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CDP 영화인문학 시즌1_<카프카, 유대인, 몸> 메모

모카
2024-04-04 10:15
68
댓글 4
  • 2024-04-04 21:49

    해방일까 추락일까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흉측한 갑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갑충으로 변한 몸은 정상적인 출근을 하지 못하게 한다. 벌레로 변한 탓에 째깍이는 자명종 시계소리 속에서도 늦잠을 자게 된다. 안그랬다면 새벽기차를 타고 출장을 가야할 것이고, 사장으로 부터는 실적을 올리라는 압박을 끈임없이 받을 것이며,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고 늘 그래왔듯이 일벌레 지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하고 나니 그 모든 압박으로 부터 벗어난다. 비록 흉측하고(흉측함이라는 것도 보기에 따라선 다라질 수 있다), 의사 소통도 못하고, 활동 공간도 좁아지지만 세상 편하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 부잣집 지하에 몰래 숨어살면서 먹을 것을 얻어먹는 남자의 모습과 비슷하다. 영화속 그 남자도 남이 보기엔 쓸모없는 잉여인간 처럼 보이겠지만, 그 남자 스스로는 얼마나 평온해 보였던 말이가! 그러니 벌레가 된 그레고르 역시 그를 옥죄던 일에서 해방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이를 완전한 해방으로 보기도 어렵다. 결국 그는 가족 관계에서 소외되고 타인의 경멸을 견뎌야 하니 말이다.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박탈 당하고,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는다면 그것은 비록 고된 일에서 해방되었다 할지라도 추락이라고 할 수도 있다.

    누가 변한 것일까
    소설의 제목이 <변신Die Verwandlung> 인 이유는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레고르의 외모는 하루아침 뜬금없이 갑충으로 변한건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이 단지 주인공 그레고르만의 변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 내 유일한 수입원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벌이를 하지 못하게 되자, 어쩔수 없이(혹은 적극적으로) 가족들도 변한다. 각각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돈벌이를 찾게 된다. 그러면서 그에 걸맞는 의복을 입게 되고, 그에 걸맞게 생활 습관을 바꾼다. 스스로 돈을 벌고, 위계상 더 높아졌다고 느끼기 시작하자 말투도 바뀐다.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여동생 그레타이다. 처음 오빠가 벌레로 변했을 때 가족 내 돌봄의 대상이었고, 잘 울고 수동적이었던 그레타는 거꾸로 오빠를 돌보면서(오빠가 자신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점점 오빠에게 뿐 아니라 가정내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다. 부모님에게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고, 취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기계발도 한다.
    "아버지, 어머니.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어요. 저는 이 괴물 앞에서 내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겠어요. 그냥 우리는 이것에서 벗어나도록 애써봐야 한다는 것만 말하겠어요. 우리는 이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다해봤어요. 그 누구도 우리를 눈곱만큼이라도 비난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내보내야 해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예요, 아버지.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해요"
    어쩌면 변신의 주인공은 그레고르 라기 보다는 그레타가 아닐런지...그레고르의 변신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라면, 그레타의 변신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보인다!

    그레고르가 죽고난 뒤, 나머지 가족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차를 타고 교외로 소풍을 간다. 애물단지 같은 벌레를 처치하고 나니 아들이 사라졌다는 슬픔은 커녕, 미래애 대한 희망이 싹튼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는 환담을 나누는 동안 생기를 띠어가는 딸을 바라보며 착실한 사윗감을 구해줘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그레고르 잠자를 대신해 줄 또 다른 희생양을 찾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건실하고 돈 잘 버는 사위를 구한다면 나머지 셋은 또 다시 예전처럼 사위에게 기생하는 사람들로 변할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 2024-04-04 22:58

    ‘자명종이 울리지 않았단 말인가? 시계가 4시에 제대로 맞춰져있는 것이 침대에서 보이니 울렸음이 분명하다. 그렇다. 그러나 온 가구를 뒤흔드는 이 시계소리를 듣고도 편안히 잘 수가 있었을까? 편안히 잠들지야 못했으나, 아마 그래서 그만큼 더 깊이 잠들었나 보다. 그러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다음 기차는 7시에 있으니 그 기차를 타려면 미친 듯이 서둘러야 할 텐데 아직 견본 꾸러미도 꾸리지 못한 데다 그 자신은 도무지 몸이 개운치 않을뿐더러 잘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급사가 5시 기차에서 기다렸다가 내가 그 기차를 놓쳤다는 보고를 벌써 올려 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자는 사장의 하수인으로 줏대 없는 위인이었다. 그럼 몸이 아프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거북하고 의심을 살 만한 짓이다. 그레고르는 오 년 동안 일해 오면서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
    -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으면서 정말 놀랐다. 알람을 듣지 못한채 자버려 지각 위기에 놓였던 내 일상의 한 순간이 저 구절과 정확히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20년 가까이 직장인으로 지내면서 가장 큰 고역은 다름아닌 늘 정해진 시간에 집밖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장거리 출퇴근일수록 이 압박감은 더욱 심해진다. 늦잠을 잔 순간 나의 성실함을 의심하는 시선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러면서 나의 무능을 자책하게 되는 것. 이런 자책감이 나를 ‘벌레’로 퇴화 시키는 순간이 아닐까.
    -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일의 굴레에 옭아매던 그레고르. 그러나 다른 가족들처럼 결근계를 쓰지도 못하는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에서 벗어난다. 그가 인간인 채로 늦었다면, 부모와 상사의 꾸지람은 물론, 자신의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에 빠졌을 것이다. 책임감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동시에 일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레고르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벌레로 변신 한 것은 그레고르 잠자가 택할 수 있는 하나의 ‘출구’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출근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이전에 ‘일하던 인간’으로서의 감각을 점차 잃어 가고, 그런 그를 가족들은 더 이상 가족의 일원으로 취급하지 않게되면서 그레고르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학술원에의 보고>의 원숭이 페터의 출구, 그레고르 잠자의 출구. 그들은 이 출구를 통과하며 이전의 그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물론 페터의 경우는 그레고르의 경우보다는 언뜻 성공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출구가 결코 파라다이스 같은 것은 아니다. 원숭이 페터는 작은 우리는 탈출 했지만 결국 더 큰 우리에 갇힌 셈이 되었고 그레고르 잠자는 노동의 굴레는 벗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었다.

  • 2024-04-05 06:45

    (p.186) 잠자에게 언어의 상실은 인간 세계와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이제까지 세계와의 교류에 있어서 자신의 내면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일상화되고 자동화된 매체로서 작동했던 언어를 버림으로써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p.187) 이 시기의 예술가들이나 작가들의 이러한 언어 위기에 대한 성찰은 다양한 시각에서 표출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몸이 언어보다 직접적이며 보편적이고 지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언어에 대한 대안으로 생각했다. (p.188) 주목할 만한 점은 글쓰기라는 예술의 독특한 표현 형태이다. 갑충인 잠자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사색을 하는 작가가 아니라 온몸으로, 그것도 자신의 체액으로 원시적인 흔적 남기기로서의 쓰기 행위를 한다. (p.181) 갑충으로의 변신은 부조리하고 또한 한편으로는 동물로의 퇴화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상황은 처음으로...착취당했던 삶에서 벗어나 글을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변신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징벌이나 저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빨간 페터가 언급한 바 있는 일종의 현실에서의 '탈출구'라고 볼 수 있다.

    * 일부러 책의 메모 순서를 조금 바꾸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듣는 행위'가 수동적 능동의 한 형태이며 엄청난 신체성의 변화를 요구하듯이 이번에는 '글쓰기'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듣는 행위가 타인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화이다. 글을 쓰는 것이 현실의 탈출구가 되는 건 비단 카프카나 잠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고미숙은 말한다. 쓰기만 하거나 읽기만 하는 사람은 없다고. 쓰기 위해 읽고, 읽고 나면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변신>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갑충'으로의 '외적 변신'이 아니라, 언어를 버린 후 내면을 되돌아 보는 행위로의 (온몸으로) '글쓰기'를 통한 '내적 변신'일 것이다.

  • 2024-04-05 14:21

    - 이제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갑충으로의 변신을 ‘죄에 대한 벌’과 ‘소원’ 사이에서, 즉 현실 압박의 결과와 현실에서의 탈출 욕구 사이에서 상충되게 해석해 왔다.(159p)

    - 빨간 페터도 잠자도 무엇보다도 그들의 의식과 다른 그들의 몸에 의해 타자화되고 정체성의 혼란을 인식한다. ... 몸은 자아에 대한 표상과 사회의 외부적 표상이 부딪치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변형을 일으킨, 즉물적 매체이자 장소가 되었다. 카프카에게 몸은 위기를 드러내는 매체이자 새로운 시작을 실험하는 공간이 된다.(214p)

    잠자의 변신을 현실에서의 탈출 욕구를 반영하는, ‘소원’의 의미를 띠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그리 공감이 되지 않는다. 자아를 찾고 싶고 탈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갑충으로 변한다고? 현실의 막중한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벌레로 변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체성을 고민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냥 ‘유럽 사회의 유대인 차별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 (이제는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차이가 아니라 그들의 생물학적 사회학적으로 구성된 몸의 담론에 의해 다시 구별되고, 이는 유대인의 몸으로 타자화되어 간다. -212p)

    ‘타자화되고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자신의 의식과 다른 몸’을 읽으며, 갑자기 임신했을 때의 몸이 오버랩된다. 만삭의 몸은 소설에 나온 갑충과 공통점이 많다. 불룩 튀어 나온 배(소설 속 벌레는 등이 튀어나왔지만), 누워 있다가 혼자 일어나기도 힘들고, 옆으로 잘 눕지 못하고, 다리를 바둥바둥거리는 모습이 임신했을 때의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 임신부의 몸은 ‘위기를 드러내는 매체이자 새로운 시작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나의 몸에서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지만, 이 과정은 분명 괴롭고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그 힘듦을 숨기기 위해 무수한 모성 신화와 가족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많은 여성들이 이런 신화에 혹해서(?) 임신과 출산, 수유의 과정을 겪는지도 모른다. 카프카의 ‘변신’을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임신했을 때 느꼈던 소외감과 몸의 변화, 사회와의 경계(문턱), 출산 후 삶의 변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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