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영화인문학> 2주차: 내.신.평.가. #2 <스위스 아미 맨>

띠우
2023-10-11 18:26
234

2주차: 내.신.평.가 #2 <스위스 아미 맨>

 

 

브리콜라주, 행크와 매니의 관계맺기 (49~55)

 

주변 물건을 이용하며 마주한 상황에 적응해가는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장면. 브리콜라주(Bricolage) 손에 닿는 대로 아무것이나 이용하는 예술 기법을 말하는데, 영화에서는 매니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여러모로 보여준다(다용도칼처럼). 이야기 전반부에서 매니가 바다를 가르는 모터보트,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는 순간 관객의 얼굴은 우웩... 그런데 후반부 새라를 기억하며 함께 버스를 만들고 여장을 하면서 사냥도구나 샤워기 등이 되는 모습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는 이상한 경험도 하게 된다. 버려져서 쓰레기라 여겨진것들(물건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새로운 활용. 이는 고정된 관계맺기가 아닌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고려한 자세다.

천생연분은 같아...

분장한 행크를 새라로 생각하며 말하는 매니.

순간적으로 행크는 현실세계로 돌아가기보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세계에 머물고 싶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바로 이때 자동차가 보이고 휴대폰이 터지며 현실세계로 되돌아온다. 휴대폰에 바로 떠오르는 수많은 sns 오늘날의 표면적 관계맺기의 방식을 상징하는 듯하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장면만을 캡쳐해 소통하는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똥은 이야기의 전후반을 관통해 나간다. 처음에 똥과 쓰레기를 버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던 행크는 모두의 똥이 섞이면 언젠가 기대할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더럽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면서 행크는 자신을 내리누르던 두려움 속에서 한발 내딛는다. 똥도 쓰레기도 쓰임새는 달라질 있듯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존재자체를 인정하는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댓글 7
  • 2023-10-12 15:09

    <스위스 아미 맨> 1:02:34

    영화 곳곳에 많은 상징이 있었지만, 행크가 매니를 물속에서 구하고 함께 솟아오르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행크는 죽어가는, 아니 이미 죽은 매니가 물 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본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끌어올린다. 전날 밤에 망설이던 키스를 하고 둘은 기쁜 표정으로 솟구쳐 오른다.

    행크는 자기 자신을 억누르며 사는 것에 익숙하다. 왠지 도덕적이었을 것 같은 어머니는 일찍 죽고, 아버지와는 서먹한 사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도 걸지 못하고 몰래 사진을 찍어 휴대폰 배경 화면에 간직하며 산다. 아마 친구도 거의 없을 것이다. 도덕과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에 비해 매니는 시도 때도 없이 본능을 발산한다. 남의 눈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크가 절대 이룰 수 없던 것들을 매니는 죽은 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그리고 매니가 없었다면 행크는 무인도에서 마지막을 맞이했을 것이다.

    행크가 매니를 끌어안고 솟아오르는 모습은 죽어가는 자신의 본성을 건져내는 것처럼 보였다. 둘은 결국 하나다. 매니는 행크의 또 다른 자아이며, 억눌린 본성이다. 행크는 매니와 함께 해야 행복함을 알고, 망설임 끝에 결국 자신과 화해하고 해방감을 느낀다.

    처음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아, 인간의 상상력이 정말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영화를 얼마나 더 봐야 놀랄 일이 없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유쾌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의미가 느껴져서 좋았다. (거기엔 영화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

    KakaoTalk_20231012_144316381.jpg

    • 2023-10-12 16:43

      이런! 해석이 훨 재밌네요.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1.2배속으로 겨우 보고나니 뭘 써야할지. 무슨 장면을 골라야할지.
      아니. 내가 뭘 본건지.
      도대체 모르겠군요.
      영화인문학. 만만치 많군!

  • 2023-10-12 17:46

    스위스 아미 맨.
    내가 고른 씬: 영화 시작하고 50분정도.
    행크와 매니가 그야말로 무장해제된 모습으로 노는 장면과 음악. 그 때 행크가 진심으로 행복해 보인다. 매니를 통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배우는 것 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동등하게 친구가 된다. 행크 뿐 아니라 죽은 매니의 얼굴에도 핏기가 돌면서 눈이 반짝인다.

    매니는 행크의 또 다른 자아 처럼 보인다. 자신을 표현하길 꺼리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외로운 행크. 그에 비해 몸의 표현에 아주 거침이 없고, 사랑을 직설적으로 요구하는 매니. 둘다 모두 행크이다.
    매니는 평소에 자신의 다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눌러 왔던 것일 뿐, 그것이 조난 이라는 극한 상황에 부딪히자 서서히 드러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본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e)가 생각났다. 인도의 수줍은 소년 파이도 바다에서 풍랑을 맞아 몇 몇 동물들과 함께 망망대해에서 조난을 당한다. 파이의 표류 생활에는 사납고 무서운 호랑이가 끝까지 함께 한다. 파이는 호랑이의 야생성 앞에서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온갖 기가막힌 고생을 하는데, 결과적으론 호랑이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호랑이는 또 다른 파이 였다. (감독의 트릭이 대단했음) 생존이 위협받는 극한 생황에서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파이의 야수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영화를 너무 재밌게 봐서 스위스 아미 맨을 보는 동안 속으로 비교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나라면, 저런 극한상황에서 내면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게 될까, 나는 무엇을 억누르고 있을까 생각해봤다. 표류라는 극한상황이 아니더라도 내가 감추는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야 인생이 더 자연스럽고 기쁠까.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나도 행크처럼 도덕, 규범, 사회, 체면 속에서 삐걱대며 살고있으며 그래서 더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못 누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든 소위 '방귀'를 뻥뻥 속시원하게 뀌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2023-10-12 22:27

    시체와 사랑을?
    행크는 시체를 매니라는 이름을 지닌 친구로 만들기 전 동굴안에서 “너는 ‘다용도맨’이야”라고 말한다.
    매니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냐고 할 때 행크는 감춘다고도 한다.
    감추는 면에서 쓰레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매니 너는 다용도 맨이야 땅땅땅
    행크에게 일용할 물과 음식을 주는 구세주.
    반면 마지막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냈을 때, 행크는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매니는 이해할 수 없다. 너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찌르고…하여간 뭔가를 해놓고 나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지?
    행크의 대답은 추하고 두려운 나는 이 세상에 ‘무용지물’이야.
    다용도맨과 쓸모없는 맨으로, 하여간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인간의 지위가 바뀐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인상깊었던 것은 어째서 죽은 인간이 무지 쓸모있는 인간으로 될 수 있었을까?

    동굴에서 시체가 말을 하고 얼마안있어서 행크는 매니를 살아있는 인간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기억을 찾아주고 신체가 욕망에 반응하고, 머리로 생각을 하는게 인간이라고 친절한 설명과 함께.
    그런데 그런 행위에서 행크가 더 즐거워한다. 매니는 구세주가 맞다.
    이런 관계성, 즐거움이 날로 커지고, 사랑이 뭔지 어렴풋이 알게되는 그 기원은 무얼까?
    아마도 매니의 저 한마디, 그리고 태도가 아닐까한다.
    “나는 이제 무얼해야할까?”

    제목_없는_아트워크.jpg

  • 2023-10-12 22:57

    무인도에 조난당해 구조될 거란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던 찰나, 행크는 진짜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한 구의 시체가 바닷가로 떠내려 온 것이다. 행크는 뱃속이 가스로 들끓는 시체 매니의 힘을 빌어 무인도에서 탈출에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한다. 내가 고른 신은 살아있는 인간 행크와 시체 매니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 되는 부분. (25분 45초)
    무인도에 고립되면서 삶에 대한 감각을 잊었던 행크는 ‘인생이 뭔데?’ 라고 묻는 매니가 삶에 대한 기억을 되찾을 수 있게 도우면서 더불어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인생이 뭔데? 라는 질문의 답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즐겨 먹었던 치즈볼에 대한 기억, 재미있게 봤던 영화, 내 목덜미를 선뜻하게 만들었던 사랑의 기억들. 이 기억들을 스위스 군용 칼처럼 다재다능한 매니의 도움을 통해 숲속에 재현해 낸다. 매니는 죽었다. 이미 삶에서 멀어진 자를 마주하면서 오히려 삶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 내는 것. 이 영화가 지닌 매력적인 역설인 듯하다.

    image01.png

  • 2023-10-13 01:05

    스위스 아미 맨

    1:16:46 ~ 1:18:48

    누구나 조금은 추해
    다들 쓸모없고 죽어가는지도 몰라
    딱 한 명만 그 사실을 인정하면
    모든 사람이 노래하고 춤추며 방귀를 뀔 거야
    덜 외로워질거라고

    내가 고른 장면은 영화 막바지에 나오는 행크와 매니의 뒷마당 싸움 장면이다. 행크는 곰에게 먹힐 위기에 놓인 순간, 매니와 인생과 똥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마치 지금까지의 자신과는 조금 달라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날, 매니는 다친 행크를 등에 업고 좋아하는 여자의 집에 도착한다. 행크가 도망치려하자 매니가 행크를 붙잡으면서 둘은 엎치락 뒷치락 싸우기 시작한다. 행크는 스스로를 혐오하는 자신을 털어놓고 매니는 그런 행크를 보고 멋진 대사를 날린다.
    이 장면 속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하는 매니의 대사에서 영화의 주제가 가장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스위스 아미 맨.. 보기 전에도 특이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각오하고 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져도, 방금 본 장면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또 다른 이상한 것들이 바로 바로 나타나 영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장면을 고르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사실은 앞부분의 사정없이 몰아치는 웃긴 장면들 중 하나를 고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초반은 30초에 한 번씩 이게 대체 무슨 영화지 하며 정신없이 신나게 봤는데, 뒤로 갈수록 스리슬쩍 영화의 숨겨놓았던 주제, 메시지가 등장하자 신나는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다니엘스 감독의 영화는 마치 어머니의 볶음밥... 정신없이 먹다 보면 내가 안 좋아하는 야채가 숨어있을 것 같다. 그게 참 따뜻하긴 하지만.. 참 건강하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안 간다... (물론 저희 집의 볶음밥은 맛있습니다 진짜루..!) 에에올도, 아미맨도 분명 다 본 후의 만족감이 충분한데 왜 자꾸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드는걸까.

    2주차02.png

  • 2023-10-1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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