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영화인문학 시즌1> 내.신.평.가.#4 <나의 문어선생님>

청량리
2024-05-03 07:20
86

내.신.평.가. #4

<나의 문어선생님>(2020) | 피파 얼릭, 제임스 리드 감독 | 출연 : 크레이그 포스터, 암컷 문어 | 85분

 

내.신 : 1:13:32 ~ 

평.가 : 여러 이유로 바다를 찾는다. 크레이그는 우연히 바다에서 암컷 문어를 만났다.

그 만남을 통해 무언가 그의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매일 암컷 문어를 만나러 바다로 들어갔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그 1년 여의 기록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어와 크레이그 사이에 관계도 두터워졌다. 

크레이그도 암컷 문어에게 다가가기 위해, 알기 위해, 천천히 다가간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물속에서 '말'이라는 언어는 소용도 없다. 낯선 존재와 소통하기 위한 크레이그의 '몸짓'들이 눈에 들어온다.

급하지 않게, 꾸준하게, 경계심 없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타인을 만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암컷 문어 역시 짝을 만나 알을 낳는다. 문어의 삶이 생각보다 그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 

알을 낳은 뒤, 문어는 굴 밖으로 나오며 숨을 거둔다. 

크레이그는 그 문어를 다른 물고기가 뜯어먹지 못하게 막았을 수도 있었다. 데리고 나와 묻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 역시 낯선 존재와의 관계 맺는 방식일까? 

마지막 문어의 죽은 몸을 입에 물고 가는 상어를 따라가는 크레이그.

영화가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이러한 '거리두기'였다. 이건 너와 나의 소통에 필요한 걸까?  

 

그는 울먹이며, 솔직히 마음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라 고백한다. 매일 같이 그 암컷 문어를 만나러 가고, 

하루 종일 그 문어만 생각났던 것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라고. 보통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나?

그는 암컷 문어와 사랑에 빠졌던 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올 여름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잠수를 배워야지

하지만, 영화 속 배경같은 다시마 숲을 절대로 못 볼거라는 생각도 든다.  해수온도 상승, 기후위기...

문어는 물고기에게 뜯어 먹혀 흔적 없이 바닷속으로 흩어진다. 

대신 티벳에는 '조장(鳥葬)' 이라는 게 있더라. 시신을 독수리나 까마귀 같은 조류에 뜯어먹게 하는 장례다.

문탁 공부방에는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원칙이 있다. 비단 공부 뿐만이랴. 

어떻게 죽을까, 도 생각을 해 본다. 

 

 

 

 

 

댓글 8
  • 2024-05-03 10:44

    지난 해 읽은 책 <분해의 철학>에는 자연계에서 동식물들의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 죽음이란 한 생명이 다하는 것이면서, 다른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것. 부산물을 남기는 것. 사체 분해의 과정은 영겁도록 이어지는 것. 사체 분해의 과정에서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라는 생태계 용어가 뒤섞이고 만다는 것. (상어는 소비자이면서 분해자가 되었다. 문어는 소비자이면서 분해의 대상이 되었다.)등등

    이번에 본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중에서 문어는 새끼를 낳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정말 죽은 몸을 내 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닥에 몸이 떨어진다. 새끼를 낳으면 몸이 다 세하고 죽는구나, 그럼 새끼는 혼자 알아서 크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온갖 작은 fish들이 달려들어 죽은 문어를 물어 뜯는다. 그리고 문어가 살았을때 못잡아 먹어 안달이었던 상어까지 달려들어 문어를 덥석 물고 간다. 살아서는 앙숙같았고 쫒고 쫒기는 사이였는데, 죽어서는 고스란히 몸을 내준다ㅠㅠ 상어는 배부르게 먹었겠지...먹다가 흘린건 다른 애들이 건져먹었겠지..그리고 잠시 바닷속에 배부름이 찾아 왔을테고, 그 배부름이 새끼 문어를 한동안은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다.
    숭고해 보였다고 말한다면 과장이고, 클래식한 BGM과 함께 촬영된 그 장면이 (잠시) 뭉클했다.

    최근에 서해님이 나이듦 연구소에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라는 글을 올린 것을 읽었었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희망인가 싶었다. 조장도, 퇴비장도 전혀 논의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다른 동식물을 풍요롭게 하는 시체가 될수 있을까?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가능할까?

    장례의 양상
    영겁도록 이어지는 것은 바로 이 분해의 공동작업, 바로 그것이다. 분해는 한 개체에서 완수될 수 없다. 분해하는 측의 복수의 행위자들의 협력관계만 아니라, 분해하는 측과 분해되는 측의 암묵적 협력 관계가 전제이다.

    죽음이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재생을 축원하는 야생의 축하회이기도 하다.

  • 2024-05-03 14:24

    9:50~10:50, 19:25~

    문어의 눈, 인간의 눈, 카메라의 눈

    - 영화는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인간과 문어의 소통과 교감이 이렇게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그려지다니. 바닷속 장면과 주변 경관, 음악과 대사까지 예상보다 훨씬 세련된(?) 다큐멘터리였다. 내가 지금껏 알지 못한 문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먹이를 얻고 천적과 싸우지만 가끔은 삶을 즐기고 흔적 없이 죽어가는 문어의 모습에서 여러 교훈도 얻었다.

    - 영화에는 눈이 많이 등장한다. 문어의 눈이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오는데, 어쩌면 문어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눈을 여러 차례 가까이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의 눈. 문어를 통해 삶의 의욕을 다시 얻고,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눈이다. 그 사이에 사람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눈이 있다. 처음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찍는 또 다른 눈이 있다. 인간이 걸어가는 모습, 생각하는 모습 등 인간과 문어의 소통을 조금 떨어져서 찍는 또 다른 눈이 존재한다. 멀리 하늘에서 찍는 듯한(드론 같은?) 눈도 있다. 그리고 또 이들을 화면으로 바라보는 많은 눈들이 있다. 컴퓨터 화면이나 태블릿, 그것도 아니면 휴대 전화의 사각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눈들.

    - 문어는 어땠을까. ‘트루먼 쇼’는 아니지만, 누군가 계속 나의 삶을 지켜보고, 또 누군가들이 자신을 통해 깨달음과 흥미를 얻었다는 것이. 상어에게 쫓겨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리를 물어 뜯기고, 짝짓기를 하고, 죽어서 해체되는 과정을 수많은 눈들이 지켜보고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면. 문어는 어떤 기분일까.

    - 문어는 선생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구의 도움도 없이(물론 주변 모든 존재의 상호 의존이 있지만) 스스로 삶을 꾸려 나가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인간은 문어, 나무, 곤충 등 그 무엇이든 선생님을 삼고, 더 나은 삶을 찾는다. 우리 인간들은 끊임없이 교훈을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가치를 부여한다. 이제 해답은 문명이나 발전이 아니라 자연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굳이 극지방이든 아마존 한가운데든 바닷속이든 위험을 무릅쓰고 탐험한다. 무언가를 대상화하여 그것을 통해 깨닫지 말고, 그냥 숨 쉬고 먹고 평온한 존재로 살면 좋을텐데…….

    KakaoTalk_20240503_125514980_01.jpg

    • 2024-05-03 14:25

      인간의 눈, 카메라의 눈

      KakaoTalk_20240503_125514980.jpg

  • 2024-05-03 14:57

    time : 21:12

    “she walks” 문어의 두 다리가 나와 걷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문어의 다리는 걸을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 숨겨둔 다리라니.. 내 귀와 눈을 의심해서 자막을 영어로도 돌려봤다.

    -

    time : 01:08:29

    혼자서 많은 것을 배워나가야 했던 반사회적인 문어가 물고기들과 장난을 치고 인간에게 몸을 밀착하는 행동은 오늘 아침에 우리 집 풍경을 떠올리게 하였다.

    우리집의 2살 된 스트릿출신 검은색 고양이 까망이가 갑자기 13살 된 아이보리색 강아지 라운이에게 엉덩이를 들이미는 것이다. 등을 한껏 치켜들고 꼬리를 흔들며 엉덩이를 계속 들이밀었다. 라운이가 반응이 없자 까망이는 발로 한 두 번 툭툭 친다. 이 행동을 보고 엄마와 나랑 언니는 놀래 하며 각자의 해석을 늘어놨다. 언니는 친해지려는 행동이라고 했고 나는 싸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석이 이렇게 많이 다른 이유는 각자가 생각하는 까망이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종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참 어렵다. 그럼에도 같이 살기 때문에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야 한다. 까망이와 라운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해석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배우게 되는 것들이 많다. 나의 또롱이, 이트, 라운이, 까망이 그리고 지난 과거의 다양한 선생님들에게 감사해야 할 정도이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감정이 오간다. 문어가 남자에게 딱 달라붙었을 때, 그리고 이후에 산란기 때문에 ‘다신 못 봤다’ 라고 하는 장면은 나도 눈물이 났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인간극장을 보면서 운 적은 없지만, 동물농장,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동물만 보면 운다. 그것도 왜 그런지 모른다. 동물과의 교류는 설명할 수 없지만 정말 풍부하다.

    -

    난 바다를 좋아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는 바다를 가고 싶어하며, 다녀오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여행을 안 좋아하지만 즐거워지는 몇 가지 요소 중 한 개는 바다가 있을 때다. 내셔널지오그래픽를 볼 때는 주로 심해에 들어간 영상들을 찾아본다. 자기 전에는 꼭 바닷소리를 틀고 잔다. 그래서인지 환공포가 심해서 물방울도 보지 못하는 내가 ‘어우 징그러! 어우 징그러!’ 라고 하면서도 심신이 안정된 채로 쭉 볼 수 있었다. 특히 끝날 때쯤에는 문어가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 2024-05-03 15:47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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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3 15:48

      까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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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3 15:48

        라운이

        IMG_9045.jpeg

  • 2024-05-03 16:39

    다큐를 보면서 무엇보다 부러웠던건 그냥 터벅터벅 걸어가 마음껏 잠수 할 수 있는 바다가 있다는 것이었다. 바다 근처에 살면 저런 삶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지 모르지만 막상 바다에 가면 해수욕은 할 수 있어도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다이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처 어촌계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생선이나 갑각류, 조개류까지는 먹어도 바닷속 연체동물은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해초부터 시작해 바다에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을 먹는 우리나라에서는 바닷속조차 누군가의 이익과 결부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설령 잠수 할 수 있다고 해도 매일 문어를 보러간다는 말은 매일 문어를 잡으러 간다는 말과 비슷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생계를 위한 일이긴 하지만 어디를 가도 산업이 아닌 자연을 만나기 거의 어려운 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그저 만나러 갔던 주인공과 그 과정에서 만난 먹거리가 아닌 문어. 이번엔 신 하나를 고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인간을 위한 자원이 아닌 바닷속 생명체들, 그리고 그들과 교감하는 인간의 모든 순간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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