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기획전 두번째 영화 <아버지 없는 삶> 후기

청량리
2017-06-21 10:34
424

동네영화 배급사 [필름이다] 6월 기획전 '영화, 독립의 조건' 두 번째 영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버지 없는 삶'  후기




글 : 청량리


 

1. 아버지의 아버지를 찾아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결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곰돌이와 같이 일본 오사카에 간 적이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일본에 있는 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의 아버지를 만나고 오라는 것이었다. 대구에서 사과농사를 하셨던 증조할아버지는 장사 수완이 좋아서 그 지역에서 소위 잘 나가는 유지였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아들인 나의 할아버지는 어찌어찌해서 일본에 가게 되었고, 해방이 되어서도 돌아오질 못 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나의 아버지는 88올림픽 때 잠깐 건너온 당신의 아버지를 그 뒤로 보질 못 했다. 나도 사진으로만 할아버지를 본 게 전부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후,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를 만나고 오라는, 그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오하라 겐지죠, 나의 할아버지의 일본 이름이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받은, 할아버지의 일본 거주지로 추측되는 주소 한 장과 할아버지의 사진만 들고 나와 곰돌이는 오사카로 떠났다. 김포에서 오사카로, 다시 기차를 타고 물어물어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찾아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사무소 쯤 되는 곳에 찾아가서 오하라 겐지죠가 살고 있는 주소에 그가 실제로 거주하는지 여부를 물었다.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증명하는 족보(?)를 보여주고 어설픈 일본어와 손짓으로 담당 공무원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닌 할아버지의 신상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라 말해 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헌데 그건 그가 거기에 살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아니었다. 다소 허무하게 동사무소를 나왔지만, 얼마 동안 동사무소를 떠나지 못 했다. 이 동네 근처에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다는 생각에, 분위기라도 눈에 담아서 아버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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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하나의 길인 요코의 자전적 소설 '요코 이야기(원제:대나무 숲 저 멀리서)' 표지>  


2. 아버지를 찾아서

     이 영화에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요코와 마사코, 그리고 감독인 김응수의 길이다. 그 중에서 마사코만 화면에 등장한다. 참 독특한 영화다. 영상으로 쓴 에세이 한 편, 그러나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했던, 그래서 영상을 보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읽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던 에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는 필히 두 번 이상은 보게 만든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아버지와 결별하고 타국에서 살아가는 베테랑 이방인으로 살아가는마사코의 유년 시절 사진이다. 일본인이 담았다고 하는 사진 속의 어린 마사코는 너무나 밝은 웃음을 짓고 있다. 마사코가 살았던 고토(五島)에는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바람과 지루함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년시절 사진 속의 그녀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베테랑이 된 마사코가 잃어버린 것은, 체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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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와 남편, 냉장고에 붙은 사진이 마사코의 아버지. 퀴즈....남편의 성을 기억하시나요?>

     요코와 마사코가 등장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영화다.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한 것도 아니지만, 그의 나레이션만으로도 감독의 존재는 충분히 드러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감독이 자신의 나레이션을 자세히 들려줄 의도가 없는 듯이 다소 빠르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영상은 마치 요코의, 마사코의 심리를 표현하듯 화면 속의 움직임을 천천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가 이 영화를 자세히 감상하기 위해 정지와 재생버튼을 오가는 것은 감독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어떤 것은 천천히 가야 빨리 닿을 수 있고”, 어떤 것은 안개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나 감독의 메시지는 확실하다. 아버지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그가 상징하는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는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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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의 고향 고토섬....> 



3. 아버지가 없는 삶

     영화 속 아버지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요코의 아버지는 일본 군부의 생체실험의 주도자인 혐의가 짙고, 김응수 감독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며 박정희를 떠올린다. 마사코의 아버지는 결혼을 앞둔 딸에 대해 마음을 십 수년 전 이미 닫아버렸다. 나의 아버지는 어땠을까? 일제 해방 후 아버지는 아버지 없는 삶을 살아왔었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제대로 물어본 적이 아직은 없다. 그의 아버지의 부재는 나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언제서부터 아버지와 집에서 TV조선만 보게 되는 상황에서 그는 영화 속의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더 이상 아버지가 도전이나 반항의 대상이 아니게 되어버린 지금, 이제는 나의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없는 삶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나의 아버지가 아닌 당신의 아버지가 없는 삶 역시 그러하진 않았는지. 그러나 나는 이것을 섣불리 국가문제로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보다는 유년시절 마사코의 잃어버린 웃음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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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2017-06-21 11:13

    나는 감독의 뚝심과 뱃장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런 스타일이 늘어가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가 의외로 좋더라는

    나의 영화감상공식에 꼭 들어맞는 영화였다!!!

  • 2017-06-21 11:56

    요코의 길, 마사코의 길, 감독의 길에 청량리의 길이 하나 더 추가되었군요.

    마사코는 오로지 표정만, 감독은 오로지 목소리만.  그렇게 이질적인 두 개가 공존하는 방식이 신선했구, 신기했구, 좋았어요.

    '나라 잃은 백성'의 '나라'(=아버지=남성)을 빼면, 우리의 식민지 경험은 어떻게 표현될까요? -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 

  • 2017-06-21 17:17

    어머니로 이어진 역사든 아버지로 이어진 역사든 누구나의 몸과 마음에 흐르고 있는 현재로서의 역사.

    요코가 어떻게 해서든 정리하고 싶어했던 그것.

    마사코를 통해서 뭔가를 정리하고 싶어하는 감독.

    영화 끝나고 나눈 얘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분열적 정체성을 처음으로 인식했다고 할까요?

    저 또한 현대사와 함께 크게 흔들렸던 아버지의 형제들, 할아버지의 형제들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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