람들이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담쟁이도, 밥티스트도, 그리고 주술밥상의 모든 당번들은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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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자면, 영화 속 12인 만찬은 복권당첨금 만 프랑으로 마련됐는데, 그 만 프랑이 지금 돈으로 치자면 얼마고, 그 식탁에서 먹은 와인이나 샴페인이 얼마나 귀중하고 고가인지 등등의 일대 소란(^^)이 잠시 있었다. 물론 식탁 위의 그 삐까번쩍한 식기라든가 촛대 등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거북스프 요리, 메추리요리, 벌꿀을 담은 빵 등등의 요리에 입맛이 다셔지기도(^^). 무엇을 먹는가, 물론 이 질문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무엇을 먹느냐보다도 식탁에 함께 ‘둘러 앉아서’ 함께 먹는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식탁은 평등의 자리이고 화해의 자리다. 12인의 식탁에 파리꼬뮨을 진압한 장군과 그의 친척 귀족부인, 가난한 마을 사람 그리고 파리꼬뮨에 가족을 희생당한 바베트가 하나로 있다. 문탁샘은, 같은 12인 식탁에는 앉지 못했지만, 장군의 마차를 몰고 온 마부와 서빙하는 아이까지도 그 맛난 음식과 술을 함께 먹고 있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이 영화 특히 마지막의 12인 만찬은 혁명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서 드는 생각, 주술밥상, 우리의 식탁도 음식을 통해서 평등과 행복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는 장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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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영화에 나오는 ‘맥주빵’ 레시피 ; <먼저, 빵을 물에 담가서 불린다. 그런 다음, 에일 맥주를 붓고 불 위에 올리고 휘젓어 죽처럼 끓인다. 그리고 먹는다. 팁: 만약 바베트처럼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다면, 허브라든가 소금이라든가 엠에스지(^^;)라든가 정성이라든가 마법 2숫갈을 넣으면 된다.>

댓글 4
  • 2017-02-20 23:08

    못 먹어서 배아픈 일인. 마치 차린 상 앞에 앉은 것처럼 후기가 생생하네요^^

  • 2017-02-20 23:54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금욕적인 종교적 삶의 태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렸다고 생각했었어요

    이번에 다시 보니 바베트가 준 것은 아낌없는 사랑이었고, 기실 바베트는 목사집 자매들에게서 그 사랑을 받은 것이었죠.

    그런데 바베트의 사랑은 목사집 자매들이 어찌할 수 없었던 반목하는 이웃들을 화해시킵니다. 사랑의 쓰리쿠션이랄까? ㅋㅋ

    역시 좋은 영화는 여러번 봐야 하나봐요.

  • 2017-02-21 07:08

    바베트의 만찬은 맛있게 본 영화지만, 왠지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보는 일은 힘들 것 같다..

    도입부를 놓치고 파지사유에 들어서니 한 남자의 사랑고백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딱 봐도 예술가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부르는 세레나데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바베트의 만찬이 끝난 후

    만 프랑의 돈을 한 끼의 만찬으로 모두 써 버리고 난 후,

    바베트가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는 말을 한 부분이다.

    사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터라, 이 대사가 나오기까지는

    무난하게, 예상한 대로 영화는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바베트의 입에서 흘러나온 '예술가의 가난함' 혹은 '가난하지 않는  예술가' 부분에서

    적잖이 놀랐고, 바베트의 모든 행동들, 그 전까지의 일어난 일들을 다시 불러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뭐, 영화는 언제나 되감기가 가능하니까...


    아주 단순하게 비교해 보자.

    사랑의 노래와 주방의 식탁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무엇이 메마른 가슴에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가?


    아주 단순하게 드는 생각은

    노래는 듣고 나면 사라지고, 음식도 먹고 나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일회성.

    같은 노래를 아무리 반복해서 불러도 그것은 그 전에 불렀던 노래와는 다른 노래다.

    같은 점심을 아무리 반복해서 차려도 그것은 그 전날 차렸던 점심과는 다른 음식이다.


    음식은 먹고나면 사라진다.

    만든 사람의 땀도 먹은 사람의 기쁨도.

    어디에 갇혀있거나 담아 둘 수가 없다.

    사랑의 노래로 10년을 살 수는 없다.

    노래는 그 순간에 사라지며 우리는 그 기억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 있어서 패스트푸드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을 상품으로 전락시킨 장본인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은 언제나 반복해서 먹을 수 있다.


    바베트가 만찬을 준비하기 전,

    바닷가를 거닐면서 불현듯 복권 당첨금을 만찬에 쓰겠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도 바베트가 파리의 최고의 요리사인지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그때만 해도 바베트가 무모하고 엉뚱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파리의 최고 요리사임을 나중에 알았을때

    그녀가 바닷가에서 결심한 것은

    '내가 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듯 하다.




  • 2017-02-21 10:28

    저는 영화를 보며 와인잔과 접시와 포크가 찰랑찰랑 부딪치는 소리가 좋았어요.

    뭔가 먹으며 영화의 만찬을 본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더군요^^

    글고 고로께님의 울컥하시는 부분 부분들!! 감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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