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위한 정의> 첫 시간 메모

띠우
2024-05-07 15:42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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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2024-05-07 22:54

    올립니다

  • 2024-05-07 23:13

    올려요~

  • 2024-05-07 23:30

    올립니다

  • 2024-05-07 23:57

    동물 윤리의 불구화
    누스바움은 기존의 동물 윤리들을 하나씩 따져본다. 일찍이 동물의 권리에 대해 논했고 동물 해방을 주장했기에 훌륭하지만, 그 방향성이 바르지 않다면 장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물 윤리를 불구화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위치와 시선, 사유 같은 것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나우라가 자신의 경험, 사례를 중심으로 장애권과 동물권을 교차적으로 보여준 것과 달리 누스바움은 자신만의 철학 이론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와이즈의 "우리와 너무 비슷해서” 접근법
    그의 전략은 하나의 주형, 인간과의 유사성 자체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고정된 자연의 사다리 사상이나 수정된 다윈주의 형태 모두와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동물들만이 우리와 (거의) 같다는 이유로 호의적인 대우를 받지만 다른 동물들은 포함시킬 수 없다. 와이즈는 인간중심의 사고를 뒤흔들어 동물의 삶을 진정 혁명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보다는, 과거의 사고와 기존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몇몇 종만을 다른 쪽으로 옮겨둔다. 그러므로 사악한 인간의 관행들을 약화시키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경계를 그림으로써 그런 관행을 더욱 강화시킬 위험이 있다. 또한 그의 개입으로 도움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동물은 여전히 물건이라는 어두운 영역에 남아 표류한다. 그의 방식은 자연의 다양성에 대한 경이, 생명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애정이 결여되어 있다. 게다가 야생에서 삶을 사는 종의 특징이 아닌 인위적인 성과(수어)에 집중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과 만나기도.

    화이트의 “이질적 지능” 접근법
    화이트는 돌고래가 지능이 있긴 하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지능이라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돌고래의 능력과 삶의 형태를 상세히 묘사하면서, 인식과 의식조차도 인간의 삶과 돌고래의 삶에서 매우 다른 방식으로 실현된다는 것을 파악하게 돕는다. 하지만 다른 형태를 가진 생명의 복잡성과 이상함에 대한 경이는 거기에 그친다. 이질성보다는 유사성을 선호하기 때문에 선형성이라는 사상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공리주의적 접근법
    동물의 삶에서 단 하나의 측면만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받는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비인간동물의 경계 자체를 부정한다. 동물은 물건이나 재산으로 취급 되어서는 안되며 그들의 이익은 인간의 이익만큼 인정을 받아야 한다. 더욱이 벤담은 동물에 대한 더 나은 처우를 요청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인류의 다른 동물 폄하와 부당한 대우가 자기혐오와 두려움이라는 공통적인 근원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고통이 대단히 중요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끝내는 것이 급박한 목표이긴 하지만 동물은 행위의 주체이며 그들의 삶에는 존엄, 사회적 역량, 호기심, 놀이, 계획, 자유로운 이동 등 다른 관련 측면들도 있다. 따라서 그들의 번영은 단순한 만족의 상태가 아닌 활동선택의 기회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누스바움의 견해
    다른 생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한 후에야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형태의 대우가 적절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우리와 얼마간 비슷한 생물들 너머 새, 포유류, 어류에 이르기까지 확대해 나가야 한다. 어떤 것이든 언어적 설명에는 왜곡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좋든 싫든 언어는 철학적, 과학적 연구의 매개체다. 따라서 더금더듬하는 번역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신중하고 겸손하게, 자원을 충분히 이용한다면 이런 일을 동물 세계 전체에 거쳐서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 2024-05-08 03:12

    메모메모메 올려요~ㅎ

  • 2024-05-08 07:17

    * 쾌고감수능력에 대하여

    “싱어와 나의 견해가 수렴하는 부분이 두 개 더 있다. 하나는 쾌고감수능력, 즉 의식적 인식이 자연을 나누는 중요한 경계이며, 그것이 없는 동물(6장에서 그가 논의한 사례에 대해 숙고할 것이다)과 식물은 다른 유형의 고려에서는 적절한 대상일지 몰라도 정의 이론에서는 윤리적 고려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살육의 부당성에 대한 고려다. 싱어는 벤담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현재만을 사는 생물을 죽이는 것은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집단에 대부분의 동물이 포함된다는 그의 설명은 타당해 보이지가 않는다. 7장에서 나는 이것과 비슷한 원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원리는 현재만을 사는 생물(극소수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수나우라 테일러는 쾌고감수능력과 관련하여 피터 싱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무엇보다 고통과 고통없음의 이분법은 장애를 기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인지적 능력이 없는 경우 즉 현재만을 살고 미래에 대한 관점이 없는 경우라면 고통없이 단번에 죽이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논리가 장애의 문제와 연결될 때 어떤 무시무시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을 지 환기시킨다. (테일러, 221~226)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싱어와 다른 견해를 제시할 지는 뒷 부분을 읽어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받아들이기에 썩 흔쾌하지가 않다. 누스바움이 싱어를 비판하는 지점은 벤담처럼 쾌락을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과 만족에 이른 과정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을 뿐인 듯해서 말이다.

    “동물의 삶, 예를 들어 고양이의 삶이 대단하게 보이는 것은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런 삶에 대한 우리의 경이와 경외는 그랜드캐니언이나 태평양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는 상당히 다르다. 자신의 선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능동적인 존재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동물은 일련의 목적을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간섭으로 목적의 추구를 저해당할 수 있다.”

    저자가 스티브 와이즈를 철학적으로 얕은 전략이라고 지적하면서, “과거의 사고와 기존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몇몇 종만을 다른 쪽으로 옮겨둔다. ……하지만 결함이 있는 이론은 결국 장기적으로 결함이 있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며 비판한 바 있다. 과연 스스로 능동적으로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와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 다른 생태계의 존재들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방식 역시 전략적인 측면이 더 강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 코스가드의 견해와 그에 대한 누스바움의 생각 정리

    크리스틴 코스가드는 2004년의 태너 렉처와 2018년 <동료생물…>> 사이에 논지가 상당히 변화하였다. 코스가드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아리스토렐레스의 영향을 받아 동물의 본성은 “자신의 선에 대해 파악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로 본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삶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 역량과 입법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것이고 인간만이 자율의지를 가지고 가치를 부여하고 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욕구와 욕망을 합법적으로 충족시키도록 해야 하는 이유는 입법에 있어서 다른 인간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동료 동물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말해 비록 동물은 수동적이지만 우연히 인간의 삶에 들어온 다른 구성원인 동물에게 인간을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듯이 동일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코스가드가 유사성에서 파생된 아이디어로 동물과 인간을 결부시키는 것과 인간만이 가치의 창조자이며 윤리적 역량을 가졌다고 경계선을 설정하는 점 그리고 동물가치를 향하는 경로가 간접적으로 우회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비판적이다. 인간의 도덕적 본성 역시 동물성의 일부이며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자기경멸의 위험으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코스가드의 두번째 저작에서는 보다 진화된 견해를 설득력있는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제 동물은 “모든 동물은 스스로 세상을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지각자다.” 더 나아가 “그들의 지각은 평가적이기 때문에 어떤 것은 자신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또 어떤 것은 자신들에게 해로운 것으로 간주해서 어떤 것에는 마음을 쓰고 어떤 것으로부터는 멀어진다.” 코스가드는 이것이 동물을 정의하는 기준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제 모든 동물은 각자의 중요성과 각자의 목적을 가진다. 칸트적 의미에서 동물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동물 각각에 존엄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서로에게 갖는 권리의 출처는 정확히 같아졌다. 저자는 이 점에서 코스가드가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가드는 여전히 모든 가치가 인간의 창조물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는 변하지 않았는데 이와 같은 윤리-형이상학적 견해는 동물의 권리 주장에 불필요한 요소로서 제외해야 한다며 저자는 불만을 표한다.
    동물을 수동적 시민으로 파악하는 코스가드의 이분법적 구분의 지점에서 연속성이 존재함을 우리는 많은 동물들의 ‘선행’ 사례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저자는 반박한다. 이어질 누스바움 자신의 이론에 어떤 것일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 2024-05-0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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