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끄는 짐승들> 2회차 메모

관리쟈
2024-04-15 20:38
92

이번 분량에는 그 유명한 '2달러짜리 치료약'이 나오는군요

장애를 치료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도, 장애에 어떤 가치도 없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군요.

개인적으로는 치료받고 싶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꼭 장애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걸까라고 질문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장애를 지닌 몸이 가치가 있다는 것이 곧 치료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과 일치할까라는 질문도 

가능할 것 같아요. 

장애학이야말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의 세계를 밀어낼 수 있는 복병이었네요. 

우리 세미나 팀 분들이 행동과 마음이 많이 일치하는 분들이라 힘겨워하시는데,

그 또한 장애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으니(아닐 수도 있지요)

다른 공부와 똑같이 탐구해봅시다.

 

저는 발제를 조금 뺏어왔어요. 메모보다 나은거 같아서 ㅋ

발제자님 제 발제도 같이 복사해주세요^^

댓글 9
  • 2024-04-16 12:36

    메모 올립니다~~ ^^

  • 2024-04-16 22:12

    저도 올려요

  • 2024-04-16 23:08

    올려요

  • 2024-04-16 23:48

    올립니다

  • 2024-04-17 00:06

    올립니다

  • 2024-04-17 00:08

    동물임을 자처한다는 문제

    장애운동과 동물의 권리 운동이 양립할 수 있을까? 원리상 두 주체가 서로 반목할 이유가 없어보이지만 차별의 역사를 보면 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동물에 비유하거나 장애인을 분리 감독하는 도구로서 동물화를 사용해왔다. 헤리엇 맥브리아트 존슨의 말처럼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기 때문에, ‘종들을 넘어서’라는 싱어의 호소는 꿈도 꿀 수 없는 사치”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즉 동물화의 끔찍한 폭력이 가해져왔던 역사적 맥락에 있는 장애 운동의 지반에 서서 “동물임을 자처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동물화라는 잔혹한 현실을 비판한다”는 것은 힘든 문제이다.
    사실 인간의 존엄을 옹호하기 위해 종차별주의에 편승하고 동물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동물을 향해 휘두르는 그 폭력은 그대로 인간에게도 향한다. 테일러는 그렇기에 동물들이 우리의 친족이라는 인식을 가진다면, 동물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인간 폄하가 아니라 종차별주의의 폭력에 대한 저항의 방식 아닐까라고 동의를 구하고 있다. 즉 동물의 해방이 곧 인간 해방과 얽혀있음을 인식하는 방식이지 않냐는 것이다. 하지만 <지적장애의 얼굴들>의 저자 리시아 칼슨은 “어떤 사람의 동물성이 강조되고 착취되었는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개략적인 수준에서 동물성을 다시 주장할 수 있는가”라며 반문한다. 즉 인간성 자체를 부정당하는 이들을 간과할 위험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일러가 프릭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떤 함의를 지니는 것일까? 스스로를 개구리 소년이라고 칭하고 또 말년엔 인간담배공장으로 호칭을 개명했던 오티스 조던은 프릭쇼를 즐겼으며 매우 능동적이었다고 한다. 프릭쇼의 에피소드는 좀 당황스러웠다. 줄거리만 대충 아는 영화 <위대한 쇼맨>도 착취를 감동스토리로 미화 각색했을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사이드쇼의 프릭 공연가들 중 많은 수가 스스로 장애의 경험을 “독특한 숙명이 아니라 문화적 소수의 경험”으로 여기며 프릭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인식해왔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테일러는 프릭의 역사로부터 용기를 얻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읽어내는 것 같다.
    테일러는 장애 문화에 “동물로의 전환animal turn”이 일어나고 있는 조짐을 본다. 캐리 울프와 같은 포스트 휴머니즘 연구자는 “동물학과 장애학이 어떻게 인본주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으며많은 운동가와 학자들이 “동물과 장애인 그리고 환경에 가해지는 억압들 사이의 연관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길잡이 삼아 우리도 테일러의 질문을 따라가 보아야겠다.

  • 2024-04-17 00:48

    존재론적 전회

    피터 싱어의 “당신이나 당신 아이의 장애를 치유할 수 있고 그 비용도 겨우 2달러에 부작용도 전혀 없다는 것이 보증된 알약을 누군가 준다고 해도 그 알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라는 질문에, 수나우라는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답한다. 왜냐하면 장애는 이 세계와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나우라는 누구에게도 입을 사용해 무언가를 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입으로 커피잔을 받아 옮길 수도 있다) 모든 것 하나하나에는 어떤 차원의 창조성과 혁신성이 깃들어 있다. 이로 인해 좌절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몸의 모든 측면이 미리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아주 해방적인 일이다. 수나우라는 장애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장애인들이 많다고 믿는다. 자신이 장애인임을 항상 꼭 즐긴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장애는 예술이다. 그것은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다.”(닐 마커스)

    ‘존재론적 전회’와 닿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존재론적 전회를 이끄는 인류학자들은 퍼스펙티브가 사물 자체에 내재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퍼스펙티브는 신체성과 관련된다고 했다. <부분적인 연결들>에서 스트래선은 퍼스펙티브가 신체성에 결부되고, 신체성에 결부된 퍼스펙티브는 마음 먹는다고 바꿀 수 있는 관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관찰자의 시점은 결코 세계를 재현할 수 없다. “지도는 존재하지 않고 만화경같이 한없이 뒤바뀌는 치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수나우라가 얘기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세계는 비장애인이 느끼는 세계와 다를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들의 세계는 굉장히 다른 시간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비장애인은 그 불구의 시간에 대해 모른다.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의 대담. 카스트루는 사물과 혼의 차이가 신체의 차이에서 온다고 한다. 아마존의 형이상학에서 혼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으며 신체적, 물질적 장치의 차이로 인해 그 역량과 능력이 다르게 구현되는 것으로 인지한다. 요컨대 아라웨테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그렇기에 다른 자연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자연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카스트루는 강조한다. 기존의 다문화주의는, 예컨대 우리는 다 다른 사회에 살고 있고 다른 문화권에 있지만 그 다른 문화들을 각각 존중하면서 다원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 각자 문화는 다르지만 자연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을 파악하는 우리의 인식도 하나밖에 없다. 그렇게 자연과학이 등장했다. 객관으로서의 자연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자연)과학이라는 것도 딱 하나 밖에 없다는 게 다문화주의 바탕에 깔려있는 과학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그것을 전복하는 것이 카스트루가 주장하는 다자연주의. 표범이나 인간이 느끼는 자연이 다 다르다. 각자가 느끼는 자연이 종마다 다르고, 자연은 각자 다른 것이다. 그리고 퍼스펙티브주의에 있어서 모든 장소는 특권적이고 모든 지점이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특권적인 장소는 어디에도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다자연주의, 퍼스펙티브주의는 존재론적 아나키즘을 전개시킨다. 수나우라 역시 그러한 듯하다.

  • 2024-04-17 08:09

    메모 취합입니다

  • 2024-04-17 09:30

    늦어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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