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 선물의 노래: '김치'의 노래

기린
2023-09-1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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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비고 ‘김치’를 주문하다

 

  전 달 주방지기들에게 김치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주방지기 활동의 첫 번째 과제는 김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나는 함께 주방지기를 하는 친구와 의논해서 비비고 ‘김치’를 주문했다.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 나 스스로에게 좀 놀랐다. 그동안 공동체 밥상에서 밥상에 차려지는 기본 식재료, 즉 쌀, 김치, 장류, 각종 기름 등은 최대한 ‘탁발’로 해결하는 분위기였고, 공동체 밥상 매니저(은방울키친) 시절 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코로나를 겪고 밥상의 성격이 바뀌는 와중에 변했다. 그 변화가 너무 자연스러운데 뭔지 찜찜한 건 또 뭔가.

 

 그렇다고 두 달 내내 비비고 ‘김치’만으로 밥상을 차릴 수는 없었다. 친정어머니가 손수 농사지은 양파로 담근 양파 김치는, 너무 매워 먹기의 어려움을 느낀 친구가 주방으로 가져왔다. 그 매움이 누군가의(대표적으로 나 ㅋ) 입맛에는 딱 맞았는데, 익을수록 콤콤한 젓갈의 맛과 어울리며 밥상의 별미가 되었다. 또 다른 친구의 열무김치, 친구 언니의 솜씨 좋은 얼가리 배추김치, 또 다른 친정에서 공수해 왔다는 부추김치, 어느 날 주방냉장고에 떡하니 놓여있던 열무 물김치까지 두루두루 밥상으로 올라와서 한 여름의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집안에서 다 먹기에는 양도 많고 다른 맛의 어려움에 처한 김치들이 공동체 밥상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입맛을 살리기도 하는 순환, 이렇게 김치의 ‘선물’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흐르고 있기도 했다.

 

2. 김치의 ‘라떼’ 타령

 

 ‘라떼’는 말이지, 공동체 밥상의 김치는 김장울력으로 마련했다. 내가 주방 매니저를 했던 시절에도 그 전통은 이어져 11월 즈음이면 김장 날짜 잡기에서부터, 고춧가루등등의 탁발, 그 해의 간잡이는 누구로 할 것인지, 몇 십 통이 되는 김장김치를 보관하기 위한 친구네 집 김치냉장고 사정 파악하기 등으로 분주해졌다. 그런 과정 끝에 김장하는 날은 파지사유에 놓인 탁자들을 다 치우고 김치 버무리 매트를 깔아 놓고, 세미나가 없는 회원들을 주축으로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리고 준비된 통에 채웠다. 일손이 야무진 친구들이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인 이런 날, 그런 친구들의 능력에 기대어 일 년 양식으로 가늠할 정도의 김치를 장만하는 울력이었다. 수육 보쌈에 막걸리, 된장국이 차려지는 점심상에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면, 올해의 울력도 별일 없이 치렀다는 안도감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 시절, 김장울력에서 내가 느낀 가장 큰 곤란은 김치통을 보관할 김치 냉장고를 물색하는 일이었다. 각자 집안의 김치 냉장고는 그간의 사정에 따라 빈 공간이 들쑥날쑥했고,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그리하여 찾아낸 해결책, 땅에 묻기였다. 김칫독은 따로 준비할 수 없었지만 묻을 만한 땅은 있었다. 바로, 고기리에 사는 친구네 집 마당 텃밭이었다. 가을걷이까지 끝난 텃밭에 겨우 내내 김치를 보관하자. 그 해 김장의 일부는 통에 담아서 비닐로 꽁꽁 싸매서 친구네 집 텃밭에 묻었다. 그런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었던 저간의 상황에 대해 썼던 글이 아마 홈피 어딘가 있을 것이다. 세세한 내용은 다 까먹었는데, 수많은 우연이 얽혀서 마침내 이루었다는 소회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우선 김치를 꺼내오는 수고 등등이 너무 번거로웠고, 공동체 김장 울력의 규모도 차츰 줄어드는 때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마련한 김치로 한 여름 밥상까지 차려내고 나면 다시 김장김치 울력철이 코앞이었던 시절이었다.(올해도 공동체 밥상에 김장김치를 선물한 친구들이 있었고, 그 덕에 봄까지 맛있는 김장김치로 밥상을 차렸다.)

 

3. 내 친구의 선물의 노래 한 소절

 

 주방지기 활동을 하는 두 달 동안에도 선물의 노래는 계속 흘렀다. 게시판에 적힌 친구들보다 일삼아 주방에 선물하느라 기록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그걸 일일이 찾아내어 기록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주방지기들의 게으름 탓이다. 이번 선물의 노래에서 자주 등장한 이는 ‘봉옥’이다. 해마다 귀촌의 꿈(충주 사과밭, 앙성 텃밭, 충주시내에서 직업인)을 새로 다지는, 나와는 고전공부를 일삼아 했던 친구다. 이 친구가 주방에 낡아서 바꿔야 할 주방용구들을 묻길래, 적당한 용량의 국솥이나 바닥이 다 벗겨진 웍 대신 새로운 웍 이라고 대답했다. 7월 초에 나름 치밀히 계산하고 구매했다는 국솥과 웍을 주방에 들여놓았다. 귀촌의 꿈을 다지느라 공부도 밥 당번도 못 한다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시더니, 8월에는 밥당번을 자처해서 집안의 냉장고에서 옮겨온 재료로 밥상을 차렸다. 아, 들기름은 본인이 직접 농사지은 들깨(아닌가?)로 기름집에 가서 짠 국산 들기름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했던 선물이다. 최근에 그림 그리기로 파지사유 에꼴랩에 드나드는 것에다 루쉰 세미나까지 하는 걸 보면, 공동체 밥상으로 이어지는 선물의 노래는 당분간은 끊어지지 않을 모양이다. 봉옥샘^^ 공동체 밥상의 즐거움, 그 느낌 아니까~~~ 또또또 밥 같이 먹어요.

 

 

 

  두 달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날, 함께 한 친구와 나는 벼르고 벼른 일을 했다. 주방 냉장고 냉장 칸을 점령하고 있는 얼음, 머지않아 냉장 칸 전부를 차지할 것 같은 기세를 더 이상 모른 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얼음들을 깨부수는 동안, 다른 친구는 싱크대 물때를 또 닦아내고 주방 비누 거치대를 씻어 걸고 수세미를 갈았다. 냉장고에서 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스 병들을 정리하고 먹을 수 없는 잔반들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행주들을 푹푹 삶아 햇볕에 너는 것으로 우리의 7,8월 주방지기 활동을 마감했다. 아, 마감하기 며칠 전 다시 비비고 ‘김치’를 주문해서 김치 통을 채워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추신) 9, 10월 주방지기를 맡은 친구는 일찌감치 내게 와서 주방에서 챙겨야 할 것 리스트를 묻고 작성했다. 나는 그에게 냉장고 얼음은 우리가 해결했다, 그러느라 화구 위에 기름때와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 뗄 힘까지는 못 냈으니 그대들에게 미룬다고 했다. 친구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럼 그 일은 우리들이 할게. 나는 그 친구가 너무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안다, 그 친구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기만 하면 정말 똑 부러지게 해내는 친구라는 걸. 10월이 지나면 기름때가 벗겨진 화구 위 타일 벽을 볼 수 있을거다^^

댓글 1
  • 2023-09-12 05:38

    아...비비고 김치라니..........그랬구나, 그렇게 되었구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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