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미 선데이> 후기

라라
2016-12-28 09:41
500

파지사유 영화관에서의 첫 영화 <글루미 선데이>

그런데 왜 난 상영시간을 7시 30분으로 기억 한거지...

영화는 이미 초반을 넘어 가고 있었다.

지나간 장면은 대충 미루어 짐작해 버렸다.

 한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관계이다.

초반부를 놓쳐서 그런지 과연 이런 관계가 가능한가? 내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됐다.

독일군 점령하 부다페스트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은유인가?  영화는 여러 층위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사람이 사랑하는 영화는 설득도 되고 감정이입해서 보았었다.

그러나 일단 에로스관계는 윤리와 도덕을 떠나서 배타적 독점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성립이 어려운 관계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 몰입해서 보기 보다는 탐색하는 태도로 보기 시작했다.

에로스의 초기에 존재 전체가 온전히 몰입되지 않는 관계가 사랑일 수 있을까?

그녀는 이 순간에는 이 남자에게 저 순간에는 저 남자에게 전체로 몰입하는 것일까?

아니면 같은 시공간안에서 이 남자에게는 아버지 같은 따뜻한 안정감을 저 남자에게는 낭만적인 열정을 동시에 충족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녀는 두 남자를 통해 동시에 존재 전체가 충만해 지는 것일까?

음... 그렇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에로스가 꼭 배타적 독점이 아니어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

오히려는 두 사람만의 배타적 관계가 아닌 자유로운 확산적 관계가 존재를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루가 지나니 그들의 관계가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남자들의 입장은 어떤가?

그들은 ‘전부를 잃느니 반이라도 갖고 싶다’는 타협을 통해 이 관계를 유지 한다.

심지어 두 남자 사이에는 동지애적인 우정도 존재한다.

그러나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질투와 고통은 내재되어 있어 때때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세 사람은 나름대로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사랑하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성장을 돕고, 구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 애쓰고 있다.

거기에 일로나를 짝사랑했던(혹은 하는) 독일군 대령 한스가 나타나 폭력적으로 그들의 삶에 개입해 나간다.

한스에게 그들은 자신의 욕망(성욕과 물욕, 권력의 과시)을 충족하기 위한 대상일 뿐이다.

거절당한 사랑에 대한 복수였을까? 그는 일로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자 세체니 다리에서 투신까지 했었으니,

그의 좌절과 분노가 저열한 복수로 이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애초에 서로를 성장시키는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욕망충족을 위한 자기애적 사랑이었으리라.

한스의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결국은 자신도, 집착하는 대상도 파괴해 버리고 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파괴당하지 않았다.

비록 상처 받았으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키워냈고, 식당을 잘 운영해 왔고, 멋진 복수를 해냈다.

쉽지 않았을 시간들을 견디고 의연하고 품위 있게 나이든 일로나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들과 공유했던 사랑과 우정의 기억이 그녀를 지켜주는 힘이 되었으리라.

지금도 그녀는,  아니 그들은 사랑하고 있다.



ps)

역시 나는 형광등이다.

어제 영화를 볼때는 말똥말똥했는데 하루가 지나니 감정이입이 된다.

심지어...

목이 메어... 

울기 까지 했다.  

참 아름다운 영화다.

음악 글루미 선데이는 글루미하지만 우아하고 품위있었다.

댓글 2
  • 2016-12-28 10:17

    전 라라님을

    도스토예브스키를 낭독하시는 모습과 목소리를 통해

    그리고 이런 후기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후기에서 라라님이 어떤 분인지가 느껴져요. 저도 감정이입이 될라....해요^^

    감사합니다.

  • 2016-12-30 14:46

    영화보지도 않고 감정이입 확되서 울컥하는 저는 뭘까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4
<神 2탄 후기> 존엄사.... 어렵습니다. (3)
진달래 | 2017.04.14 | 조회 431
진달래 2017.04.14 431
73
<神1탄 리뷰> 신은 이웃에 살지 않고 내 안에 산다 (스포 가득^^) (7)
문탁 | 2017.04.10 | 조회 627
문탁 2017.04.10 627
72
[다큐제작-문탁인물열전] 4월의 인물_뚜버기 (5)
청량리 | 2017.03.25 | 조회 937
청량리 2017.03.25 937
71
<2017 4월 기획전> - 神 (7)
청량리 | 2017.03.14 | 조회 1180
청량리 2017.03.14 1180
70
<필름이다> 구로사와 아끼라의 '꿈' 후기 (4)
작은물방울 | 2017.02.27 | 조회 391
작은물방울 2017.02.27 391
69
[필름이다]<바베트의 만찬> 후기 (4)
자작나무 | 2017.02.20 | 조회 592
자작나무 2017.02.20 592
68
〔필름이다〕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후기 (3)
| 2017.02.11 | 조회 463
2017.02.11 463
67
[필름이다] 아웃오브패션 후기 (5)
띠우 | 2017.02.05 | 조회 481
띠우 2017.02.05 481
66
<2017 오프닝 특별전> 문탁 X 문탁
관리자 | 2017.01.22 | 조회 920
관리자 2017.01.22 920
65
[필름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3)
싸장 | 2017.01.02 | 조회 495
싸장 2017.01.02 495
64
<히로시마 내사랑>을 추천합니다
이다 | 2016.12.28 | 조회 499
이다 2016.12.28 499
63
<글루미 선데이> 후기 (2)
라라 | 2016.12.28 | 조회 500
라라 2016.12.28 50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