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영화인문학> 내.신.평.가.#5 <와일드라이프>

띠우
2023-11-01 21:00
218

그럼에도 살아간다 (1시간 23분쯤)

 

 

영화는 14 소년인 조의 시선으로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면부터 계속해서 눈치를 보는 조의 태도 때문에 나까지 긴장이 되면서 미스터리인가 싶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며 보게 되는 조의 부모는 문제투성이.

 

처음에는 제리의 태도가 무책임해 보였다. 해고통지를 받고서는 자넷에게 어떻게 말할지 걱정이지만, 자넷의 격려에 금방 마음이 편해진다. 이전에도 반복된 것으로 보이는, 쉽게 일을 그만둬 버리고 자넷이 일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일하러 다니는 자넷 모습을 보기가 싫은 것인지, 말리는 자넷을 기어이 뿌리치고 산불을 끄러 떠난다. 어쩌라고? 그냥 자기를 믿고 기다리라는 태도다. 자신의 삶이 너무나 불안정한 (20세에 엄마가 되었던)자넷은 조에게 민낯을 보여주기도 하고 들키기도 한다. 시간 동안 제리에게 기대 살아온 자넷이 생각할 있는 것은 다른 남자였지만, 속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자신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다른 방법이 있느냐고 조에게 묻는다.

 

압권은 사람이 다시 집에서 만난 장면이다. 산림부에 일을 얻었으니 이사를 하자는 제리에게 자넷은 시내에 아파트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어진 말다툼 끝에 사람이 조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당신 인생을 낭비하게 했네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뽑은 장면은 이때의 조의 눈빛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한다고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 부모의 다툼을 나의 경험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부부싸움 짐을 들고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충격... 물론 사건은 지하실에 감춰둔 가방을 발견함으로써 훗날 우스갯거리가 되었지만 그때 울언니가 보여준 태도는 이후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냅둬, 일이나 였던 같다.

 

엉엉 우는 나와는 달리 언니는 냉정했다. 언니가 멋져 보였다. 이후로도 부모님은 싸움을 했겠지만 기억이 남는 게 없는 보면 나의 태도도 변했던 아닐까 싶다. 통계상 가정불화가 범죄자를 양산한다는 식의 이야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망가진 이유를 무조건 부모탓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부모 역시 처음일 텐데 말이다.

 

어떤 불행한 사건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는 복합적인 영향하에 결정될 것이다. 영화는 영업사원이 제리와 오리곤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넷, 성적이나 생활이 안정되어 보이는 조의 모습을 사진 장에 담으며 끝났다. 영화 중반에 사람들이 사진관에 오는 이유는 살면서 생긴 좋은 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었다.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보려고 사진으로 간직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때를 조가 기억하고 싶은 행복한 순간이라고 보면 어떨까.  그러고 보면 저 장면에서 조의 눈빛이 보여주었던 그 불안이 이제는 사라진 것도 같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을 결함을 받아들인 인간이 성장해가는 과정 중에 하나의 마디로 보는 것은 너무 안이한 해석일까.

댓글 3
  • 2023-11-02 17:42

    3:23
    “불은 도움이 될 때도 있단다. 덤불을 제거해서 숲을 재생시키지
    그 목재로 언젠가 너희 집을 지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 산불은 통제 불능 상태야…
    연기는 정말 위험하단다. 티 안 나게 폐를 망가뜨리거든”

    이들 가족이 맞이한 현실은 영화 초반 몇 마디에 압축되어 있다. 산불은 영화 내내 중요한 소재이자 은유로 등장한다. 제리는 진의 요구를 외면하고 산불을 끄러 떠나고, 결국 진은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다른 선택을 한다. 엄마 아빠의 혼란 속에서 아들 조는 성장한다.

    스무 살에 결혼해 아들을 낳고 낯선 곳에서 친구 하나 없이 지내던 진.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자신을 떠난다. 다른 남자를 의지하며 상황을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그 남자는 돈을 통해 여자들을 낚는 늙은 부자일 뿐이다. 생계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해도 진의 행동에 박수를 칠 수는 없었다. (물론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굳이 산불을 끄러 간 제리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의지’와 ‘의존’은 다르다. 둘 다 ‘다른 존재에게 기대어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의존’은 홀로 설 수 없는 상태를 함축한다. 진은 타인에게 의존적이었다. 남편, 아들, 그것도 아니면 돈을 가진 또 다른 남자. 영화의 결말에 홀로서기에 성공한 듯 보이지만 앞으로의 상황도 쉽지는 않게 느껴진다.

    이 가정에 붙은 불이 숲을 재생시키는 것일지, 티 안 나게 폐를 망가뜨리는 불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현실에 조와 같은 아들이 흔하지는 않기에, 영화의 마지막이 씁쓸하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KakaoTalk_20231102_174033514.jpg

  • 2023-11-02 21:54

    "차분하게 경험해라" 아버지가 술 취해 고함칠 때 어머니가 하시던 말이야 (1시간 5분 즈음)
    -
    엄마 아빠 보다 더 철이 든 것 같은 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엉망 진창인 삶(Wild Life)를 차분하게 경험해 나간다. 만 15살의 소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 아이의 차분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빠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거나 도망가버리기 일쑤이며 어머니는 몬태나 시골까지 흘러온 시궁창 같은 삶에서 자신을 구해줄 누군가를 찾는다. 그 와중에 오직 아이만이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자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숙제를 하고 학교에 가면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 현실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묵묵히 견디는 마음, 그 마음이 아이를 누구보다 차분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한창일때는 도무지 꺼질 것 같지 않았던 산불이 눈 내리는 겨울이 오자 저절로 사그라 드는 것처럼 삶의 구원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닌 충실한 삶 가운데서 비로소 맞이하게 되는 것일지도.

  • 2023-11-03 00:55

    와일드 라이프

    24:00~25:00

    사람들이 여기 오는 건 살면서 생긴 좋은 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란다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보려고 사진으로 평생 간직하는 거지
    그걸 돕는 게 우리야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들 역의 배우가 너무 폴 다노랑 비슷하게 생겼다!라는 것이었다. 아들인 조는 말 그대로 ‘와일드 라이프’를 사는 부모님 사이에서 조용히 눈치를 많이 보는 캐릭터라, 폴 다노가 자주 맡는 역할들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영화는 갈등을 겪는 부부를 아들인 조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 역할을 하듯이.. 그래서 더욱 조라는 인물의 설정을 감독 자신과 비슷하게 만들어 넣은 것이 재미있었다.
    아직 14살인 조는 나이에 비해 철든 것 같지만, 영화 내내 계속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사진관에서만큼은, 면접을 볼 때부터 당차고 믿음직스러웠다. 그 이유는 사진관에서는 정해진 일만 하면 되기 때문일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집, 그리고 학업과 풋볼 어느 쪽에도 집중을 할 수 없는 학교에 있는 것보다 사진관이 조에게는 편하지 않았을까? 사장님은 사람들이 사진관을 찾는 건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 마지막에 엄마와 아빠, 조, 세 사람이 다 같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며 끝나는 엔딩장면을 보면서는 아~ 뭐야~ 너무 클리셰잖아~ 소리가 나왔지만, 왠지 모르게 내 얼굴은 갸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효자구나~ 서늘한 가을에서 추운 겨울로 넘어가는 때에 보기 딱 좋은 영화로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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