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하녀(김기영) 그리고 새털

관리자
2019-06-23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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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문탁네트워크가 이반일리치 읽기 세미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의 '기원'^^ 

그러면, 그 다음엔, 문탁네트워크가 동천동 875-2에 자리잡은 후에는 어떤 세미나가 만들어졌을까요? 즉 문탁을 만든 두번째 세미나는?

다음 중 골라보세요.

 

논어강독세미나  불교세미나   니체세미나   가족세미나   문학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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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며칠 후 알려드릴게요^^

어쨌든 초창기에 <가족연구세미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세미나 출범의 변이 이렇더군요.

 

"가족! 떠날수도 머물수도 없는 곳!!

친밀성의 장이자 국가의 통치전략단위이기도 한 곳!

가족연구세미나는 가족에 대한 지금/여기, 우리의 심성과 구조가 형성되었던 '60,70년대 가족'을 연구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구술사/생애사를 통한 가족연구를 수행하며

그를 위한 워밍업으로 6개월 정도 60,70년대 영화텍스트를 분석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영국 감독 조셉 로지의 하인(1963)하녀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주인과 하인의 권력투쟁을 심리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이 작품에서 무능력한 주인의 권력은 교활한 하인의 전략에 무참히 전복된다.

그렇다면 하녀는 어떠한가? 성관계 사실을 미끼로 주인남자를 협박하고, 주인여자에게 남편을 공유하자는 발칙한 제안을 내세운 하녀는 권력관계의 전복을 성취한 것인가? 아이들이 죽고, 비통한 어미의 울부짖음이 음산하게 울려 퍼지고, 하녀와 주인남자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 영화하녀에서 승자를 가리는 일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굳이 승자를 가려내자면 등장인물들의 파멸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스크린을 점유하고 있는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1960년대 중산층 가정의 로망인, 거실에 피아노와 텔레비전이 놓인 이층집은 등장인물들보다 우위를 점한 존재감으로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영화 초반에 은 자신의 실체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마감공사가 끝나지 않아 바닥에는 건축자재가 쌓여 있고, 어두운 조명 아래 알몸을 드러난 흉물스런 건축물은 자신의 물질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은 그저 철근과 시멘트로 구축된 물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폐허와 같은 그곳에서 여기는 안방이고, 바닥에는 리놀륨을 깐다는 주인남자의 과시적 발언에서는 작동중인 상품 물신주의의 마법적인 위력이 느껴진다. 인물들의 환상 속에서 은 이미 위풍당당한 이층집으로 완성되어 있다. 이후 흉물스런 건물의 내부는 말끔히 단장된 모습으로 감추어지지만, 이 임시적(잠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영화 전체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며 반복된다. 손님이 사온 과자봉지를 가로채기 위해 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툼을 벌이며, 우는 척 상대를 속이고 쥐다!”라는 거짓말로 상대를 위협하는 장난을 친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속이고 놀래키는 아이들의 장난이 어른들의 세계로 넘어올 때, 그것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닌 치열한 생존싸움으로 바뀐다. 과자봉지로 시작된 장난은 담배, 물컵, 쥐약, 남편, 생명…… 대상을 바꿔가며 공포의 잔혹극으로 변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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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층 상승의 로망, 1960년대 한국사회의 동력

 

방직공장 기숙사 여공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동식의 가족은 이제 막 중산층에 진입하였다.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동식 가족은 10년 동안 계속된 부인의 재봉틀 부업으로 집 장만의 꿈을 이루었다. 서양식 가구와 피아노, 고풍스런 장식품으로 꾸며진 이층집으로 이사 온 다음에도 부인은 쉬지 않고 재봉틀을 돌린다. 넓어진 집은 집안일을 대신 해줄 하녀를 비롯해서 더 많은 소비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한 부인의 헌신과 사랑은 상품의 구입소비와 소유 행위로 대체된다. 뿐만 아니라 과로와 피로감은 고통이 아니라 행복을 보증해주는 쾌감으로 전도된다.

중산층으로 진입하기 위해 부인이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는 도착적 행복에 사로잡혀 있다면, 남편은 성실한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의무감에 빠져있다. 동식은 자신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순백의 도덕의식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동식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부인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신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식의 사랑은 어린 여공의 연애편지를 기숙사에 고발하고, 하녀의 협박에 굴복해 간통을 하고, 자식의 죽음과 자신의 자살이라는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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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 부부가 중산층 가정의 로망을 완성하기 위해 도착과 강박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따라가고 있다면, 하녀는 상경한 시골 처녀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속물적 욕망을 학습해간다. 197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기 이전인 1960년대 공장 직공 자리는 상경한 시골 처녀들의 선망의 일자리였고, 대부분의 처녀들은 버스 차장이나 가정집 식모로 들어갔다. 영화 속 하녀 또한 공장 기숙사에 기숙하며 여공들의 허드렛일을 해주다 동식 부부의 집으로 식모로 들어간다. 상경한 시골 처녀인 하녀에게 공장 여공은 첫 번째 동경의 대상이 되고, 욕망의 모델이 된다. 공장 여공이 아니라 여학생에 가까운 패션감각을 선보인 여공 조경희는 하녀에게 동경의 대상이며 동시에 경쟁 상대가 된다. 하녀는 기숙사 여공들에게 담배를 배웠듯이, 여공 조경희에게 동식에 대한 연애감정을 배운다. 그리고 동식과 동침한 이후엔 하녀의 동경의 대상이자 경쟁 상대는 여공에서 동식의 부인으로 자리를 바꾼다. 어쩌면 이 과정은 아이에서 성인이 되는 평범한 성장의 절차로 보이기도 한다. 비극은 하녀에게 그 과정이 속성으로 학습되었고,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잔인한 진실에 있다.

동식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딸에게 쉬지 않고 쳇바퀴를 굴리는 다람쥐를 선물한다. 아버지는 딸의 건강을 염려해 교육적인 장난감을 선물하지만, 걷기 연습이 힘겹고 가족들의 걱정이 부담스러운 딸에게 아버지의 선물은 자신의 불행을 환기시키는 조롱으로 다가온다. 하녀의 임신사실을 부인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동식에게 부인은 새로 장만한 텔레비전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텔레비전 화면 속 경쾌하게 춤추는 여자 무용수들의 미끈한 다리는 동식에게 또 다른 조롱으로 다가온다. 의도하지 않게 선물은 받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아니 선물을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는지도 모른다. 1960년대, 6.25전쟁의 전후 복구가 마무리되고 미국의 원조 경제가 뿌리를 내려가던 그 시절, 새롭게 쏟아져 들어온 대중문화와 상업자본주의는 포장만 화려한 보잘것없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반문해본다. 힘들게 풀어본 선물이 볼품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선물에 대한 갈증을 더욱 부채질하는 맹목적 열정. 선물, 상품, 물질에 대한 맹목적 집착, 그 미친 사랑으로부터 나는 자유롭지 않다. 이제 다시 권력 투쟁이 시작된다면, 하녀와 주인집 부부의 대결이 아니라, ‘월드 와이드 웹으로 조여오는 자본의 질서와의 대결이다. 바리케이트를 치지가 쉽지 않다. 무엇을 할 것인가? 흑백영화를 보며 시대착오적 구호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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